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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31. 2023

"여느때나 다름이 없는 2023년 마지막날이 저물었다"

평범한 하루의 일기를 쓰다.




1. 올 한 해 저의 상담사가 되어주신 브런치에 고맙습니다. 가만히 듣고 귀 기울여주고, 아무 말없이 지켜보기만 해도 고마웠습니다. 따로 비용을 청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섬세하게 글이 읽히고 검열되고 있음은 감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회수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는 일도 있었으니깐요.


2. 한 해 동안 부족한 글도 읽어 주시고 댓글도 주시고 제 글에 반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이 더 많이 생기시고, 그 어느 해보다 푸른 용의 기운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023년 마지막 날이 밝아 왔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요일 휴일이다.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되어있어 자전거 라이딩은 취소되었다. 아침 8시쯤 일어나 회색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어제 읽던 [클루지]를 두 번째로 읽으면서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내가 산 책들, [역행자]에서 자청이 추천한 21권 시리즈 중 정점을 찍는 책이었다. 여태 앞에서 읽었던 10권 남짓의 내용들이 이 한 권에 총망라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한번 더 읽고 싶을 만큼 나의 뇌리에 박히는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부의 추월차선]을 읽었다. 소설 같은 느낌의 시작으로 술술 익히기 시작했다. 나는 형광펜을 꺼내서 곳곳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좌:부의 추월차선의 인상깊은 이야기/우:학창시절 배웠으나 까먹어 검색해서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찾아봄)


이상한 날씨의 하루다. 밤새 비가 온 것이 앞동 아파트 꼭대기 옥상베란다의 물기 젖은 마룻바닥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아침 8시를 조금 넘기기 시작하자, 하늘이 걷히더니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그 빛이 의식이 되는 것이 책에 음영을 그리면서 숨바꼭질하듯이 다가왔다.

(아침 햇살이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봄)

뉴스나 검색을 하지 않으면 일 년의 마지막 날인지 알 수가 없다. 10시전에 큰아이는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오전 10시 반쯤 세탁기의 알림음이 아들의 주짓수 옷이 다 세탁되었음을 알려왔다. 안방 베란다에 세탁물을 널려다 그만 기절할 거 같았다. 위층과 연결되어 내려오는 물 내려가는 배수구(밑에 사진있음)옆에 시커먼 곰팡이가 천정에서 바닥까지 숨어 있었다. 본 순간 멈출 수가 없었다. 쓰고 남은 스프레이 통에 락스를 담았다. 화장실 손잡이 달린 세척솔, 부엌 털실 수세미. 식탁의자, 소파 위 쿠션까지 총 동원해 안방 베란다에 나갔다. 전쟁이 난 거처럼 오른쪽 손등이 긁히는 것도 잊고 손가락이 어딘가에 찔린 것도.(나중에 난 영광의 상처를 보고 알았다.) 치열하게 곰팡이를 위에서부터 몰살시켜 나갔다. 밀고 씻고 뿌리고 정신없이 청소를 하다가, 베란다 물뿌리개를 바닥에 내린 것이 그만 안방을 향하여... 오늘 하루 안방에 물난리가 났다... 휴.


다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11시 28분이었다. 자고 있는 아들에게 짜파게티 먹을 거냐고 물었다. 3개를 끓여서 아침 겸 점심으로 흡입하듯이 둘이 나눠 먹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잊고 싶어, 다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필름을 빠르게 돌리지 않으면 내가 그저 한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던 걸로 나올 거다. 똑같은 자세로 딸이 알바를 마치고 올 때까지 있었다. 오후 2시 9분이 되자 딸이 돈가스를 점심으로 싸가지고 왔다. 등심돈가스 제일 큰 부위를 손으로 집어서 먹었다. 다시 나의 소파자리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어서 행복했다. 낮시간에 볕이 어디로 들어와서 물러가는지, 공원의 분위기가 어떤지 간간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평범한 일요일 오후 나절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하루가 의식이 되는 해넘이 시간이 왔다. 오후 5시 4분이다. 안방 창문으로 내다보면 정확히 서향이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잡았다.

(좌:설명으로 모를 것 같아, 주짓수 상의가 널린 베란다 틈새를 사진 찍어봄/우:2023년 12월 31일 오후 5시 4분 해넘이 사진)

잘가 나의 23년이여. 참 즐겁고 행복한 일도 많았고, 아들 때문에 속상한 일도 많았던 한 해였어. 사랑받아 행복했고, 받은 만큼 나눠주지 못해 미안했어. 아무 탈없이 지나간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 고마워. 나의 23년 잘가 안녕 영원히... 종일 집안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신다. 마지막 날은 운동으로 마무리해야지. 5시 반이 넘어 지하 헬스장에 갔다. 아뿔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다니 놀라웠다. 근력운동을 30분 정도하고 머신 위에서 30분가량을 서서히 걸으면서 브런치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참으로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운동을 마치니 저녁이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뭘 먹이지... 내일 아침은 또 뭘 하지... 새해보다는 쉬는 날 아침을 제대로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선다. 딸을 데리고 마트에 갔다. 저녁 먹을거리와 타종을 지켜보며 먹을 과자와 간식거리, 내일 먹을 고기류와 야채를 집었다. 박스에 담아 둘이 번갈아 들어가며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손이 시렸다. 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에 장식된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참 이뻤다.

(마트에서 먹을 거 잔뜩 사들고 오던 행복한 순간들)



마트에서 사 온 단팥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참 달콤하고 맛있다. 내년에도 이런 달콤하고, 잔잔하고 맛있는 일상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여느 때나 다름이 없는 2023년 마지막 날이 저물었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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