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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Jun 20. 2022

타이밍과 일몰의 상관관계

16. 용봉산 (2022.01.31 월)




타이밍은 크로와상처럼 겹겹이 겹쳐져있다. 겹친 시간은 순간일 수도, 구간일 수도 있다. 현재는 의도한 시공간 혹은 인지하지 못한 시공간과 겹쳐져 기막힌 결과를 만든다. 가끔 노력으로 일군 결과인지, 우연의 결과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최상의 결과를 얻는 운수 좋은 날도 있다.


운칠기삼에서 운의 7할은 타이밍인 것 같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은 언젠가를 위해 타이밍을 크로와상처럼 쌓아놓고 대비한 사람이 아닐까. 그럼에도 모두가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다고 믿는다. 항상 운이 좋은 사람도 없고, 항상 운이 나쁜 사람도 없으니까.





용봉산 

2022년 1월 31일 월요일, 타이밍 좋게 고대하던 정상 위의 일몰을 만났다. 정상에서 지는 해를 보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며 묵언 산행을 했더랬다. 오르는 내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정상에서 노랗고 붉은 해를 만나니 황홀경에 심장이 터져버렸다. 연일 산행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사람 없는 일몰산행

5시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매표소 직원분이 퇴근하고 계셨다. 5시 이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안전히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2,000원을 아꼈다는 사소한 기쁨과 함께 모두가 퇴근하는 저녁에 산을 오른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안과 다르게 산은 오르는 내내 여전히 밝게 빛나며 아름다웠다.



#해는 지고, 마음은 급하고

그날 일몰예상시간은 5시 58분이었다. 5시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8분. 산이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갈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폐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기분일 때만 간간히 쉬며 빠르게 올라갔다. 다행히도 올라갈 때는 풍경 없는 산길이어서 미련 없이 오를 수 있었다.



#감격스러운 정상의 일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풍경이 트이기 시작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해 울먹이며 산에 올랐다.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감격스러웠달까. 산에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으므로 그림 같은 풍경을 누리는 사람도 우리뿐이었다. 엄청난 특권을 누린다는 감동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정상의 감동은 말해 뭐해! 완벽한 절정의 타이밍에 도착하여 느긋하게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 보자 용봉산

해와 함께 요리조리 사진을 찍었다. 손으로 잡아보고, 머리 위에도 올려보고, 품에 안아도 보았다. 항상 정수리 위에 떠있는 해인데, 산에서는 이리 반가운 이유가 무엇일까.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용봉산은 또 와야만 하는 산이라고 확신했다. 오를 때도 심장을 터지게 하고, 올라서도 심장을 아프게 하는 산은 한 번의 산행으론 온전히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기

용봉산에 다시 올 것을 다짐하니 오늘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졌다. 이번에 즐기지 못한 부분은 다음에 와서 즐기면 그만이다. 정상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하면 하산할 때 분명 위험해질 것이었기에 미련 없이 정상을 떠났다. 하산의 타이밍 역시 좋았다.



#산행을 마치며

일몰산행은 처음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산이 너무 많아서 두 번 방문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180도 바꿔놓았다. 산은 일출, 정오, 일몰 그리고 사계절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똑같은 산이라도 방문할 때마다 적어도 12번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산행으로 산을 온전히 경험했다고 생각한 내가 어리숙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산에서 겸손을 배워간다. 배움의 타이밍 역시 그간의 경험, 마음가짐, 체력, 주변 환경 등 여러 요소들이 블록처럼 맞춰진 덕분이겠지. 그날의 산행일지에는 '용봉산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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