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아들에게 부탁한 세 가지
딸아이와 공동구매한 물건을 찾으러 근처 마트에 갔다.
"공동구매한 물품 수령하러 왔습니다."
"네. 계산 먼저 도와 드릴게요."
"아 잠시만요. 다른 필요한 것도 조금 더 사고 나서 결제 같이 할게요.
H야 먹고 싶은 거 더 골라서 와."
"아 쌀이 없구나. 쌀부터 사자."
여러 가지 쌀종류를 둘러보고. 오늘은 딸이 있으니 조금 무거운 것도 한꺼번에 샀다.
든든하다. 딸이 있으니 제가 시간이 날 때 도와 달라 요청하면 언제든지 예스다.
밤새 리포트 쓴다고 잠을 안 자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학교로 가는 아이.
주말마다 붐비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 다 쓸려고 하면 다른 얘기는 못한다.
여하튼 내겐 이런 딸이 있다.
지하주차장에서 딸이 있으니 내가 누르던 비번도 딸아이 핸드폰으로 누르는 것도 없이 프리 패스다.
집에 와서 아이는 사온 콩국물과 우뭇가사리를 넣어 한 사발 말아 마신다.
"띠리링. 띠리링
현관에서 호출 신호가 왔습니다."
어? 누구지? 하는 순간 모니터를 보니 화장실 거울 수리업체분이 오셨다.
한주간동안 바빠서 잊고 있었다. 오늘 방문하러 오시는 날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두 개의 화장실 청소에 들어가시겠다. 바깥 화장실은 공용인 데다 아들이 안 쓰니 나름 깨끗하다. 더러워도 어찌하랴. 시간이 없다. 대충 거울 바로 밑에 있는 물품만 정리해 뒀다.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 이 머리카락들. 안방에서 샤워하고 비데가 있어 모든 볼일을 보시는 아들 때문에 엉망이었다. 어제 아침까지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잘못 본건 아니지. 얼핏 보면 누런 것이 군데군데 똥을 흘린 것 같아 보인다.
"대체 이건 뭐지?
H야 이건 뭐니? 엄마 엄청 화가 난다. 대체..."
자세히 보니 쓰레기통에 썬칩 봉지가 있다.
"아 요 녀석이 요즘 화장실에서 먹던 버릇이 들더니 썬칩 가루를 군데군데..."
치우고 돌아서니 바로 욕실거울 수리업체 직원분이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얼마나 걸릴까요?
"상황에 따라서 조금 틀립니다.
마음만 주시면 됩니다. 허허."
예순은 조금 넘은 듯 보이신다. 검은 안경테를 바로 벗어두시고 작업을 시작하신다.
거실에 앉아서 3단 분리수거함 검색을 30분 이상 딸아이와 하고 있었다.
바깥 욕실에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부딪히는 소리, 미닫이 문 작동소리, 다시 문을 빼는 소리.
다시 틀에 맞춰 끼우는 소리가 기계음처럼 계속 반복해서 들려왔다.
"엄마. 알바 갈 시간인데 어디서 씻고 나갈까요?"
"금방 끝날지 모르겠다. 그냥 안방에서 씻어."
"머리만 금방 감고 나갈 건데... 공용화장실이 빨리 끝날 거 같으니깐. 그냥 밖에서 씻을게요."
"응"
밖에 나가서 잠시 지켜보고 오더니,
"엄마 안 되겠어요. 그냥 안방에서 씻을게요. 밖에 보니..."
나는 별생각 없이 기계음이 반복되는 것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딸아이는 급하게 안방에서 머리만 감고 나왔다. 갑자기 바깥일을 마치고 들어올까 봐서라고 했다.
머리 말리려는 아이를 따라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
"아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니... 흐읍...
수리업체 분이 며칠 동안 계속 연락이 와서 퇴근 이후 수리시간 잡는다고 했는데 6시 반 이후로...
근데 계속 저런 이유로 예상시간보다 늦어져서 늦게 오신 게 아닐까...
"혼자 얘기하다 반이상 웃으시면 제가 어떻게 알아 들어요..."(같이 웃는다.)
"아니 저분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혼자 상상을 해보니(또 몹쓸 병이 도진다.) 며칠 동안 온다고 계속 말하고 못 온 이유가 일이 저렇게 예상시간보다 늦게 끝나니 못 오신 거 같아..."(죄송하면서도 한번 터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안방에서 나온 나는 오렌지 주스를 투명 꽃그림이 그려진 컵에 담아서 준비했다. 얼음도 동동 띄워서.
다시 기계음이 계속 반복된다. 부딪히는 소리, 미닫이 문작동 소리, 이어 문을 빼는 소리, 다시 틀에 끼어 맞추는 소리... 언제 끝이 끝날까...
나는 다시 3단 분리수거함 통 검색을 하면서 이 파트[사춘기아들과의 자충우돌이야기] 주인공이신 아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답장이 없다. 오전 11시 넘어 학원 원장님 호출로 나갔는데 안 들어온다. 큰아이가 늦게까지 학원에서 문제풀 예정이라고 귀띔해 준다.
띠리링 문자를 보낸다.
-S 잡아 둔 원장님 홧팅. 조만간 커피 들고 갈께욥(하트)
-아이코 아닙니다ㅠㅠ ㅎ
큰아이는 알바 간다고 마무리 화장을 하면서 왔다 갔다 한다.
드디어 바깥 작업이 끝났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오렌지 주스 좀 드시고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꼼꼼하신 분이신 거 같습니다.......(잠시 할 말을 생각한다.)
여러 번 반복해서 문이 잘 작동되는지 확인을 하시더라고요."(잘못 말이 튀어나올까 긴장되었다.)
(주스를 벌컥 마시면서)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어떤 때는 저게 한 번에 잘 걸려서 금방 되고 어떤 때는 저게 위에 있으니 잘 안 보여서
작업하는데 오래 걸립니다. 그때그때 틀립니다."
(너무 솔직하신 모습에 죄송스러운 맘이 들었다.)
딸아이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방 화장실 작업대로 옮기셨다.
"딸이 있으니 참 좋지요? 딸이 있는 게 너무 부럽습니다.
몇 학년인가요?"
"2학년입니다. (22살을 착각하여 그냥 3학년인데... 2학년이라고.)"
거울을 안방에 눕히며 왔다 갔다 하신다.
"저는 아들만 둘입니다. 다들 출가해서 며느리도 있는데 저는 딸이 너무 부럽습니다.
며느리들이 정말 잘하지만 그래도 딸만은 못하더만요. 너무 부럽네요. 정말 좋지요?"
잠시 뒤 갑자기 줄자를 찾으신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신다.
"제가 아까 줄자를 들고 가신 걸 봤어요. 제가 다시 찾아볼게요."
안방과 바깥 화장실을 다 둘러봐도 없다. 다시 중문 바깥으로 나가봤다.
줄자가 바깥 중문 틈사이 옆에 올려져 있다. 분명 열린 중문에 걸쳐져 있는 걸 들고 가신 걸 봤는데
언제 다시 여기다 옮겨 놨을까...
"제가 정신이 이리 없습니다. 아무 기억이 안 나네요."
생각보다 안방은 빨리 끝났다.
"정말 빨리 끝나셨습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네 이제 날도 더워지고 힘이 드네요. 사실 아까도 말했지만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떤 때는 턱 걸려서 빨리 일이 끝나고 어떤 때는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지금 다시 U시로 가야 합니다. 그것까지 마쳐야 끝이 납니다.
원래는 사우디아라비아 하고 쿠웨이트에서 8년간 해외근무를 했었어요. H중공업 건축일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퇴직하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진 않았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 나이가 66세입니다."
"아.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그러면서 40년 정도 대기업일을 하다가 은퇴를 했습니다. 친구들도 은퇴 후 감축일을 봅니다. 그 일은 제 일보다는 덜 힘들어요. 저는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하다 보니 그렇지요."
빠르게 다시 줄자포함 짐을 꾸려서 바꿔 단 유리 두장을 들고나가신다. 먼저 엘리베이터 호출을 하였다.
가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엘베 앞으로 배웅하러 나갔다.
주인공 이야기가 빠진 변두리 인물들과 잡다한 사람 사는 이야기만 했다.
사실은 아까 화장실 썬칩가루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전화를 걸었었다.
전화를 안 받았기 망정이지 받았으면 [abcdefu] 흘러나왔을지 모른다.
5시 28분 학원 알림이 울렸다. 안전하게 하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알바 가는 딸에게도 엄마가 오늘 한번 단단히 혼낼 테니 동생 편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중문을 열고 아들이 들어선다.
"뭐라도 좀 먹을 거니?"
"네."
"양은?"
"적당히"
이번에 태어나서 첨으로 밀키트를 사봤다. 굶기는 것보다 밀키트라도 낫겠다 싶어서다.
[낙곱새]다. 물을 150밀리리터 붓고 9분 정도만 끓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편한 게 있다니. 먹어보고 아이들 반응이 좋으면 온 냉동실을 가득 채울 기세로 끓였다.
끓이면서 살짝 곱창을 1점 먹어봤다. 어라 아무 맛이 안 난다. 그냥 곱창이네...
다시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먹어봤다. 끓일 때부터 빨간 거품이 너무 심하게 올라와 조금은 의심이 되었다.
음. 그냥 약간 매콤한 국물맛이다. 에라 모르겠다. 냉장고 대파를 작게 썰어서 우수수 뿌려줬다.
"먹어봐. 김치도 줄까?"
물과 함께 식탁에 내려놨다.
"아니요."
"맛은?"
"엄마는 먹어 봤어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직업병일지도.)
"으응. 곱창 1점..."
"어땠어요?"
"그냥..... 먹을 만은 하던데."
"담부터 사지 마요."(대화는 여기서 끝이다.)
눈치를 살핀다. 할 얘기를 벼르고 별러서 3가지로 압축시켜 놓고 오늘 터뜨릴 건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단 밥은 먹이고 해야겠다 싶어서 기다렸고. 밥을 다 먹은 뒤도 또 나는 내 아들이라도 눈치를 본다.
요즘 오랫동안 저기압이기 때문이다.
식탁에 가니 마지막 밥 한술이 남았다.
"도저히 못 먹겠어요. 담엔 절대 사지 마요."
"S야 엄마 할 얘기 있어."
"뭔데요?"
"딱 3가지다.
첫째 화장실에서 뭘 먹고 흘리지 말 것. 흘린 것 쓰레기통에 담아줘. 썬칩보고 열 많이 받았어.
둘째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 엄마가 적어도 깨우면 일어나서 지각 않고 학교 갈 것. 더 이상 참기 힘들다.
셋째 방에 쓰레기통옆에 과자나 음료수팩 쌓아두지 말 것. 바로 옆에 뚜껑 열고 버려줘.
이것만 지켜줘. 더 이상 말 안 한다."
"알겠어요."(한마디도 토를 다는 것이 없다.)
순순히 말하고 방에 들어가는 뒤통수에 대고
"네가 말한 성적은 다 들었는데 성적 통지표 지금 당장 들고 와"
바로 들고 나와서 확인해 보니 말한 그대로다. 거짓말은 없다. 쭉 훑어보다가 할 말이 남아서 아들 방에 노크 후 다시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가방 안에 든 학원 문제풀이 복사지와 연습장, 양말 3짝 , 필통, 안경, 빗, 시험문제지들이 나에게 반항하듯이 펼쳐져 있다.
숨을 한번 크게 내쉰 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니? 지금 이거 나보라고 이렇게 펼쳐 놓은 거야? 네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대체 너 무슨 일이 있는 거니?
"......"
아무 말이 없다.
"말을 하라고 말을. 엄마가 뭐든지 알아야 도와주지."
"말하면 뭐 할 건데요? 뭘 도와줄 수 있는데요?"
"그래도 네 엄마야. 말을 하고 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알고 있으니 좀 털고 나면 나아져."
"다 필요 없다고요. 너무 힘들다고요."
아들은 눈물 콧물을 범벅으로 쏟으며 갑자기 침대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