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아들의 생일과 운 이유를 듣다...
아들이 지난 토요일 퇴근하자마자 조른다. 입을 옷이 없으니 아울렛 가자고. 기진맥진으로 주 6일을 달린 후 오늘은 퇴근해서 잠 좀 자자를 외치면서 들어선 참이다. 이 녀석은 참 집요하다.
"응 알겠어. 엄마 밥 좀 먹고 출발할까. 배가 고파"
"네."
사고 싶은 목록은 반바지 반팔이라 한다. 일단 접수. 가봐야 아는 것이다. 쇼핑하다 보면 목록이 많이 추가된다. 주차장을 나서서 도로로 나오니 주말이라 차가 붐빈다.
L아울렛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정말 오랜만에 쇼핑하러 나왔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나도 봄원피스도 사고 싶고 신발도 사고 싶다. 여기저기 쳐다보니 눈이 돌아간다. 일단 오늘은 아들이 우선이니 먼저 사고 내 것도 시간이 나면 돌아보자.
아들은 N사에 꽂힌 듯 바로 가자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지. '가정의 달이구나' 뒤늦게 알았다. 할인행사를 많이 하나보다. 그래도 이 정도 인 줄은 몰랐다.
"출입 안됩니다. 순번대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들은 QR코드로 입장 순서를 받아냈다. 대기자 76명 정도.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그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퇴장하는 대로 우리 순번도 짧아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기가 찰 정도다. 상상이상이다. 특정 코너 쪽은 사람들에 밀려다닐 정도로 많다. 아들은 반팔티를 보더니 웬걸.
갑자기 신발코너로 갔다. 신발을 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꼭 사고 싶은 기세다. 여러 켤레를 신었다 놨다 하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곧 생일이다. 이 정도는 사줄 능력이 된다. 신발로 생일선물을 대체해야겠다.
'그래 좋아 사도록 해.'
스포츠 웨어 코너로 갔다. 자꾸 내가 너무 튄다고 생각하는 옷을 골라서 예쁘다고 한다. 그 옷을 사람들도 많이 입어보고 한다.
"엄마 학교 친구가 보여요. 잠시 인사하고 와도 돼요?"
"당연하지. 갔다 와"
초등학교부터 친구로 부모님과 셋이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아들과 엄마는 각각 옷을 고르고 아버지는 계산 대기줄을 선다고 했다. 줄이 얼마나 길었는지 보성녹차밭 겹쳐진 둘레길처럼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 계산대에 갔다.
"손님. 이번행사는 3개 사면 00%고 4개 사면 00%로 할인 폭이 더 높습니다. 3개를 사셨으니 29일까지 행사라 영수증 들고 와서 1개 더 사시면 할인 많이 받으실 수 있으세요."
야무치게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까지 치면서 설명하는 여자 직원이 너무 예뻐 보였다. 이런 날 이렇게 환하게 웃다니. 우리는 사람들 틈에 끼여 돌아다니느라 할인율에 대해 보지도 못했다. 알았으면 '누나 티라도 하나 더 사는 건데'하면서 다시 줄을 설 엄두조차 나지 않아서 바로 계산 후 나왔다.
아들은 신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본다. 생일선물로 퉁친다고 하니 그래도 좋다 한다.
L아울렛을 빠져나오는 차 안에서 좋은 기분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엄마 이번 수련회에서 노래 부르기 했는데 1등 했어요.
7명이 나갔고요."
"뭘 불렀는데? 한번 들어보자."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준다. 제목은 에이치코드[꿈속의 너]라고 한다. 첫 소절을 부르니 같은 학년 아이들이
우~ 와~ 오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다음 소절에서 삑사리가 낫다며 한사코 들려주기를 거부한다.
거의 집에 다 와갈 무렵.
"엄마 아까 신어본 그 C사 그 목이 올라온 보라색 그 신발 진짜 살려고 했어요?"
"응 진짜 예쁘더라. 이월 상품이 없다고 해서 못 샀지. 반값세일이던데..."
"아 진짜.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거 신으니 할머니 같았어요. 그거 전혀 안 어울렸다고요.
엄마 제발 좀 꾸미고 다녀요. 왜 그러고 다녀요?"
"네가 생각해도 엄마가 예쁘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그냥 그렇게 말해본다.)
"대체 엄마는 언제부터 나이가 들었다 생각하시는데요?"
"음... 엄마는 50세 정도부터... 사실... 지금도 정말 마음은 40대 초반... 아니 20대 같아."
"저는 70세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엄마는 아직 꾸밀 수 있는 나이가 20년이나 남았다고요.
지금 입은 치마 좀 보세요. 이게 뭐예요. 위에 남방은... 색깔도 전혀 안 맞아요..."
말은 더 하지 않았다.
'엄마도 더 예쁜 옷 사 입고 싶어. 니 네들 입히고 먹이고 하니 돈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 엄마도 더 늦기 전에 꾸미고 다닐게. 50이 되면 이젠 모든 미모의 평준화라고 이모가 기억을 상기시켜 줬었지'
"너무 사랑해 아들. 엄마 눈은 온통 누나랑 네 생각으로 이글거릴 뿐이야."
가만히 다시 엎어본다. 노래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너를 사랑해 언제 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사랑해요 어머니 언제까지나
사랑해요 어머니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은 늘 나의 어머니"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책중에서-
나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같이 울면 안 되니깐. 나는 엄마니깐.
강하게 보여야 한다. 무슨 이유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어떻게라도 도와줘야 한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아이가 저렇게 대성통곡을 하기까지 나는 대체 뭘 하는 여자였나.
진작에 먼저 이유를 물어보고 도와줘야 했는데. 나는 아들의 엄마다...
한참을 큰 소리로 우는 아이를 보며 각티슈를 들고 왔다. 갖다 대어 줘도 고개를 숙이고 계속 운다.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휴지를 손에 줘도 거절한다.
갑자기 참고 있던 나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냥 같이 울었다...
아들의 눈물이 잦아들고 고개를 들었으나 눈에는 손을 갖다 댄 채 표정을 알 수가 없다. 휴지를 주니 콧물을 닦는다. 글을 쓰대느라 직장일 핑계로 혹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온통 나를 위해 한 일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S야 말을 해줘"
"다 아시챦아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그래 언제인데?"
"몰라요. 묻지 말라고요. 다시 생각하면 더 힘들어요."
Y랑 사귄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걸로 안다. 1년 기념을 준비한다고도 했다. 뭘 해줄지 이미 계획은 다 세웠는데 돈이 문제라고 했다. Y가 착한 아이라 물어보니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도 했다. 손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고. 가끔 내가 있을 때 집에 잠깐씩 와서 요플레나 마트 연어 초밥을 내가 사 와서 같이 먹기도 했다.
짐작은 했지만 대체 언제 헤어진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유라도 알고 싶은 것이다.
"이유라도 알자. 대체 왜?"
"말하기 싫어요. 생각하면 더 힘들어요.
더 묻지 마세요. 더 하면 내가 화를 낼 거 같아요. 제발 나가주세요.
그만하시라고요."
"그래 알겠어. 혹시 중간고사 전에 헤어진 거니?"
"네에에..."
더 묻고 싶고 더 알아내고 싶었으나 아들이 불편해하는 걸 감수하고서까지 묻고 싶진 않다.
시간이 필요할 일이다. 하지만 더 오래 길지 않길 바란다. 나를 위해서 아들의 일에 집요하게 물었던 게 아닌지 아들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 글이 써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아들이 뭔 훗날 이 글을 보면서
미소 짓기를 바란다.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알길 바란다. 엄마가 언제나 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싶었단 걸 알길 바란다. 비록 엄마는 불행하게 컸어도 아이들에게만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한참뒤에 아들방 문이 열렸다.
"엄마 저 한 바퀴 돌고 올게요."
-다음 편에 계속-
(덧붙임글)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다.
어제저녁에 간단히 미역국에 잡채를 해서 우선 먹였다.
오늘은 늦잠을 자게 한 뒤 일찍 마트에 걸어가서 재료를 사 왔다. 숙주와 시금치나물을 했다.(여드름에 도움이 될까 해서.)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O사에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너무 비싸다...) 그래서 그냥 식육점에 가서 한우 등심 부위를 사 와서 구웠다. 생일케이크에 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그리고 태어난 날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주 짧게만. 먼 훗날 아들에게 자세히 얘기해 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저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 아이가 빨리 스스로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S야. 엄마가 네가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난 뒤 수련회에서 불렀다던 에이치코드의 [꿈속의 너]를 들어봤어. 네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어. 네가 지금 힘들어하는 만큼 이상으로, 엄마는 그 애절한 가사보다 더 널 안타깝고 속상한 맘으로 지켜보고 있어. 언제나 네가 손만 내밀면 도움줄 거리에. 사랑하고 또 사랑해. 엄마가 받았던 고통은 네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꼭 약속할게. 다시 사랑해.
아들아."
*부족한 긴 글들 읽어 주셔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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