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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쳐스 하이랜드 Aug 23. 2023

아버지와의 생맥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아들, 집 앞에 새로 생긴 가게가 있는데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


철이 없던 시절에는 아버지의 저 말이 너무 싫었다. 그냥 집에서 간단하게 먹으면 되지 왜 굳이 나가서 드시려고 할까?라는 생각에 거절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술을 너무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지는 집에 계실 때 항상 약간 술에 취해 있는 상태로 계실 때가 많았는데 그 모습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식사 제안을 받을 때마다 너무 기쁘다. 이제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이 같이 남자로서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우리 아버지는 예전부터 성실하고 묵묵히 일만 하는 과묵한 가장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만큼 지금도 순수한 사람이기도 하다. 


젊으셨을 때는 굉장히 거친 부분도 있으셨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으셔서 상당히 유해지셨다. 인상도 예전보다 훨씬 온화해지시고 여유로워진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으면 들을수록 부드러워진다는 말은 사실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아마 그때가 제대로 나 스스로 독립을 하여 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과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 부모님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열심히 일을 해서 받은 월급으로 월세, 수도세, 전기세, 가스, 인터넷 요금, 휴대폰 요금 등을 시작으로 월급이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바쁜 돈들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나와 남동생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셨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위대한 사람들은 위인전에서만 접하는 분들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있어주셨던 우리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철이 든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진리에 가까웠다. 사회의 쓴맛과 한 성인이자 남성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앞으로 더 열심히 살면서 반드시 우리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살다 보니 예전에 비해 부모님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큰 변화가 생겨서 아버지와 같이 저녁에 집 근처 치킨집에서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런 모습들을 내 SNS에 올리거나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면 다들 부럽다는 반응을 내비친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라는 존재와 편하게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아들들이 의외로 아직도 많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면서 내가 지금 아버지와 같이 보내고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하긴 내 전 직장의 사장님도 일 평생 아버지와 같이 둘이서 식사나 술 한 잔 해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항상 말하곤 했었다. 역시 아들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애틋하면서도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계속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항상 우리 아버지는 용기를 내서 아들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하셨는데 이제야 그런 아버지의 용기에 응답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아버지는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아버지는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아버지는 얼마나 미안하셨을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버지. 앞으로 우리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어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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