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디 리 Jun 12. 2022

경계 대상 1위는 조바심입니다

13-14. 마니산&고려산 (2022.01.15 토)




산행에서 조바심만큼 무서운 녀석이 또 있을까. 초조한 마음은 나같이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필연적인 감정인 것 같다. 산 위에서는 빨리 가야 한다는 조바심, 산 밖에서는 빨리 더 많은 산을 가고 싶다는 조바심이 대표적이다.


이 날은 유독 조바심이 많이 났던 날이었다. 300미터 산 1개를 오르기 위해 차로 왕복 200분을 달리는 건 나의 효율 위주의 셈법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니산만 가지 말고, 인근의 고려산도 같이 가버리자!'라는 의식의 흐름이 완성되었다. (참고로 '-버리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먹어치워 버리자, 해치워버리자, 포기해버리자, 잊어버리자 등등. 그런데 그날은 해치우자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가버리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마니산

2022년 1월 15일 토요일, 마니산은 최단길은 돌계단길이라 발목을 조심해야 한다. 나무계단뿐만 아니라 돌계단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고, 높은 경사에 울퉁불퉁하여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다. 불타는 허벅지와 함께 새빨간 얼굴로 정상에 도착한 것이 기억난다.



#눈과 돌의 조합이라니

눈 소식이 있다는 일기예보를 봤지만 '괜찮겠지'라는 바람으로 애써 무시하고 길을 떠났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싸리눈이 내려 실시간으로 녹고 얼어 미끄러웠다. 그래서 빠르게 올라가지 못하고 조심히 한 발씩 내디뎌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정상 부근에는 치즈 고양이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정상에서는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는데 날이 따뜻하면 고양이가 20마리도 넘게 있다는 말이 진짜인가 보다. 꼭 붙어 자는 녀석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한편, 정상 부근에 있는 참성단은 현재 세계문화유산 보호 차원에서 폐쇄되었다. 까치발로 빼꼼 보고 지나왔다.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에는 개방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체념한다. 요즘 산에 있는 문화유산이 많이 훼손되어 보호 조치되는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산을 아끼는 마음 없이 다녀가는구나를 실감했다.



#오를 때도, 내려올 때도 트인 경치

마니산은 높이에 비해 경치가 매우 좋은 편이다. 정상 가는 길의 계단로는 산행이 벅찰 때마다 뒤를 돌아 경치를 보며 숨을 고를 수 있어 좋았다. 단군로 하산길은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벗 삼아 감탄하며 즐겁게 내려갈 수 있어 좋았다. 하산 시 무릎을 생각한다면 계단로보다는 단군로가 훨씬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산행을 하며 강아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는데, 나보다 빠르게 오르고 내려가는 것에 또 자극받아버렸다. 힘들어 헥헥 개구호흡을 하면서도 즐거워하는 강아지의 표정에서 덩달아 힘을 냈던 것 같기도 하다.





고려산

2022년 1월 15일 토요일, 고려산은 약간의 꼼수를 써서 빠르게 다녀왔다. 산행이라기보다는 산책에 가까웠다. 흙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걸어서 정상에 다녀오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력이 없는 상황에서 반가웠다.



#뒷짐 지고 오르는 산

포장도로를 따라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는 후기를 보고 혹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 산을 찝찝하게 다녀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백련사에 차를 두고 설렁설렁 다녀오기로 했다. 배낭도 없이, 물도 없이 휴대폰만 달랑 가지고 오른 산행이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걸어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상에 군시설이 있어 일반 방문객은 도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군용 도로가 통제되고 있어서 어차피 차로 갈 수도 없었던 것. 차로 간다는 것은 의미 없는 고민이었군.



#진달래가 없어도

고려산은 진달래 군락으로도 유명하다. 4,5월에는 진달래꽃이 산 전체에 만개하여 핑크빛으로 물든다고 한다. 진달래 특유의 분홍과 자주 사이의 빛깔이 참 멋질 것 같다. 능선에 마련된 나무데크를 따라 진달래를 구경하는 것도 참 좋겠다고 느꼈다.


정상가는 길에 오련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온통 눈으로 뒤덮여 대충 사진만 찍고 길을 다시 올랐다. 산행을 하며 곳곳에서 군용 차량과 군인들을 만났는데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럴듯하지 않아도 괜찮아

정상석은 두리번거려야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거대한 군부대 통신시설 구석에 덜렁 있는 느낌. 나무에 달려있는 산악회 플래그가 아니었으면 지나칠 뻔했다. 트랭글 정상인 증도 먹통이어서 하지 못했지만 그러려니하고 말았다.


고려산의 세월이 느껴지는 빛바랜 나무 정상석은 근사한 정상석과 다른 매력이 있으니까. 충분히 멋진 경험이었다고 확신한다. 내려오는 길엔 구름 뒤에 숨어있던 해가 나와 우중충하지 않은 밝은 마니산도 볼 수 있었다.



#산행을 마치며

집에서 9시쯤 출발해서 마니산까지 1시간 20분, 고려산에서 3시쯤 출발해서 집까지 1시간 50분. 집 도착하니 5시였다. 장장 8시간의 산행 여정이었다. 애초에 욕심을 부린 것은 알지만, 1일 2산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체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조바심은 행동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무시무시함도 가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산은 이런 나의 조바심도 일련의 평가 없이 받아주는 것이 참 좋다. 사회에서는 지적받을 수 있는 무수한 나의 면모도 산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아낌없이 나를 품어주는 산에서 오늘도 위로받고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31일, 일출산행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