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야경 20210828.
날이 저물었습니다.
“아들 외식할 수 있을까.”
문자를 보내자 곧 답이 왔습니다. 이 분 후의 출발이랍니다. 우리 부부는 천천히 걸어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일이 늦어졌나 봅니다. 지금 막 출발하겠답니다. 아들에게 식단을 물어보지도 않고 음식을 시켰습니다. 아내는 음식이 나오자, 아들의 그릇에 담긴 내용물을 이리저리 펼치려 합니다.
“그냥 두시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습니다. 뜨거운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배려 차원입니다. 어른이 된 자식에게 아직도…….
곧 아들이 도착했고 곧 식사가 끝났습니다. 식당을 나서며 말했습니다.
나는 운동 겸 산책 겸 공원을 들렀다 가겠으니, 둘이 먼저 가라고 말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음이 변했습니다.
“아들, 피곤할 테니 먼저 타고 가.”
나와 함께 가겠답니다. 밤에 함께 나들이한 것이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이 작년 이맘때쯤입니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늘이 개고 바람마저 시원합니다. 송도에는 공원이 많지만, 그중에도 중앙공원은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주위의 높은 건물들에 에워싸여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건물과 공원 곳곳에서 밝히는 조명은 공간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오늘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뜨입니다. 전문가인지 취미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풍경을 담는 카메라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나칠 때마다 슬그머니 카메라의 화면을 훔쳐봅니다. 좀 떨어져 있으니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화려한 불빛으로 미루어 보아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고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아트센터를 향해 걷습니다.
‘작년에는 조명에 비치는 건물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오늘은 그 건물의 형체만 그의 눈에 들어옵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올해는 행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낮에 볼 때보다 아름다움이 떨어집니다. 코로나19로 볼거리를 많이 잃었습니다.
“저기 벤치가 비었는데.”
재빨리 다가갔습니다. 늘 차 있던 벤치는 우리를 맞이하려는 듯 자세를 한껏 낮추고 있습니다. 앉기보다는 눕기에 편한 의자입니다. 해안이나 목욕탕에서 누울 수 있는 모양의 의자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재질이 나무입니다. 우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나란히 누웠습니다. 하늘이 다가왔습니다. 별이 보이면 좋겠는데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나 봅니다. 구름이 끼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평소에도 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의 밝은 조명은 맑은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별들이 호수에 내리는 것을 거부합니다. 밝아야 잘 보이지만 이럴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호수에 별이 내라면…….’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갯벌에 별이 내리면 어떻습니까. 별과 야광충이 어울리는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이나 갯벌을 걷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동심으로 빠져듭니다. 나는 이런 것이 좋아 섬에서 생활하는 동안 틈틈이 밤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물이 빠진 갯벌을 한참이나 걸어서 파도를 찾아갔습니다. 별들은 물속에서 보석처럼 빛을 반짝입니다. 잠시 먼바다를 바라보다가 되돌아섭니다. 물이 들어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별들은 갯벌에도 널려있습니다. 아직 따라가지 못한 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별들이 놀고 있습니다. 수많은 별이 그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눈을 반짝입니다. 두 손을 모아 건져내려고 애씁니다. 손을 들어 올리자, 물과 함께 별들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그것들은 부끄럼이 많은가 봅니다. 내가 건져 올린 별들이 어느새 숨어버렸습니다. 나는 그 별들과 하늘의 별들의 아름다움에 홀렸습니다. 갯벌의 중간쯤 이르렀을 때 밀물은 내 뒤꿈치를 간질이고 이어 내 종아리를 감쌉니다.
‘뭐야, 아직도 여기에 있었던 거야.’
발걸음을 빨리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다가는 밀물이 나보다 앞서 갯고랑을 메울 것입니다. 그곳에 별들을 쓸어 넣고 나까지도 잡아넣을지도 모릅니다. 발걸음을 서두르면서 가끔 뒤를 돌아봅니다. 밀물이 일렁이며 발자국을 지웁니다. 별들을 태우고 나를 부지런히 쫓아옵니다.
호수를 바라봅니다. 놀잇배가 막 지나간 그곳에 그 별들의 잔영이 일렁입니다. 아내가 켜놓은 라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이 막 귓전으로 다가옵니다. 중고등학교 때입니다. 나는 늘 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별밤지기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이 음악을 좋아합니다. 볼륨을 낮췄음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우리를 쳐다봅니다. 그들의 귀에 전달되는 모양입니다. 소리를 더 낮췄습니다. 구름이 짙게 드리운 하늘을 향해 별 대신 주위의 조명들이 점차 힘을 냅니다. 색색의 불빛들이 몇 개의 다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멀리 그 위에는 쌍쌍의 사람들이 들리지 않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환한 미소가 그려집니다. 외국에 나가서 보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입니다. 강산이 변했습니다. 달력에서나 보던 모습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밤이 깊어져 갑니다.
“그만 가야지.”
고향의 별빛 가득한 밤하늘과 영월의 동강을 품은 별마루의 추억은 다음에 가져와야겠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별이 떨어지는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아들이 물었습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내의 미소가 방끗 빛납니다. 별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