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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월 Dec 03. 2022

사람과 사람, 그 사이

[ 수필 ]


드라마를 보는데 직장 동료들끼리 회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회식이라고는 하지만 세 명이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습이 화기애애하게 보였지, 장소가 서울 도심에서도 가장 힙하다는 을지로 골목이어서 그런지 모처럼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드럼통으로 만든 테이블이 얼마나 불편한지 아는데도 가고 싶고, 먹으면 턱 아파서 안 좋아하는 노가리가 맛있어 보이고, 술이 달아 보입니다. 취해서 비틀거리며 맨 정신에는 못할 말을 하다가 결국 집에 못 가고 사무실에서 쓰러져 자는 주인공을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고 말이죠.


집에서 항상 TV를 켜 놓는데 집중해서 보지는 않습니다. 뜨개질을 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듣다가 가끔씩 궁금한 순간에 화면을 흘깃 보는 정도죠. 100개가 넘는 채널이 있어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그걸 또 쪼개서 사이에 광고를 몇십 편 넣으니 TV를 오랫동안 집중해서 볼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충 보는 TV라고 해서 아무거나 틀어 놓는 것도 아닙니다. 취향이 아주 편협하기 때문이죠. 시시때때로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검색하면서 이미 봐서 재미있다는 걸 알고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또 봅니다. 핸드폰이나 노트북 화면으로 보는 건 싫어해서 OTT 서비스를 이용하지도 않고요.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도 찾아볼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어쩔 티브이’ 그 자체인 사람입니다.


TV 얘기를 한참 했지만 핵심은 ‘회식’에 있습니다. 회사원으로서 20년을 살고 나서 그 어떤 회사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데에는 사람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일이 아무리 많고 어려워도 어떻게든 해낼 수는 있는데 일이 ‘힘든’ 건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사람들. 나에게 일을 주는 사람, 같이 일을 하는 사람, 내가 일을 줘야 하는 사람 말고도 사무실 환경과 그 안의 내 자리, 연봉, 팀 구성 같은 근무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 내가 한 일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 일로는 아무 상관없지만 서로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 등. 회사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조직이며 구성원 각자의 입장은 서로 다르고 대부분 상충합니다. 직원이 많든 적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살기 마련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회사에는 내 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누가 나빠서가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서로 입장이 다를 뿐이니까요.


아, 또 회사 사람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핵심은 여전히 ‘회식’에 있습니다. 나도 회식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공짜로 놀고먹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회식 아니던가요. 장소나 메뉴가 좀 별로인 때도 있고 일 얘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깨는 상사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넘길 정도였죠.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술잔이 날아다니고 험한 말과 주먹이 오가는 그런 사건은 겪지 못했습니다. 요즘엔 상식이 된 ‘퇴근 후의 일상’,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얘기를 꺼내면 배부른 소리라며 핀잔 듣기 딱 좋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도 회사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에는 ‘회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랬을 겁니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작은 회사들의 경우, 좁은 사무실에서 매일 부대끼는 사람들이 퇴근 후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나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비록 퇴근 후의 개인 시간을 쓰더라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내가 팀장급이 되었을 땐 종종 팀원들에게 내 돈으로 밥이나 술을 사기도 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호의, 그들에게는 회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과 오래 같이 일했으면 좋겠고 그래서 잘해주고 싶었고, 당신들도 경력이 더 쌓이고 나 정도가 되면 이렇게 팀원들한테 돈 쓸 때 고민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생긴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여유 따위 없었지만, 나의 그런 모습 때문에 팀원들이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꼭 술자리가 아니어도 먼 데 있는 예쁜 카페에 찾아가서 커피를 사주거나 생일을 챙겨주기도 하고, 주말에 같이 콘서트를 보러 가고 유명한 맛집을 찾아서 가기도 했습니다. 일부러 내 돈을 쓴 건 아닙니다. 어떤 회사도 내게 법인카드를 쓰라고 주지 않았을 뿐. 나는 직원들과 업무 외에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돈을 써야 했고 회사에서 안 주니 내 돈을 쓴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꼭 돈으로 사람 마음을 붙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그전에 일이 먼저고 사실 월급도 적어서 그렇게 많이 사주지도 않았고요.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한다고 생각하도록 신경 썼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일을 해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상대방의 말도 들어봐야 하는 겁니다. 사실 뭐, 따질 것도 없네요. 결국 다 부질없으니 말입니다. 스스로 일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 더 큰 회사, 연봉 높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회사에서 보기에 일 좀 한다 싶으면 대표님이 데려가서 따로 일을 시키더군요. 누군가 하나뿐인 나의 팀원이 일을 잘한다고 자기 팀으로 데려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팀원을 붙여주고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그걸 몇 번 하고 나니까 그냥 내가 일을 많이 하는 게 더 편하겠다 싶었고 회사생활의 후반부는 사람은 말고 일만, 그렇게 살았습니다.



회사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나쁠 거 없었던 그때, 회식을 좋아하고 회사 사람들과 근무시간 외에도 사적으로 어울렸던 그 시절을 지금 돌이켜 보면 허탈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적당히 회사 사람 사이로 지냈어도 됐겠다 싶네요. 결국엔 다들 회사를 떠나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후에 드문드문 연락하다가 이제는 그 연락마저 끊겼으니까요. 결혼식에도 가고 신혼집에도 초대받아 가고 아이를 낳아서 같이 만나고 우리 집에 아이를 데리고 놀러 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카카오톡 앱을 열 때마다 ‘친구’ 목록에 있는 그 이름들이 보이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안부 인사를 보내면 피싱이라고 생각하겠다, 하고 넘기죠. 예전에는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나, 진심이 부족했나 뭐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기 때문이죠. 딱히 누가 더 안 챙겨서, 누가 더 무심해서가 아닙니다. 일상에 교집합이 없으면 멀어지자연스럽죠.


직장생활을 20년으로 마무리하고 자발적 백수가 되어 살면서 자주 지난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어떻게든 정의를 내리거나 정리를 해야 남은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나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선례를 보이고 설득하고 솔선수범하며 이끌어서 함께 일을 하는 건 그만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기 싫다는 게 아니고 사람이 모인 조직 안에서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싫네요. 어떤 조직이든 업무만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나 정도의 나이와 경력이 되면 회사 내에서만이 아니라 동종업계의 선배로서, 프로젝트의 매니저로서, 회사와 직원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직도 가끔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올만큼 지난 회사생활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그걸 하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하는 일로 먹고사는 방법을 찾는 중이고요.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 아니라 내가 좋고 스스로 만족해야만 행복한 타입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백수생활 2년 반 동안 스스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나는 조용히 혼자 앉아서 뜨개질을 할 때,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혼자 산책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충전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건강해지고 수명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서울을 떠나지 않았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진 않았을 겁니다. 일이 너무 힘드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뿌리치기 어렵고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봬야 할 것 같고 자기네 회사 앞으로, 집 앞으로 찾아오라며 만나자고 할 때 멀어서 귀찮고 그 동네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겠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 도시에 가서 혼자 사니까 좋으냐고 묻는 사람에게,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내가 신경 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정말 좋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동료가 있으면 물론 좋죠. 회사에서 일이 정말 많고 힘들 때에는 팀원들 다 필요 없고 내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같은 생각이니까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도 없고 같은 마음이니까 위로하고 달래주지 않아도 되고 나만큼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니까요. 회사에 다닐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동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자기는 혼자서 생각에 빠지는 타입이 아니라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답을 찾는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부러웠습니다. 머릿속을 맴도는 무언가가 있을 때 툭 꺼내면 “아, 나는 말이야…….” 하면서 달려들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게. 안타깝게도 내 글의 유일한 애독자이자 무슨 얘기든 관심 있게 듣고 의견을 주곤 했던 친구가 원래 바빴지만 더 바빠져서 만나지 못한 지 꽤 됐습니다. 그 친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 나밖에 없군요. 내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술 마시면서 그리 길지 않으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우리의 앞날에 대해 얘기하게요.


다 떠나서 취기 가득한 술집에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이는 일 그 자체가 그립기도 합니다. 다 같이 취해서 시끄러운 줄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술 마신 다음 날엔 꼭 목이 아팠죠. 흥건한 기름하며 물컹한 식감 하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삼겹살도 술자리에서는 잘 굽고 잘 먹었습니다. 충분히 알딸딸해서 술은 이제 그만 마셔야겠는데, 하고 나서도 꼭 몇 잔을 더 들이켜고 다음 날 후회했죠. 생각만 해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속이 뒤집어지는 숙취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그마저도 다시는 겪을 일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쉽네요. 술친구 몇 명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다들 멀리 있고 또 바쁩니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더라도 만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요. 다들 각자의 삶이 있습니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평일 저녁에 야근을 하지 않는다면 운동을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면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있죠. 서울에 오면 연락해라, 꼭 만나자고 하지만 선뜻 연락하게 되질 않습니다. 포기가 빠른 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맙니다.


작년 이맘때쯤, 서울에 살 때 좋아했던 술집이 문득 떠올라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메로구이가 있는 이자카야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페일에일이 있는 맥줏집. 경기도 부천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가는 길에 잠실과 천호동을 들르는 무리한 경로를 감수하면서도 갔습니다. 정말 그리웠으니까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갔고, 혼자는 뻘쭘하니 손님이 없는 이른 시간에 갔고, 취기가 전혀 없는 술집에 혼자 앉아 있으니 아무리 맛있는 안주와 술을 먹어도 기분이 영 나질 않았습니다. 내가 그리워했던 건 단지 그 공간과 그 음식과 술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함께 시간을 보내던 그 시간이었네요. 군가의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삼 사람이 그립다는 거야? 여전히 혼자가 좋다는 거야?"


글에서 두 가지 마음이 오락가락 뒤섞여 있는 건 실제 내 마음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드라마의 회식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아니라 동료가 있던 시절, 서로 위로를 주고 의지가 되며 함께 일하던 시절이 생각 나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쯤 내가 속해 있는 카카오톡의 유일한 단톡방에서 모이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다녔던 회사의 동료 다섯 명. 나는 세상 반가운 마음에 서울에 사는 직장인 네 명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정하면 맞춰서 서울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술은 조금만 마셔야지, 벌써 결심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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