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여행

맞은바라기

by 다날

“이런 날 여행 가면 좋겠다.”

바람이 과거를 훔치도록 내버려 둔다. 무슨 옷을 입든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도 되는 온도다. 덥지도 춥지도 않지만 어딘가 먹먹한 동시에 깨끗한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참 웃겨. 이런 날 누가 여행을 금지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바람이 숨을 고르며 웃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여행 갈 때마다 넌 이런 온도로 숨을 쉬지 않았어.”

이번엔 바람이 숨을 크게 뱉으며 통명스럽게 답했다.

“넌 여전히 참 웃겨. 내가 기분 좋은 날엔 여행은 생각도 못하다가 막상 네가 여행 갈 수 있을 때서야 나의 기분을 열심히 찾아봐. 그리고는 네가 여행가 있을 때 내가 기분이 좋았던 날을 떠올리며 다음엔 그때 와야지 하고 결심해. 근데 내일 내 기분은 나도 몰라.”


바람은 더 이상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항상 벚꽃이 필 때 일본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의 봄은 어릴 적부터 바빴다. 놀랍게도 바쁜 이유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다른 계절도 이런 식이었다. 모두 이 날씨에 가고 싶은 곳이 있지만, 서로 눈치만 보다 결국 떠나지 못했다. 여행을 가고 싶은 날에 여행을 가지 않고, 가야 하거나 갈 수 있는 날에 여행을 갔다. 정말로 가고 싶은 날보단 가기 싫은 어떤 날에 말이다. 그러니 여행은 모순이다. 좀 이상하다면 아빠의 모순은 반대였다. 반대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반기문을 좋아했다. 내가 그를 닮았으면 했다. 물론 아빠는 내가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를 바라진 않았다. 단지 그가 알고 있는 만큼 세상을 보길 원했다. 지구의 거의 모든 국가가 유엔에 가입을 하고 있으니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지구는 구의 형태일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의 것은 구가 아닌 원이거나, 면도 아닌 점으로 존재했다. 아빠는 내가 그 입체가 부는 바람의 자유를 느끼길 바랐다. 진정으로 자전과 공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세상이 무엇인지 항상 찾으라 말했다.

“네가 우물을 모르는 개구리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아빠는 종종 퇴근 후에 뜬금없이 개구리를 밥상 위로 소환했다. 아빠는 그 개구리를 박사님이라 불렀다. 얼핏 듣기로는 회사에서 가장 연로하신 분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사님 치곤 가난했다. 심지어 소위 한국 최고의 명문대를 학부로 시작하여 독일의 세계적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날도 아빠는 독일의 철학과 사회에 대해 한껏 신나게 말했다.

“독일은 대학교까지 학비가 무료란다. 독일어를 공부해서 독일에서 살아보는 것도 되게 낭만 있지 않니? 노벨상 수상자들도 대부분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단다. 한국에만 있는 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이지 않니?”

아빠는 독일어 공부도 독일 유학도 재촉하거나 강요한 적은 없었다. 독일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의 세상을 얘기하는 정도였다. 딱 그만큼이었다. 그저 한국밖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게끔 할 뿐이었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야. 자연재해도 없어, 치안도 좋아, 음식도 맛있어, 그리고 돈만 주면 웬만한 건 다 해결되는 세상이 여기더라. 아빠도 알겠지만.”

잔소리에 대한 반항이 아니었다. 애초에 싫은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아빠는 한국을 비하하지 않았다. 유학에 대한 열등감도 없었다. 아빠는 단지 우물 바깥의 공기에 매일 궁금증을 품었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유일한 취미로 별을 따라다녔다. 아마존에서 주문한 저가형 망원경을 들고 밤이면 집을 나섰다. 별이 잘 보이는 인기 스폿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에서 별을 보고자 했다. 별이 아빠를 따라오고 있다는 말이 좀 더 적절했다.

아무래도 아빠의 지구는 이미 입체였나 보다. 그러니 우주가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나의 지구는 아직 원조차도 되지 못했기에 나에게는 별이나 행성 따위에 줄 관심이 없었다. 상상의 범위 밖이었다. 그러나 문득 궁금했다. 완성시킨 지구를 지구 바깥에서 바라볼 때의 기분과 그 공기는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그곳에서 뱉는 바람의 말들은 어떤 온도인지 아빠는 알 것 같았다.

“아빠가 가 본 나라들은 어디야? 아니지 가 본 나라는 몇 개고, 몇 번이나 가 봤어?”

나는 여행 삼아 잠시 다녀온 국가가 전부였다. 그것도 사이판, 몽골, 일본, 유럽 정도였다. 물론 많다면 많지만, 이 정도로는 백 번 양보해서 선에 불과한 지구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유엔 사무총장처럼 지구를 가 본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치를 아빠는 알았다. 지구는 구의 형태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주 알려줬으니 말이다.

“아빠는 여권이 없는데?”

“만료돼서?”

“아니. 아직 여권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keyword
이전 07화가장 어려운 전화, 그냥 온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