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츄츄
각종 언론사와 뉴스채널에 신춘길씨가 보였다. 대부분 타이틀은 ‘지워진 한 살, 꿈을 이룬 시간’으로 포장됐다. 실상은 달랐다. 대기업은 1년 연장된 정년을 기다려 줄 수 없다며 근속 근무자들을 대거 구조 정리하려 했고, 젊은 층들은 한 해 벌었다는 생각에 고시원과 학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고 싶었던 일을 1년 동안 해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문화가 생겼다.
특히 문화를 선동하던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실패자였다. 배수의 진을 치고 칼을 꺼냈을 정도로 노력에 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루지 못한 결과에 대한 증오의 대상을 사회로 돌린 사람들이었다. 모두 목표는 달랐지만, 열등감을 입고 있었다.
신춘길씨 덕분에 메일함에 불이 났다. 머리를 굴려 보면 이 기회를 버릴 순 없었다. 한 철 장사임이 분명했다. 한 해를 지금처럼 쉽게 버릴 수 없을 게 뻔했다.
대체로 액수가 높은 의뢰일수록 짜릿했다. 고객들은 본인 자신을 증오했다. 그들이 증오할수록 나는 완벽한 신이 되었다. 이런 고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도 좋아서 나를 찾는 경우는 없었다. 모두가 잃은 한 살로 그다음 해를 벌기 위해 1년을 버렸다. 수학적으로는 결국 ‘0’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과거를 지우며 과거를 만들었다.
시장은 이미 유행을 따라 움직였다. 자기소개서 업체들은 ‘버리는 과정’, ‘버는 과정’으로 나누어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대형 업체에서 컨설팅을 받은 사람도 결국 내 메일 앞에 줄을 섰다. 사람들은 버리는 과정과 버는 과정을 동시에 느끼고 싶어 했다. 이기적이게도 그들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절대 인지하길 원하지 않았다.
신춘길씨가 취직한 이후로 작업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영업은 간단했다. 나와 고객은 분명 만나면서도 만나지 않고, 고객은 버는 과정과 버리는 과정이 동시에 나타남을 알면서도 모르는 방법이 있었다. 그들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부르면 됐다. 일주일에 한 번 내 원룸은 자기소개서 전시장이 됐다. 나무 이젤 위에 작품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하얀 벽에 여러 색채의 엽서를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 전시회 느낌을 더했다. 방문객들은 입장료를 내고 각자가 버리고 싶은 것과 벌고 싶은 것이 공존하는 이젤에 눈을 고정했다.
저작권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의뢰인의 실명을 쓰지 않을뿐더러 신춘길씨만큼 특별한 인생이 아니라면 누구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 사실 약간의 진실과 수많은 상상으로 탄생한 소설의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자기소개서는 소설의 장르에 속하는 게 맞다. 다만 돈이 되는 글자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확실히 작업량에 여유가 생겼다. 구태여 값 비싼 일대일 첨삭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은 본인을 작품의 주인공과 비교했다.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보다 깊은 어둠에 빠진 자기소개서를 보며 희망을 가졌다. 위로로 보이는 한숨은 무시의 웃음이었다.
비교의 끝에서도 감을 잡지 못한 방문객만이 고객이 되었다. 그들만 만나면 됐다. 수입면에서도 훨 이득이었다. 전시회 입장료에서 해결되지 못한 고객은 더 절실하게 나를 찾았다. 단가가 올랐다.
다만 여유로워진 시간만큼 이상하게 ‘잘로스’가 아른거렸다. 음식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 식당 이름은 떠올랐다. 신춘길씨가 만들어 준 바쁨과 여유 때문이었을까. ‘잘로스’만 생각하면 몸에 힘이 빠지면서 이유 없는 시원함이 불었다.
자기소개서 전시장이 생긴 이후, 나를 찾는 고객의 연령이 낮아졌다. 시에서 운영하는 다문화 보육원에서 수업 제의를 받았다. 동아시아 권 아이들에게 자기소개서를 통해 꿈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원장이 직접 메일을 보냈다. 말이 꿈 찾기였지 그 이면은 위로였다.
교통비 빼면 얼마 남지도 않는 장사, 거절하려 했다. 꿈같은 걸 찾아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자기소개서는 꿈이 아니라 돈이었다. 보다 높은 월급을 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달랐다. 내가 만들어 준 자신을 매일 무너뜨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꿈을 위한 꿈을 꿨다. 부족한 현실 감각에 지배당할 때다. 반드시 일반 고객들처럼 변할 게 뻔했다. 그들의 원한은 나에게 책임 전가할 것 역시 분명했다. 무엇보다 나는 소설을 쓰지 일기를 써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인물은 불필요했다.
하지만 언제 거품이 가라앉아 고객이 끊길지 알 수 없었기에 보험으로는 적당했다. 뭐든 네가 다 맞다고 말해주면 적어도 있는 꿈이 사라지진 않을 테니, 그렇게 쉬운 돈벌이도 없었다. 줄어든 첨삭 수는 한 달에 한 번 수업을 가기 좋은 정도였다.
처음 보육원을 방문한 날, 새로운 남자아이를 만났다. 이름을 알려줘도 몇 차례 다시 물어보는 내가 답답했는지, 자신을 ‘추추’라고 부르라 했다. 추추는 7살 한국국적으로 중국계 러시아인 엄마와 둘이 살았다. 몽골에서 태어나 엄마와 러시아로 이민을 갔다. 사연이 많은 만큼 주의사항도 많았다. 원장은 추추의 엄마가 몽골 남자와 결혼했다고 했지만,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러시아로 거주를 옮긴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러시아의 잦은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살게 됐다는 정도만 전달했다.
되도록 그에게 엄마와 아빠에 대해 묻지 말라는 식으로 들렸다. 추추가 있는 곳은 넓었다. 보육원의 꼭대기 층에 있는 강당이었는데, 풋살도 가능한 크기였다.
“추추, 우리 뭐 할까?”
“몰라.”
딱히 물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나를 등지고 반대편에 있는 강당 무대로 걸어갔다. 그가 다시 오지 않으면 보육원은 그만두려 했다.
멀리 있을 신춘길씨가 생각났다. 몽골에서 태어난 공통점 때문이 아니라 돈을 모르는 얼굴 때문이었다. 서로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나와 그들의 간격은 멀었다. 동시에 잘로스 식당에 추추도 반응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잘로스에 대한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신춘길씨도 그곳에서 말이 많았었다.
“추추 양고기 좋아해?”
“좋아해.”
“그럼 잘로스 식당 가 봤어?”
“아니.”
우리의 대화는 조용했지만 강당의 천장과 벽을 타고 크게 울렸다. 울림이 끝나갈 때쯤 추추는 무대 안쪽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다. 추추와 잘로스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 뒤쪽에서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울렸다. 추추가 말처럼 생긴 작은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와서는 곧장 자전거를 타고 나에게 왔다. 페달은 아니었고, 발로 밀면서 움직이는 네 발 자전거였다.
“자전거 잘 타네.”
드디어 잘한다, 맞다와 같은 말하기 임무를 할 수 있었다.
“자전거 아니야!”
“그럼 그건 뭐야?”
“말이야! 내 말!”
모든 고객은 무엇이든 ‘잘’을 붙여 말하면 좋아했었다. 하지만 추추는 ‘잘’보단 ‘말’에 반응했다. 말 모양이긴 했지만 자전거였다. 말은 아니었다. 신춘길씨 때와 같이 오기가 생겼다.
“말 탈 줄 알아?”
“알아.”
끝까지 자전거를 말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넌지시 다시 물었다.
“어떻게 타는데?”
“츄츄, 츄츄!”
발로 자전거의 옆구리를 발로 차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뚫고 있었다. 자전거는 나에게 돌진했다. 순간 추추가 달리면서 날리는 먼지는 모래바람이 되었다. 흩날리는 모래는 금세 사막을 만들었다. 사막의 모래알이 서로 부딪히면서 빛이 났다. 추추의 발을 따라 긴 은하수 띠가 피어올랐다.
생각났다, 잘로스. 츄츄는 말을 움직일 때 내는 몽골의 소리였고, 나는 그와 그 소리로 초원과 사막을 달렸다. 망원경 없이 맨 눈으로 보이는 은하수를 따라 뛰었다. 잘로스는 철이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