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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츄츄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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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날 Nov 18. 2024

츄츄_04

단편소설 츄츄


어느 초원의 게르에서 이틀을 보내고 고비사막으로 가기 위해 스타렉스는 대지를 달렸다. 한국의 비포장도로는 우스웠다. 힘을 주지 않으면 운전기사와 철이형 사이에서 초 단위로 진자운동을 했다.

8월의 몽골은 사막이 아니고서야 낮에는 평균적으로 한국의 봄 날씨고, 밤에만 늦가을 정도로 쌀쌀했다. 하루에 사계절이 담겨 있는 일교차는 매일 엄청난 폭우를 쏟았다. 고비사막으로 가는 길에서 날씨의 신은 필히 악마일 거라 확신했다.

분명 피라미드처럼 눈앞에 사막 언덕이 보이는데 시속 80km로 아무리 달려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사막으로 가는 길 첫날 우리는 고립됐다. 일행 중 맨 앞에 앉은 사람은 나뿐이라 더 뇌리에 박혔다. 앞창 너머로 안개 장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 여기는 안개가 되게 벽처럼 모양이 있네요.”

“아, 저거 안개 아니고 비.”


그런 비의 장막은 본 적이 없었다. 통과하는 순간 스타렉스의 뒷바퀴 두 개가 모두 땅에 빠졌다. 스콜이 지나간 아마존 정글처럼 땅 아래로 중력의 손이 당겼다.


해가 저물 때까지 비는 계속 왔고, 철이형은 숙박하기로 했던 게르에 도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표, 건물, 주민, 게르, 하다못해 다른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형과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릴 때 같이 내렸다. 


“타 있어요. 지금 미안해요.”

“같이 하면 되죠, 형.”

“내가 가이드만 7년째인데, 손님한테 절대 이런 거 안 시켜요!”


나는 모자를 쓰며 뒷바퀴로 향했다. 말리던 형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셋이서 최대한 뒷바퀴를 빼내려 손으로 진흙을 긁어내고, 액셀을 밟으며 뒤에서 밀었다. 결국 이날은 차에서 자고, 형은 주변 마을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거기는 멀어요? 어떻게 가요?”

“걸어서 가요. 거리는 모르겠지만 가야 해요.”

운전기사와 일행은 차를 지키기로 해서 나는 형과 게르를 찾아 걸었다. 해가 지자 가로등 하나 없는 그곳은 불 꺼진 영화관보다 어두웠다. 솔직히 겁은 형의 겉옷 끝 부분을 몰래 잡게 했다.


“저쪽으로 가면 마을 있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아요?”

형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갑자기 북두칠성을 찾아줬다. 이미 휴대폰 전파는 사라진 지 오래고, 내비도 없는 마당에 별 수 없었지만 별을 보고 방향을 찾는다는 말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한 치의 떨림도 없는 그의 파동에 신뢰는 가득했다.



두 시간은 걸었을까, 저 멀리 희미한 게르의 불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 멀었다. 그래도 그는 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생존의 빛을 보며 걷던 중, 또 다른 빛이 하나둘씩 펼쳐졌다.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내 뒤에서 가만히 있어요.”

거친 억양과 다르게 그는 아주 작은 숨으로 속삭였다.

“왜요?”

“앞에 늑대.”

동글동글한 한 쌍의 노란 불빛이 점점 많이 보였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새로운 별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과 같았다. 정글의 법칙이야, 카메라에만 안 보이지 다 현지 안전요원이 동행하고, 사바나 다큐라 해봤자, 다 안정장치가 있기 마련인데, 이건 아니잖아 하며 불안에 떨었다.


“어떡해요… 형?”

“괜찮아요. 내가 신호를 주면, 바로 뒤로 도망가요.”

형은 조용히 말하며, 내 외투 주머니 속에 작은 칼을 넣었다.

“형은요?”

“만약 늑대가 달려들면,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이거 들고 도망가요.”



늑대들은 십 분 정도 우리를 노려보더니, 등을 돌아 떠났다. 늑대보다 사실 주머니 안쪽에서 만져지는 칼의 촉감이 더 무서웠다. 정말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을까. 형을 붙잡고 무섭다 애원하여 간신히 그의 걸음을 차로 돌렸다. 

이미 모두 자고 있었다. 비도 그쳐 차 라이트를 끄고, 형과 담배 한 대를 태웠다. 한국에서 가져온 담배가 다 떨어져 형이 준 몽골 담배를 피웠다. 참으로 쓰고 독했다. 한 모금에 거친 기침을 뿜어내고, 불을 껐다. 형은 그 모습이 웃긴 지 담배를 문 상태로 웃었다.


“독하지?”

“네, 엄청요. 이건 진짜 못 피겠어요.”

형은 하늘의 별을 가리켰다.

“은하수 본 적 있어? 저게 은하수야. 별이 아니라.”

지구과학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별이 모여 은하수가 형성되는 거라 생각했지만, 그때는 철이형의 말이 다 맞았다. 그의 담배가 짧아질 때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동생, 형이 참 고마워 동생한테. 사실 형이 가이드 일 하면서 손님이랑 같은 열에 앉아 본 적이 없어. 그게 내 철칙이거든. 항상 고객은 나보다 뒤에 앉아서 편하게 여행해야 하잖아. 그렇지? 형도 아까는 좀 무서웠지만 동생이 있어서 든든했어.”


이때 처음으로 그가 나를 동생이라 불렀다. 그렇게 나는 계속 동생이었다.

“형이 또 가이드는 동생들이 마지막이야. 동생들 여행 끝나면, 형이 여행사 하나 차릴 거야.”




철이형은 정말 몽골 여행사의 사장이 되었다.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이게 진심인지 의심이 들어 만두를 집어 먹었다. 만두 속의 육즙이 터져 혓바닥이 미치도록 쓰렸지만, 계속 씹었다. 분명 형의 사장 소식에 기분이 좋았는데, 입에 뭐라도 넣어야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천천히 먹어 동생.”

“형 이제 그럼 부자네요?”

“아니야 동생. 형이 여행사 사장되고 바로 코로나 생겼어. 한국사람들 몽골 여행 못 와서 정말 힘들었어.”

코로나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그제야 차가운 물을 벌컥 들이켜 입 속을 안정시켰다. 형에게 양고기 한 덩어리를 덜어주며 물었다.


“형 힘들었겠어요. 이제 코로나 끝났으니까 지금은 괜찮아요?”

“그럼, 이제 한국사람들 많이 와서 너무 바빠. 겨울 되면 홉스골 투어 있는데, 그것도 예약 다 찼어. 이번 여름에 여행객 너무 많아서 다 끝나고 형 너무 아팠어. 그래도 동생이 몽골 온다고 하면 동생은 공짜야.”


그는 변함없었다. 몽골에서 헤어지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동생이라 공짜라고 강조했다. 딱히 나에게 바란 것도 없었다. 형은 내 증오로 테두리를 품어 갔다. 몽골의 바람이 다시금 불었다. 주변이 변해도 순수하고 깨끗한 바람이. 하지만 그 바람에 들어가기엔 나는 이미 변했다. 오래된 만남에 대한 동정이기를 바랐다.


“그럼 이번에 한국은 쉬러 온 거예요?”

그의 얼굴이 흔들렸다. 입 속의 양고기를 천천히 씹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사실, 형이 동생한테 부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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