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석 Apr 28. 2022

간결함의 미덕

말의 양과 고민의 양, 같은가?

  말을 할 때도 그렇고 글을 쓸 때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간결함은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여주고, 비문(非文) 사용의 가능성은 낮춰준다. 문학적 표현 등의 예외 상황을 빼고는 무조건 간결한 메시지로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의 양도 마찬가지이다.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더 잘 설득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의 마음은 긴 연설보다 때로는 침묵에 반응하기도 한다. 무대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청중이 모인 공연장에서 진행자로 나서면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들이 참 많다. 청중들은 계속해서 웃고 떠들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쳐다보기도 하며,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이럴 때 능숙한 진행자처럼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멘트를 하다 보면 청중의 웅성거림과 나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청중이 정숙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게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진행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청중들을 바라본다고 생각해보자. 오히려 청중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열린음악회를 진행했던 모 아나운서가 자주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침묵이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발휘하는 오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 서면 많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학습된 측면도 없지 않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우리는 일렬종대로 늘어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어야만 했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정말로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만 더하자면......

학생 중 누군가 하나가 기어이 쓰러져야 끝났던 게임. 남들 앞에선 최대한 준비한 많은 말들을 쏟아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몸에 밴 듯하다. 사람들은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주저하다 짧은 말을 내뱉는 사람을 두고 싱겁다거나, 성의가 없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강조하자면, 말하기 전 고민의 양이 굳이 말의 양과 비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1941년 영국의 수상 처칠은 자신이 졸업한 해로우 고등학교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짤막한 명연설을 남겼다.  

  

  “Never give in. Never give in. Never, never, never - in nothing, great of small, large or pretty - never give in, except to convictions of honour and good sense. Never yield to force. Never yield to the apparently overwhelming might of the enemy.”

  

  “절대로 굴복하지 마라. 절대로 굴복하지 마라. 엄청난 일이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하찮은 일이든, 명예와 양심에 대한 확신 외에는 절대로 굴복하지 마라. 절대로 강압에 굴복하지 마라. 겉보기에 압도하는 적의 힘에 절대로 굴복하지 마라.”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영국의 앞날은 불투명했다. 모두가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의 연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학생들 개개인의 앞날에 대한 조언일 수도 있고, 영국 국민에게 총리로서 불굴의 의지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그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했을 처칠이었지만 그의 말은 그의 고민과 비례하지 않았다.

  그는 간결한 메시지를 통해 모두의 공감을 끌어냈다. 낙담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의 연설은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중요한 것은 그의 연설 때문에 뙤약볕에서 쓰러진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말을 아낌으로 인해 전할 수 있는 메시지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력하다.

작가의 이전글 질문 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