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는 부끄럽지 않다

맞은바라기

by 다날


오타쿠, 학창 시절 반에 한 명쯤은 저 역할을 담당했다. 초록이나 주황색의 뿔테 안경, 왜소한 체격,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란 삼 박자가 조건이었다.

이상하게 오타쿠는 존재해야만 했다. 우리는 욕하며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오타쿠 새끼, 더러워, 찐따 같아라고 말하며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높였다. 오타쿠는 우리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애니메이션을 읽고 등장인물들과 대화했다.


한참이 지난 지금, 오타쿠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나를 조롱거리로 짓밟을지언정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지키는 그가 말이다. 대체로 나와 우리는 무너졌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라. 무엇이었든 나의 것에 대해 모두가 아니라고 하나 되어 외쳤을 때, 그것을 버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심지어 오타쿠처럼 어떤 말로도 반항하지 않고 조용히 나의 것에만 집중한 적은 더욱더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순수하지만 지독하게 좋아하는 그 마음이 요즘은 너무나 욕심난다.

오늘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며 바라보던 사람에게 내일이면 욕하는 세상이 됐다. 오타쿠가 사라졌다. 특히 사람에 대한 오타쿠는 이해타산을 따질 줄 모르는 바보들이나 가지는 한심한 낭만이 됐다. 보통 우리는 이 마음을 팬심이라 부른다.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은 사치가 됐다. 자신에게 어떤 물리적인 이윤도 남지 않는다면 더욱이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천치로 낙인찍힌다.

그래서일까. 작년부터 집 근처 프로농구팀의 홈 경기장을 자주 찾았다. 올 시즌은 대체로 만석이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모두가 같았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소리를 질렀다. 옆자리, 앞자리 특히 건너편의 붉은 물결이 움찔움찔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슬쩍슬쩍 다가오는 오타쿠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응원하던 홈팀은 최소 경기로 정규리그를 우승했다. 거의 모든 홈경기를 직관했다. 정말 간혹 졌지만, 그 패배마저 특별하게 만들어 준 팀이었다. 정규리그 우승 순간의 현장에 있었고, 플레이오프 결승의 순간도 응원했다.

플레이오프 결승전은 어려웠다. 정규리그 2위 팀에게 세 경기를 잇다라 내주며 0%의 확률을 확정 지었다. 7전 4선 승제에서 3대 0으로 지고 있는 팀이 역으로 네 경기를 이기며 역전할 가능성이었다. 3차전도 패색이 짙어졌을 때, 한 홈팀의 팬이 들고 있던 종이가 중계화면에 잡혔다. ‘포기하지 마, 우리도 안 해.’

같은 팀의 팬으로서 울컥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 오타쿠의 마음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 홈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였다. 반드시 역전하겠다는 그 선수의 담담한 말에서 믿음과 더불어 어딘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타쿠가 부러웠던 이유가 떠올랐다. 중학생 때 농구를 시작했고, 주전이 되고 싶었다. 밥만 먹고 농구만 했다. 눈이 오면 삽으로 눈을 치우고 공을 던졌다. 주전이 된 이후로는 일등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운동을 했다. 시 대표가 되어 도 대회를 나갔다. 도 대회를 우승하고 도 대표로 전국대회를 뛰었다. 부산시 대표를 시작으로 전남, 경북, 강원의 팀들을 이기며 무패로 전국 일등이 됐다.

나는 농구 오타쿠였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프로가 아닌 이상 농구는 취미일 수밖에 없었다. 지면 순간은 분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예전과 달랐다. 그렇게 다시금 무언가에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회를 알아갈수록 이 마음이 너무 그리웠다. 다시 찾아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었다. 흐릿해질수록 속상했다.

그 선수의 진심에 잿빛에 가깝던 오타쿠가 색을 찾았다. 단순히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었다.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잘하고 싶던 마음에 처음으로 프로농구를 시청했다. 그때 보인 선수가 바로 그였다. 그 역시 프로농구에 처음으로 데뷔했을 때였다. 신인선수라 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적인 퍼포먼스에 동요됐다. 그를 알고 난 이후의 내 유니폼 번호는 언제나 5번이었다.


그는 팀의 컬러를 만들었다. 빠르고 화려한 공격적인 농구팀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항상 열심히 달렸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를 매일 보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와 그가 이기면 나에게 뭐가 좋을까 하는 이유로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다시금 그를 봤을 때, 그에게서 내가 잊어가던 마음이 보였다. 맞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선수이자 팀이었고, 지던 이기던 누가 뭐라 하던 단 한 번도 다른 선수도 팀도 좋아해 본 적 없는 그 마음, 오타쿠였다.


결과는 0%란 확률을 100%로 바꾸지 못했다. 4차전부터 5, 6차전까지 내리 이겼지만 결국 마지막 7차전에서 패하며 홈 경기장을 뺏겼다. 끝까지 달려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할 수 있는 시간조차 패배팀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원정이었던 우승팀의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빨간 물결은 경기장을 나가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에 서서 기다렸지만, 마지막으로 보이는 건 딱 한 사람이었다. 락커룸으로 빠르게 나가던 홈팀 선수들과 달리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서 있던 한 선수의 등은 5번이었다.




이제 붉은 5번은 볼 수 없다. 얼마 전 FA로 그는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나는 그의 유니폼을 산 적이 없다. 매 시즌 너무 사고 싶었지만, 그의 마지막 시즌의 유니폼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15년을 한 팀에서 뛰었고, 팀 자체였던 그가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는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장 상단의 태극기 옆에 걸릴 최초의 선수 영구결번은 5번이어야 했다.

차라리 그가 팀을 배신한 것이기를 바랐다. 미워하면 깔끔하게 정리되기도 하니까. 이런저런 풍문이 돌지만, 오타쿠는 안다. 무엇이 진실이고 또 무엇이 거짓인지는 모를지언정 적어도 그의 진심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질 때나 이길 때나 끝까지 사인을 해 주고 경기장을 나서던 선수에게선 어떤 팬도 이를 의심할 수 없다.


어쩌면 프로는 사회고 FA에서 낭만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될수록 사회와 가까워지고, 사회와 가까워질수록 낭만은 멀어진다. 그리고 결국 다시 낭만을 찾으려 사회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적어도 그 마음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가 좋아서 간직하려는 오타쿠는 필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만의 오타쿠를 잃지 않는다면, 주변의 낭만도 지키지 않을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숫자가 5인 것처럼 말이다.


누가 그랬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팀을 위대하게 만드는 선수는 있다. 오타쿠는 그가 부끄럽지 않다. 그의 이름은 김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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