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집에 대한 단상-나의 영혼이 서려있는 마당 있는 집 1092번지
보리 꺾어 청피리 불어대던 오라버니 어디 가고.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구슬 피게 불어 대누나.
매섭고 큰 손바닥으로 이유 없이 맞은 누이 허벅지.
몰래 어른들께 일러바칠까 아직도 문지방 너머 귀 기울이던.
오라버니 어디 가고 청피리 소리만 작은 방안에 감겨오누나.
검은 교복모자, 교련복, 교복 입고 다시 그 집에 나타날까 봐.
정지 밖의 구멍 뚫린 쇠바구니 보리밥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
돌아올이 아니 오고 구슬픈 피리소리만 마당 울어 가득하고.
어찌 가셨습니까. 나의 어린 오라버니여. 쉰 목으로 다시 불러보누나.
오빠는 아버지 조강지처의 둘째 아들이었다.
당시 오빠는 엄마랑 같은 유전병(만성신부전)으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예후가 좋지 않아 집에서 연명치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급한 목소리에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작은 방에 누워있는 오빠 곁으로 갔다.
슬그머니 아랫도리에 손을 넣었다.
그것이 내가 목격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 오빠는 J기계공고에 다니던 2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려서 죽음을 보았지만 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서서히 쌓여 왔다.
그래도 마당 가득 원추리가 피어났다. 노오란 창포가 담장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아랫채 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동생과 나는 자주 들여다 보기도 하고 소꿉장난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김지미의 엘피판도 있었고 나훈아도 있었던 거 같다.
당시 누군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김지미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동생과 자주 할머니 몰래 놀러 다녔는데 동생도 학교에 가고 친구가 생기더니
집안 일도 많은데 늘 놀러 다녀서 혼내기도 했다.
벼도 멍석에 펴서 마당에 널어놓으면 한 번씩 발을 옆으로
벌려 원을 그리며 돌듯이 뒤집어서 말려줘야 했다.
추수가 끝나면 지푸라기를 마당에 펼쳐서 바짝 말려야 불쏘시개로 잘 탄다.
한 번은 동생을 혼쭐이 나게 뭐라 했다. 그만 싸돌아 다니라고.
잠시 후 돌아서서 보니 동생이 사라졌다.
아랫채마루에 비어 있던 장독대가 눈에 훅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은 우물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