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츄츄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날 Nov 11. 2024

츄츄_03

단편소설 츄츄


아침에 일행이 씻는 동안 숙소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태웠다.


“안녕해요. 나는 여러분 가이드예요.”


공사장 작업복 같은 남색의 운동복을 입은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건장한 체격과 남자다운 얼굴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연기를 삼키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에 다시 들었다.


“김바다씨 맞아요? 친구들 준비 다 되면 천천히 내려오라 해요.”



우리가 짐을 챙겨 모두 내려왔을 때, 가이드는 검정 스타렉스에서 내렸다. 스타렉스는 9인승이라 우리 일곱에 가이드, 운전기사까지 딱 아홉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은 심각한 오해였다. 9인승 좌석에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작은 쪽석까지 포함됐다. ‘남자 중에 막내라서’, ‘가위바위보가 귀찮아서’와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유일한 흡연자이자 몽골에서 처음 만난 사람의 옆자리는 끌렸다.

가이드는 울란바토르 시내의 칭기즈칸 동상 근처의 환전소를 들렀다. 환전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마트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낙타 우유 아이스크림을 세 개 사서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건넸다.


“저… 이거 드세요.”

“고마워요.”

이때 처음으로 그의 호칭에 대해 생각했다. 

“근데 가이드님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녹이며 고민했다.

“내가 서른일곱인데 내가 형 맞아요?”

“네, 저는 스물한 살이에요.”

“그럼 철이형이라고 불러요.”


우리는 그를 철이형이라 불렀다. 한국계 몽골인이라 몽골 이름도 있었지만, 한국 이름만 알려줬다. 성은 모르고, 이름은 철이랬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울란바토르를 벗어났다. 




잘로스는 친척이 동대문에서 운영하는 맛집이라며, 갈 때 연락하라고 했던 기억이 추추와 헤어지고 방에 오는 길에 떠올랐다. 확실히 신춘길씨도 몽골 사람이 맞았다.


추추에서 터진 잘로스는 신춘길씨로 번졌다. 그의 자기소개서를 써 준 이유를 깨달았다. 마음 깊이 맺혀 있던 철이형에 대한 죄책감이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오기를 날카롭게 했었다. ‘좋아서’에 대한 정복 이상의 응어리였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시원함도 강렬해졌다.



보육원에 다녀온 날도 방에 들어가기 전 도어록 번호를 바꿨다. 자기소개서 전시회는 예약제로 입금이 완료되면 번호를 문자로 보내줬다. 일주일에 한 번 전시회를 열지만 번호는 제법 자주 변경했다. 이날은 번호를 바꾸고 스마트 폰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들어갔다.


인스타그램과 카톡이 세상을 지배한 후로 페이스북 메시지는 눌러본 적도 없었다. 철이형과 마지막으로 대화한 곳이 여기였다. 사실 대화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구애와 거절이었다. 메시지 창에 철이형은 항상 부재중전화를 남겼다. 몽골에서 돌아와서 반년 정도는 형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안부는 듣기 귀찮은 응원이자 아까운 데이터 낭비였다.


분명 그와 통화를 하고 나면, 이유 모를 용기가 생겼다. 그의 인생은 누구보다 역경이었고, 사는 게 고통이었다. 간간히 듣게 되는 그의 응원보단 통화 끝에 들리는 한숨이 내게 묘한 위로가 됐다. ‘뭐 먹고 살지’란 고민은 ‘내일은 어떻게 살지’란 생존보다 차원이 높은 사고라 여겼다. 어느 순간 그의 한숨이 사라졌고, 우리의 메시지 창은 그의 수많은 부재중통화로만 기록됐다.



‘잘로스’는 메시지 창을 끝없이 올렸을 때 등장했다. ‘몽골타운 10층 건물 안에 있는 잘로스 식당에 식사해요! 형이 전화했는데 친척들 너모 바쁜가봐. 형이 10월에 가면 형한테 가티 가서 우리 엄마 식당에 밥 먹어.’ 어색한 한국어 텍스트에는 그의 음성이 담겨 있었다. 같이 가기로 했었지만, 코로나로 형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다.


2년이 지나도 그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동생 안녕, 형 지금 서울인데 조금 있으면 몽골에 가려고! 너 전화번호 몰라서 전화를 못 하고, 만나지 못하고 갈 것 같아요!’ 분명 전화는 할 수 있었다. 내가 안 받았다. 어설픈 한국어를 알아듣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 상상은 짜증을 부풀렸고, 더 이상 그의 떨림은 나를 설레게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담배 하나 태우고 받자의 속삭임은 끝내 입 밖으로 튀지 못했다. 그와의 대화를 읽고 있는 중에 그의 프로필 아이콘에 초록불이 깜박였다. 한국과 몽골의 시차는 고작 1시간이었으니, 그가 이 밤에 페이스북 메시지에 접속하는 것은 내 계획에 없었다. 그의 집에서 이 밤에 인터넷 연결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마 채팅 방을 나가지도 못했고, 활동 중으로 뜬 그의 프로필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내 채팅방 하단에 아래로 내려 보라는 화살표가 떴다. 그에게서 방금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ㅡ 동생 잘 지내? 형 지금 한국이야. 이주 정도 한국에 있을 거야. 동생 보고 싶다. 동생 한국이야? 형이 동생 많이 보고 싶었어. 몽골 가기 전에 볼 수 있으면 좋겠어!




잘로스에서 철이형을 만났다. 전시회 탓인지 마침 세 건의 의뢰가 취소됐다. 덕분에 일주일 정도 시간이 비었다. 형은 음식 준비를 한다고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잘로스는 여전히 양고기 냄새가 붐볐다. 조금은 쭈뼛거리며 식당 문을 열었다. 철이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고 달려왔다. 성인 남자와의 두 팔 벌린 포옹은 어색했다. 같은 가게였지만 신춘길씨와 왔을 때와는 공기의 농도가 달랐다. 몽골이었다.


철이형은 똑같았다. 옷차림부터 머리 스타일까지 전형적인 ‘강한 남자’였다.

“동생,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동생 좋아하는 거 다 있으니까 먹자!”


모든 말끝은 느낌표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테이블 위 음식들은 만두를 빼곤 메뉴에 없는 것들이었다. 재료는 양고기로 같았지만, 색깔부터 냄새까지 모두 몽골에서 형이 해줬던 음식이었다.


“형, 미안해요. 바빠서 항상 전화를 못 받았어요.”

“괜찮아. 형도 바빴어. 형 이제 사장이야!”

“사장이요?”

“동생, 형 이제 가이드 아니야. 몽골 여행사 사장이야. 형이 차렸어!”

이전 03화 츄츄_0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