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츄츄
대학은 바다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형이 지원하려는 단과대 건물은 학교의 꼭대기에 있어 본의 아니게 학교 투어를 했다. 사실 대학 입시를 위해 학교를 방문하더라도 얻는 건 약간의 의지뿐 자기소개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일찍이 안목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차에서 한 질문에 대해 아직 답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해수욕장에 도착해서도 한 시간은 대화가 끊겼다. 해수욕장이 폐장한 평일 오후에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이었다. 몇 차례의 큰 파도는 우리를 뒤쪽으로 다시 자리 잡게 했다. 그제야 형은 입을 열었다.
“동생, 아들 못 본 지 오래됐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한국에 있어. 한국 와서 만난 적은 없어 아직.”
파도가 마지막에 성을 내며 흰 물결을 칠 때마다 그는 한 마디씩 말했다.
“안 궁금해요?”
“궁금해. 아들이 내년이면 여덟 살 돼. 초등학생부터는 법적으로 나는 아들과 만날 수 없어. 아내랑 같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이 있는 줄은 몰랐다. 올해가 기회란 사실을 형이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만 나이 제도에서 초등학교 입학 나이는 예외였지만, 부모의 선택에 따라 만 7세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이름도 몰라요?”
“몰라, 동생. 사실 그래서 동생한테 부탁했어. 얼마 전에 한국사람은 나이가 한 살 어려졌잖아. 아들도 한 살 어려지면 내년까지는 볼 수 있어. 한 번은 더 볼 수 있어!”
역시 그는 모르지 않았다. 알았다면, 그는 아들을 찾아야 했다.
“그럼 아들을 찾아야지 왜 대학을 가요!”
“문제는 비자야. 나는 몽골사람이야 동생. 다음 주면 비자가 끝나. 요즘 비자받기가 너무 어려워. 그래서 한국 대학에 다니면 2년은 한국에 더 있을 수 있어. 아들이랑 손잡고 바다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해. 내가 여기에 살면 아들이 놀러 올 수 있어. 나는 꼭 아들 만날 거야!”
그의 의지에 파도는 멈칫했다. 사막보다 무겁게 젖은 모래는 너무 가볍게 파도로 걸어갔다.
강릉에서 돌아온 다음날 잘로스 앞 스타벅스에서 철이형을 만났다. 자기소개서도 함께 들고 갔다. 동정과 연민의 호소가 아닌, 그의 신념과 의지로 종이를 채웠다. 몽골 여행사의 사장으로서 한국과의 문화 교류를 위한 명목으로 말이다. 그는 봉투를 열어 글을 읽진 않았다.
“동생이 썼는데, 당연히 좋겠지.”
대충 글의 흐름에 대해서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동생, 나는 국문과를 가고 싶어. 한국어를 더 배워서 동생처럼 아들에게 글을 써 주고 싶어. 나랑 아들이 주인공인 글!”
나는 글을 잃은 지 오래였다. 몽골에서 그에게 말한 글은 적지 않았다. 먹고살 수 없는 글은 비난의 대상이었고, 나는 대상이 없는 증오 속에 갇혔다. 내가 주변을 담을수록 그것의 주변들은 무시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모두가 자신의 하루를 버렸다. 버려진 하루들이 모여 한 해가 되었고, 한 살은 사라졌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엔 글을 쓴다 하면 낭만과 예술로 가족도 친구도 속일 수 있었다. 나를 부러워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을 선망의 시선으로 대했다. 그러나 졸업 후의 낭만은 가격이 됐다.
돈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 먹고살 만큼 있는 정도가 나를 가장 가난하게 만들었다. 아니 주변이 바뀌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부터 빠르게 변했다. 계산할 때 한 사람의 카드로 우선 결제 후 그 친구에게 송금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분명 내가 마신 만큼은 낼 돈이 있는데, 당장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는 돈은 없었다.
또 어버이날은 점점 잔인해졌다. 돈이 있어야 사랑도 표현할 수 있었다. 편지와 같은 마음의 선물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글자의 가치가 아니라 가격이었다.
모르진 않았다. 모른 척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진심으로 가격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었나 보다. 형에게 자신 있게 말했던 글은 유효기간이 하루였지만, 자기소개서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이었다. 적어도 월세는 낼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형, 저 이제 그런 글 안 써요.”
“거짓말, 동생. 나 동생이 낸 책도 이번에 한국 와서 읽어 봤어. 동생이 말했던 쓰고 싶었던 글이었어. 나한테 써 줬던 시 같았어. 동생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좋은 아빠도 될 수 있어!”
대학 때 학교의 지원을 받아 독립출판으로 냈던 책이었다. 누군가의 밤은 짧아지고 잠은 길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장르를 섞어 적은 글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밤은 철이형만큼 거친 질감은 아니었다. 또 가만히 있거나 서로를 안아주면 죄가 됐다. 죄는 돈을 삼켰고, 돈은 죄를 뱉었다. 떠다니는 죄는 사람들이 서로를 물어뜯을 때 위로로 변했고, 위로는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내 마지막 글이었다.
적어도 숱하게 뱉었던 그런 글 안 쓴다는 저 말이 형 앞에서는 거짓말이었다. 그의 말에서는 항상 이유 모를 그 시원함이 있었다. 그 바람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대상 없는 증오는 짙어졌다. 그토록 강한 바람은 아무것도 안고 날아가지 않았다. 그저 시원함만 멀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형의 메시지를 받기는커녕 보기도 싫었다. 척이 아닌 순수함과 강함은 계속 내게 바람을 흘렸다. 형의 글자를 볼 때마다 그의 음성이 귀로 들렸고, 그럴 때마다 몽골에서의 보름이 떠올랐다. 초원도, 사막도, 그리고 약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