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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츄츄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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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날 11시간전

츄츄_05

단편소설 츄츄


이틀 뒤 서울역에서 철이형과 KTX를 탔다. 형의 부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 같았다. 시간도 충분했다. 코로나 이후 몽골 여행의 비수기 시즌에 형은 잘로스 식당 일을 도왔다. 얼마 전 우연히 새 배달기사 아저씨에게 들었다고 했다. 배달 픽업을 기다리던 배달기사는 형에게 식당에서 본 적이 없다며 몽골사람이냐고 물었다. 하루에 하나씩만 물었다고 했다. 그렇게 항상 조리완료 시간보다 십 분 정도 일찍 도착해 이 집 아들인지결혼은 했는지 묻더니, 형의 아들 얘기를 듣고 내 메일을 적고 갔다고 했다. 형은 배달기사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말했다.


  “동생,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몽골 여행의 마지막 날 온천에서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에 스타렉스가 퍼졌다. 엔진이 터져 최대 시속 30km로 800km를 달려야 했다. 창밖의 양들과 속도가 같았다.


하루를 꼬박 달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탑승시간까지 한 시간이 체 남지 않아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다행히 엔진 점검을 위해 마트에 정차했을 때, 철이형에게 줄 선물로 초콜릿 박스를 샀었다. 마지막 날쯤 되니 초원의 흔들림 따위는 평온했고, 틈틈이 시를 적었다. 초콜릿보다 열량이 높으면서도 쉽게 녹지 않는 것을 주고 싶었다. 그에겐 그게 필요해 보였다.


“형, 제가 쓴 시니까 버리면 안 돼요.”

“고마워, 동생. 절대 안 버려. 동생도 사막에서 한 약속 지켜!”




고비사막에서 형과 둘이 보드카 한 병을 마셨다. 몽골의 보드카는 담배만큼이나 춥고 강했다. 사막의 밤은 모래가 날리는 소리와 은하수가 이불을 덮는 향으로 가득했다. 보드카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차가운 모래에 누웠다.


“동생은 여자친구 있어?”

“없어요. 형은 있어요?”


몽골과 서른일곱을 조합하면 여자친구가 아닌 아내를 묻는 것이 맞았다. 형은 외투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은하수에 걸었다.


“내 아내야. 옆에는 내 아들! 예쁘지?”

형은 누운 채 보드카 한 모금을 마시며 컬컬 웃었다. 그가 허리를 사선으로 세우자 악 쓰는 구슬픔이 모래사막을 한 차례 스르륵 지나갔다.


“보고 싶어 정말…”

“저희 한국 가면 볼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 동생. 아내랑 아들은 몽골에 없어.”

“그럼 어디에 있어요?”

“러시아에 있어. 아들은 1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어.”


뒤로 그의 상체를 지탱하던 두 팔이 완전히 모래에 파묻혔다. 보드카 옆으로 아주 작은 점 두어 개의 모래 덩어리가 젖어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바로 이혼했어. 그래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만 볼 수 있어. 내가 가이드 일 때문에 집에 못 갔어. 그래서 아내가 화가 났어. 모은 돈에 집까지 팔아서 아내랑 아들에게 다 줬어. 형은 혼자 살아. 얼마 전에 다시 집도 샀어.”

울란바토르 숙소 앞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이 띤 감정이 이거였다. 강한데 한 없이 약하고, 단단한데 너무나 부서져 있는 미소.


“가이드 일 안 하고 아내 분이랑 아들이랑 같이 살았으면 되지 않아요?”

“동생, 나한테 가족은 가장 중요해. 그런데 가이드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야. 남자는 절대 가족을 힘들 게 하면 안 돼. 못난 놈이야. 그래도 남자는 참고 살아가는 거야, 이 세상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지!”


남자라면이란 말은 한국에서 숱하게 들어왔지만, 처음으로 마음을 때렸다. 또 늑대 앞에서 나에게 목숨을 건넨 이유도 납득이 갔다. 가이드 일에 대한 그의 신념은 몽골 하늘의 낙하하는 매처럼 꼿꼿이 허리를 펴고 있었다.


“동생은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잘해! 동생은 꿈이 뭐야?”

좋아하는 사람과 다르게 꿈만큼은 변한 적 없던 나는 신념으로 대답했다.


“글 쓰는 거예요!”

“정말? 나도 책 좋아해. 어떤 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다 써 보고 있어요. 소설, 시, 시나리오부터 수필, 에세이, 평론, 편지, 일기까지 전부 써요. 글의 모양은 잘 모르지만 그냥 주변의 사람과 그 사람들의 주변을 담는 글을 쓰고 싶어요.”


형의 표정이 달라지며 잔을 치켜올렸다. 신념과 신념이 보드카의 건배로 별을 반짝였다.

“멋있다, 동생. 우리는 똑같아. 우리는 사람 진심으로 좋아해. 나도 동생 글의 주인공 하고 싶어. 꼭 써 줘!”




지나간 몽골의 추억을 떠들다 보니, 열차도 출발한 지 30이나 지났다. 형은 강릉에 있는 전문대에 입학을 희망했다. 내년 학기부터 다니는 게 목표라며, 자기소개서를 부탁했다. 대학 입시는 어렵지 않을뿐더러 그는 외국인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어서 난이도는 낮았다. 홈페이지만 들어가면 학교의 정보를 다 알 수 있었지만, 그에게 궁금한 게 있어 먼저 강릉행 기차에 올랐었다.


“형 근데 대학은 왜 가려 해요?”

“그때 말 했잖아 동생. 나 바다에서 살아보고 싶어. 몽골은 바다가 없어. 동생 이름이랑 같으면서 기억 못 하면 안 되지.”


배를 타고 한국과 몽골을 오가는 사람이 하는 거짓말이었다.

“형, 아들은 잘 있어요?”


그는 특유의 걸걸한 미소를 금세 지웠다. 늑대를 봤을 때보다 더 굳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강릉의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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