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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May 06. 2022

앗, 글쓰기 산행보다 어렵다

10. 팔봉산 (2021.12.04 토)




글의 발행 주기가 매우 느려졌다. 적어도 주 1회 글을 쓴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보름만의 글쓰기다. 그동안 개인적인 일도 많았지만 내 글 쓰는 손목을 잡았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개인의 감상을 적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지만, 발행을 누르는 순간 내 글은 공공재가 되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글을 이렇게 가볍게 써 내려가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첫째로는 자신이 없다. '없었다'가 아닌 '없다'라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란 뜻이다. 세상에는, 아니 한국만 따지더라도 끝내주는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 널렸다. 미숙한 내 글은 등 뒤에 감추고 싶을 때가 많다. '은, 는, 이, 가'의 조사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둘째로는 솔직하지 못하다. 무릇 글쓰기란 끓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정제하는 순간 그 글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해왔다. 그런데 막상 공개적으로 문장을 쓰다 보니 솔직한 글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나와 같이 자신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은 더더욱.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문장들이 가식적이라고 여겨졌다.


마지막으로는 확신이 없다. 어떤 확신이냐면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감정을 느낀다는 확신이다. 여기서 감정은 '희로애락'인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글이 재미가 없나? 실제로 아마추어지만 너무 아마추어 같나?'와 같은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그럼에도 중단하지 않고 글을 쓰려고 한다. 첫 술에 배부르려는 내 심보가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작 글 몇 편 썼다고 대단한 사람인 양 고민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그냥 나는 나대로 글을 쓰면 된다. 지금과 같은 고민 없이 항상 내 글에 만족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글은 과거에 두고, 미래의 글을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한다.


팔봉산은 사진을 정리하고도 한참 뒤에 글을 쓰는 것인데, 방대한 사진만큼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어서였다. 묵혀둔 만큼 글의 시작이 어렵다. 역시 글은 준비하고 쓰기보다는 즉석에서 써 내려가야 잘 풀린다. 오늘은 미루지 않고 쓰려고 한다.





팔봉산

2021년 12월 4일 토요일, 익스트림의 끝판왕이라는 팔봉산. 12월 6일부터 봄까지 폐장기간이었는데 운 좋게 4일에 방문하여 끝물의 즐거움을 맛보고 왔다. 매표소 직원분께서 조심 또 조심하라고 강조한 것이 떠오른다. 위험한만큼 재미있는 장치들이 넘쳐났던 산으로 2022년 2월 초까지 내 마음속 1위 산이었다. 지금은 1위가 바뀌었다.   



#장거리 운전

이제는 산행을 위해 왕복 3시간 운전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동할 때는 서울의 북쪽에 거주하는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서울을 벗어나는데만 꼬박 1시간이 걸리니 그럴만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예를 들면 집, 학교, 친구, 가족, 고양이, 맛집)이 북쪽에 있으니 감내하는 수밖에.


먼 거리만큼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데 토요일 아침에 일찍 눈뜨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없다. 결국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부리나케 준비를 하곤 차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다. 특히 겨울에는 해가 짧기 때문에 늦게 출발하면 마음이 초초하다. 아마 이 날도 하산 시간을 걱정하며 가는 내내 불안했을 것이 분명하다.



#1봉 : 역시 초반이 가장 힘들다

나는 연비가 좋지 않다. 든든히 먹은 것과 상관없이 산행 초반은 항상 헥헥거린다. 그리고  걸음 못가 '쉴까? 쉬자' 말을 한다. 팔봉산 역시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금세 솟아있는  위에 앉는다. 높지 않은 산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역시 만만한  항상 나다.


'이제 가면 안 될까? 그만 쉬자'라는 말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날은 무진 추운데 몸에서 열이 뿜어져 나와 옷을 벗지도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리며 올랐다. 25분 정도 열심히 오르자 정상이 나온다. 역대급 빨리 만난 정상이다. '야~ 이래서 팔봉산 재밌다고 하는구나?' 갑자기 재미가 팍팍 솟아올랐다.



#2봉 : 안전불감증

팔봉산에서 가장 많이 본 단어는 '위험'일 것이다. 추락위험, 접근금지, 등산로 없음, 하산로 없음, 낙석주의, 추락주의 등등. 온갖 위험을 표현하는 단어는 다 있다. 처음엔 빨간 글씨로 쓰인 경고문에 잔뜩 겁을 먹었지만, 자꾸 보다 보니 익숙해지고 친숙해져 버렸다. 그래그래 위험하지? 조심할게!


파이프와 스테이플러, 로프 구간을 통과하면 2봉의 전망대가 나온다. 2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 때문에 인증이 필요하다면 여기서 진행하면 된다. 전망대에서 풍경을 살피면 곧 만나게 될 3봉을 미리 볼 수 있다. 위치를 대충 파악하고는 덩그러니 있는 당집 앞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다. 바람이 꽤 불어서 사과 한 알을 빠르게 먹고 일어났다.



#3봉 : 장난스러운 날씨와 장난 아닌 정상석

산행을 시작할 때는 스산한 날씨에 몸이 으스스했는데, 중반쯤부터 해가 나왔다. 몸도 풀리고, 날도 풀려서 산행에 적응해갈 때쯤 85도에 이르는 철계단을 만났다. 바닥이 메쉬로 되어서 발아래가 훤히 보이는데 아찔함에 절로 눈을 감게 된다.


산길을 따라 걸으면 홍천강이 보인다. 산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것은 처음이라 웅장한 기분이 들었다. 일직선이 아니라 마을을 끼고 휘어진 강줄기라서 멋스러움이 배가된다. 해발이 낮은 산인데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렇게 아찔한 냉탕과 웅장한 온탕을 번갈아 경험하다 보면 마지막 냉탕이 나온다. 3봉 정상석은 외길과 돌길의 조합이라 가까이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시조새같이 소리를 지르며 정상석에 다녀왔다. 바로 뒤에 오던 비슷한 또래의 남성분은 무섭다며 인증사진을 패스했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 스스로를 '겁은 많지만 독한 사람'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4봉 : 아이를 낳는 고통

4봉을 가는 길목에 해산굴이 있다. 굴을 통과하는 과정이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라 한다. 안내글을 읽자마자 쓸데없이 거창한 유래라고 생각했다. 원작자를 비웃거나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아이를 낳는 고통은 낳아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까닭 없는 논평을 하며 경건하지 못한 마음으로 해산굴에 입장했다. 조그마한 구멍을 통과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긴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속으로 '별 거 아니구만'을 외치다가 자만한 내 모습을 후회했다. 해산굴의 유래를 보곤 '그렇구나~'하고 평이하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5봉 : 보물찾기 놀이

이상하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정상석이 작아진다. 이제는 정상석을 찾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된다. 낙석과 추락의 부비트랩을 피하고 나면 보물 찾기가 남아있다. 5봉의 정상적은 정말 내 얼굴만 하다. 옆이 천 길 낭떠러지라도 사진 찍으러 정상석에 간다. 발을 잘못 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돌아올 때는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다.


세상에 벌써 5번째 봉우리에 왔고, 아직도 3개의 봉우리가 남아있다. 절반 이상 왔기에 돌아갈  없다. 원래는 2봉만 찍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칼을 뽑았으면 8봉까지 가야 한다. 긴장감으로 굳은 손발을 탈탈 털고 갈 길을 간다.



#6봉 : 곡예를 하러 왔나요?

6봉까지 가는 길은 곡예를 하는 수준이다. 보폭을 고려하지 않고 박아 놓은 듯한 발판에 입고 간 퓨마 바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곡소리가 절로 난다. 단차가 일정하지 않다면 계단 높이라도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곤혹스러운 철계단을 오르고 정신없는 상태로 가다 보면 정상석을 놓치기 십상이다. 머리 위쪽에 정말 아담하게 정상석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다가 나올 때가 지났다 싶어 돌아오니 놓쳤던 정상석이 보였다. 예쁘게 찍을 수 있는 각도가 아니라 의무적으로 사진을 찍고 넘어간다. 사실 이쯤이면 정상석에 크게 감흥이 없다.


내려가는 길에 등산객이 하도 짚어 반들 해진 나뭇가지를 만났다. 보드라운 손이 사포 역할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괜스레 나도 한번 쓰다듬고 지나가 본다. 가끔 이런 포인트에서 이상한 감동을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갈동안 나무는 묵묵히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찡하다.



#7봉 : 뷰가 터진다

강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땅을 딛고 서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풍경이다. 익숙한 논과 밭도 산 위에서는 절경이 된다. 반짝이는 강물과 가지런히 정리된 논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콤비다. 이런 절경을 만나면 카메라가 실물을 담지 못하는 상황이 항상 아쉽다. 그래서 열심히 찰칵이다가도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에 담는다.



#8봉 : 울창한 소나무 길

8봉 가는 길은 팔봉산에서 최고의 코스였다. 파랗게 반짝이는 홍천강을 배경으로 소나무 길을 걷다 보면 바다 근처의 산을 타고 있는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다. 높게 뻗은 소나무가 해송으로 보이기도 한다. 갑자기 짠내를 맡는 환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사이에 소나무와 나만 있는 느낌은 오묘하면서 황홀했다. 이 구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다녀온 산 중 팔봉산이 최고의 산이라고 외치며 연신 감탄했다. 물론 최고의 산은 매번 바뀐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팔봉산은 다시 다녀오고 싶은 산이다. 그리고 진짜 바다를 안고 있는 산을 가보고 싶어졌다.



#하산 : 최고의 마무리

어쩌다 보니 하산할 때 사진이 가장 많다. 그만큼 하산이 인상 깊었던 것이리라. 그동안 나에게 하산은 무념무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런데 팔봉산은 내려갈 때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빙판길에 가팔라서 무섭기도 했지만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홍천강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내려가는 길도 다양해서 스테이플러, 철계단, 철발판 등등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올 겨울 처음으로 고드름을 만져보기도 했다. 하산을 완료하면 출발지점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는데 이 구간에서 나는 120% 만족해버렸다. 강가를 따라 마련된 다리를 걸으며 산행의 운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바다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머리를 숙이며 암석을 지나가는 구간에서는 동굴에 놀러 온 기분이 물씬 난다. 흔들다리를 건널 때는 내가 놀이동산에 왔나? 하는 다채로운 감정이 든다. 갈대 구간을 지나면 난지도공원에 버금가는 명소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가 산이야, 바다야, 강이야. 온갖 호들갑과 찬양을 끝내면 출발점에 도착한다.


도착지점에는 거울이 있는데 이거야말로 대하서사의 완성이자 기승전결의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산한 내 모습을 찍으며 산행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그때 당시 굉장히 좋았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왜 저렇게까지 오바를 했을까' 싶지만 그때 당시 나는 행복감에 절어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통제 전 다녀온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며 마지막까지 행복을 표출하며 집에 돌아간다.



#산행을 마치며

팔봉산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능선처럼 펼쳐져 있어 숨찬 산행은 아니다. 거리도 2.5km밖에 안돼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로 체력이 남았다. 거리는 짧은데 재미는 넘치는 산이라면 안 갈 이유가 없다. 산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팔봉산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팔봉산에서는 올라갈 때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날 일이 없다. 하산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끔 기운이 빠진다. 늦게 출발했다는 불안함과 부지런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그래서 원점회귀가 불가한 코스를 좋아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한 방향으로 꾸준히 오르면 언젠가 정상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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