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중간고사 마치고 전동킥보드는 안팔리고
직장을 나선다.
비가 방울 방울져 초록의 벚꽃나무 잎사귀 속살로 흘러내린다.
"휘이휙"
내가 뭘 잘못 본 것인지.
하늘색 바람막이 잠바가 전동 킥보드 위에서 휘날리며 빗속을 달리고 있다.
저건 분명 내 아들이다!
"S야"
빗소리결에 들린 내 목소리에 아들은 잠시 반응하는 둥 마는 둥 살짝 고개를 돌린 후 곧바로 말없이 내달린다.
'아 저녁에 비가 와서 결국 학원시간 맞추려고 팔리지도 않는 킥보드를 타고 가는구나.'
아무 생각 없이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계속 마음이 아들에게로 간다. 요즘 알 수 없지만 계속 아들은 저기압이다.
순간 내가 조금 일찍 퇴근을 했다면 태워 줬을 텐데.
저렇게 비를 홀딱 맞고 바람같이 스쳐 지나간 아들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과연 나는 좋은 엄마일까. 늘 일 핑계로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한 것이 하필 이런 비 오는 날 맘에 걸린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브런치 스토리 잇님들의 글을 읽기도 하고 통계도 눌러보고 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들이 학원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다.
띠링.
-엄마 데리러 갈까
-네 그럼 좋죠
잠시 문자를 주고받은 후 온 길로 다시 되돌아 나갔다.
비가 세차게 온다. 와이퍼가 밀어내는 빗물이 후미등에 아롱져 빨갛게 번져 내리니 와인빛 얼굴을 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비가 오면 이렇듯 지난 추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책 속의 한 장면도 생각이 난다.
(나는 지금 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 우산 씌워주러 가는 거야.)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나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어젯밤 늦게 까지 글을 쓰느라 아껴 두었던 잠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마치 알람을 맞춰둔 것처럼 마치기 5분 전에 깨어났다. 빗줄기가 더 거세진 듯하다.
학원 입구를 노려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꽈당. 삐익.
분명 누군가 넘어졌고 상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봤다. 늘 아들이 신던 낡은 슬리퍼와 검게 그을린 발과 다리.
옆으로 지나가던 여학생 두어 명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놀라 급하게 뛰어갔다.
(아마 차의 문턱에 내 발이 걸렸더라면 차를 질질 끌고서라도 쫓아 나갔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었더라도 다 뚫고 달려 나갔을 거라는 뜻이다. )
"괜찮아?"
"아 네. 분명히 바닥이 젖어 있는 걸 봤는데...
앞에 같은 학원 여학생들이 있어서 그만 안 다치게 하려고 옆으로 튼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한다. 내가 아프고 싶다. 무거운 책가방을 어깨에 맨 채 엉덩방아 찧듯이 미끄러졌다.
"아. 허리가 아파요. 아 걔네들 다 우리 학원애들인데..."
"조심하지. 왜 비 오는데 바로 앞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데 킥보드는 타고 그래..."
허리 아프다는 소리에 괜스레 내가 더 화가 나서 말했다.
무거운 책가방을 내가 들고 킥보드는 접어서 작게 만든 뒤 뒷 트렁크에 실었다.
"아 허리가 계속 아프네."
"편하게 의자 뒤로 젖히고 누워. 뭐 마실 거 라도 사 올까?"
"아뇨. 빨리 출발해요."
내일은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다.
안 그래도 일하던 중에 내일쯤 성적표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학교 단체 발송 문자가 왔다.
달리던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성적표 언제 오니?"
"내일쯤 올 거예요."
"......"(둘 다 침묵)
빗속에서 신호등 대기 중 커다란 유명 빵집 간판만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아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엄마 이번 시험 완전 망쳤어요."
과학시험은 이번에 선생님이 다 바뀌면서 문제 내는 게 정말 틀려졌어요.
수업은 비슷하고 여자 과학샘은 잘 가르쳐 주셨는데 정말 문제 내는 거는 사악해요.
객관식 한 문제당 배점이 너무 높아요.
수학도 학원에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3학년 되니 문제가 많이 어려워졌어요.
영어는 여태 친 시험 중에서 제일 잘 쳤어요. 이번 시험 과목 중에서도 제일 잘 나왔고요.
국어는 여전히 어려워요. 작년 담임이셨던 Y선생님은 문제를 여전히 까다롭게 내시고
국어문제는 사소한 하나만 틀려도 전부 감점이에요. 감점 요소가 너무 많아요.
사회는 정말 문제를 많이 풀고 열심히 외웠는데도 성적이... 암기과목 정말 너무 힘들어요."
여기까지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재잘거리는 참새처럼 쉴 새 없이 학원에서 집으로 오는 사이 떠들어 댔다. 마치 성적표와도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선수를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암기과목을 그렇게 못 치면 어떡하니.
공부는 한만큼 딱 나오는 거야. 속이는 게 없어.
네가 얼마나 엉덩이 붙이고 공부했는지 생각해 봐."
"그런데요. 참 이상해요.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데. 시험 문제지를 받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 같아요. [나]라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중간에 말을 시키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까 봐 가만히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정말 글렀나 봐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인간 같아요.
최소 B대학은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돼요. 정말 조금 더 해보고 안되면 다 포기하고 싶어요."
마음이 착잡해졌다가 이젠 갑갑해져 왔다.
"정말 그래요. 자꾸 나보고 운동을 좋아하니 운동으로 대학가라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운동으로 대학 가고 싶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공부를 해서 머리에 든 것도 있고 공부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절대 오해 마시길 바란다. 그냥 아이의 생각일 뿐이다. 운동하는 사람이 머리에 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 느닷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S야 엄마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다 공부를 잘한 거 너도 알잖아. 오죽하면 엄마는 학교 매점 화장실에 암기과목 모두 백점 맞은 종이가 똥딱개로 묶어져 있었을까. 그러니 너도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니란 말이야."
그냥 그 순간을 모면하고 아들이 기본적으로 나쁜 머리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란 걸 말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안다고요. 아니깐 내가 이러죠. 한마디로 내가 이상한 놈 같다니깐요. 왜 이렇게 잘 안되는지 해도 안되고...
저는 아무리 공부해도 안 되는... 아무리 해도 성적이 안 나와요... 대체 엄마나 누나는 어떻게 그렇게 백점이 나와요... 그냥 너무 신기해요..."
이젠 마음이 착잡하다 갑갑해지다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엄마인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들아.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아직 수능 치려면 3년 반이나 남았어.
그러니 이제 엄마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누나에게도 얘기해 둘게... 엉? 그러니..."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엄마는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해요. 누나나 학원선생님하고 상담해 볼게요."
조금 서운하긴 하다. 엄마는 필요 없다고 하니. 그래도 알겠다 하고 방법을 찾겠다 하니 다행이다.
"아직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에요. 한 번은 더 해볼게요. 또 해봐도 안되면......"
다시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 거 같았다. 주차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더 이어졌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
"요즘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어요. 아니 누가 내꺼랑 똑같은 전동 킥보드 새 거를 16만 원에 내놨어요. 완전 새 거예요.
비닐 포장이 그대로 붙어 있는 데도 있고. 그러니 내 킥보드가 나가겠어요... 그게 팔려야 나가겠죠."
화제를 바꾸며 주차장을 걸어서 오면서 한마디 했다.
"근데 너 오늘 입은 옷이 왜 그러니? 그거 위에 옷은 이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준 거고 밑에 반바지는 너무 낡았어. 옷이 많은데 왜 그렇게 입고 다녀?"
"엄마 저 입을 옷이 없어요. 옷이 다 낡았어요.... 그리고 요즘 언제 제가 옷 사달라고 한 적 있어요?
없잖아요...."
마음이 계속 착잡하고 갑갑하고 아프고 아려오다 무거워진 상태로 아침에 나갔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