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츄츄
1년은 한 살을 뱉었다.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철이형만 빼고.
고객을 구태여 기다려 본 적은 없었지만, 원하던 고객들은 아니었다. 한 달에 많으면 두 어건 정도였던 문의는 이번 달에만 스무 건이 넘었다. 6월 28일 때문이다.
정부에서 나이에 새로운 숫자를 만들었다. 다양한 나이로 인한 법적, 행정적 문제가 매해 국가적 손해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만 나이로 통일했다. 숫자는 추가됐는데, 나이는 하나 줄어 들었다. ‘0’은 숫자가 아니라 공간이었다. 모두 잉태의 시간으로 한 칸 씩 이동했다.
한국에서 나이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힘의 근거이기도, 성공의 기준이기도 했지만, 기회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는 자존감을 높였다. 심지어 ‘0’은 공짜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 기회를 얻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잃었다.
태어난 아이는 나이가 존재하지 않고, 정년퇴직은 명예퇴직이나 실직으로 이름을 바꾸고, 각종 수험생은 연장된 기회에 여유로운 도전정신을 가졌다. 청년 요금제의 문턱에서 일반 요금제로 넘어갔다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낙담하던 아홉수는 미소를 찾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라진 과거의 1년을 새롭게 쓰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그 혼돈의 중심에 내가 서 있게 됐다.
1년이 지워진 이후 7평짜리 원룸은 먼지가 빠르게 쌓였다. 샤워기와 노트북만 촉촉했다. 보통 카페에서 의뢰인을 만나고, 다음 의뢰인이 오기 전까지 작업을 했다. 물론 6월 28일부터 갑자기 문의가 폭발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나이 많은 고객의 의뢰를 만나고 나서부터 메일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자기소개서 문의] 2024년 7월 3일
보낸사람 : 신춘길
안녕하세요. 저는 신춘길입니다. 제가 부탁이 있어 연락을 했어요. 저는 올해 70살 입니다. 뉴스에서 보니까 올해는 나이를 먹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배달기사 일인데, 이게 70부터는 안 돼요. 그래서 이번에 지원을 하고 싶어요. 자기소개서를 써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몰라요. 인터넷 찾아보니까 이쪽으로 연락하면 할 수 있다고 해요.
저도 될까요?
한국어 교육을 받은 외국인이 쓴 편지 같은 어색함이 묻어 있었다. 대학 수시, 대학 편입, 대학원, 대기업, 공기업, 항공사, 병원, 방송국부터 심지어 강아지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동물 자기소개서까지 의뢰를 맡았다. 하지만 나이 칠십의 고객은 처음이었다.
신춘길씨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8번 출구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검정 슬랙스 바지에 셔츠 안의 노란 목티가 빼꼼 튀었다. 카페 안쪽 창가자리에 앉아 양손을 머그컵으로 감싸고 있는 남자는 영락없는 할아버지였다.
그는 차분한 손길로 내게 카드를 건넸다.
“나 그냥 커피면 되는데, 요즘 사람들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하나만 샀어요.”
카드를 거절하면 그가 민망할까봐 네 하며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사실 의뢰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 나이에 배달하는 노인의 돈을 뺏는 것도 싫었고, 그 시간에 밀려 있는 입사 의뢰를 하는 편이 이익이었다. 그깟 배달 라이더가 되고 싶은 신춘길씨가 궁금했다.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왜 배달기사를 하고 싶으세요?”
그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입술에 잠시 묻히고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이라 그래요.”
좋아서라는 말은 거짓이라 믿었다.
“날씨도 이제 추워지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 거예요.”
“그러면 왜 하시려고 하세요?”
감동의 굴곡이 있는 사연보단 돈이 필요하단 말을 듣고 싶어 질문했다.
“오늘도 움직일 이유가 있는 게 좋아서. 늙었지만 당분간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의뢰인들은 전부 좋아서 하는 일은 없었다. 싫어도 해야 하기에 좋은 척 하게끔 만들어 줄 것을 나에게 부탁했다. 또 돈과 권력이 아닌 것에 목적을 두는 의뢰인도 없었다. 자기에 대해 소개 한 줄 적지 못 하는 사람들은 꼭두각시 같은 존재였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들고, 만들어진 사람에 만족하는 사람들,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다. 서울대도, 대기업도, 공무원도, 전문직도 아니지만, 나는 그들의 신이었다.
‘좋아서’는 나에게 대항하는 말이었다. 그는 내가 요구한 사항을 모두 말했지만, 나는 그를 쉽게 보낼 수 없었다.
“커피도 사 주셨는데, 얘기도 더 할 겸 같이 식사 괜찮으세요?”
“나는 좋아요. 여기 내가 아는 식당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카페를 끼고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다시 한 번 꺽은 곳에 10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금세 DDP의 화려한 불빛과 한국어는 사라졌다. 그림 같이 생긴 글자들이 간판을 메웠다.
잘로스는 3층에 있었다. 1층에 적힌 몽골타운이란 한글을 보고서야 몽골 음식을 파는 가게인 줄 알았다. 그의 음식 취향과 어눌한 한국어는 계속 의문이었다.
“몽골 음식 좋아하세요?”
“좋아요. 나 몽골에서 살았어요.”
국적이 몽골만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몽골인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아내 또한 한국인이라 했다. 아들도 하나 있는데, 소식은 모른다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곳저곳 방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배달 라이더에게 가산점은 아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양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곱창도 냄새 때문에 입에도 대지 않는데, 위장 속에 익숙한 구석이라도 있듯 쑤욱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만두를 씹을 때마다 식당 이름이 눈에 밟혔다. ‘잘로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그 소리가 혀를 자극했다. 잘로스, 몽골, 사막, 낙타, 늑대, 잘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