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전화, 그냥 온 전화

맞은바라기

by 다날

“그냥 전화해 봤어.”
얼마 전 민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 하늘을 날았다며, 교관은 몇 번이나 죽음의 순간이 있었다는 둥 자신의 짜릿한 기분을 전했다. 동시에 나의 평범한 하루를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전화를 끊고 나는 눈물을 흘렸고, 6년의 미안함을 씻었다. 그냥 온 전화 한 통에.




6년 전 민기는 일찌감치 8월에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 반면 나는 재수의 길로 들었다. 도서관에서 수능을 준비하기로 한 2월 15일은 민기의 공군사관학교 입학식이었다. 전날 그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입학식에 같이 가 줄 수 있니?, 사정을 말하고 거절을 했다. 한 달 동안 힘들었나 보더라. 네가 와줬으면 하더라고. 스무 살, 우리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의 위치가 달랐다.


학교로 가는 길에 어머니가 나를 데려가려는 이유를 알았다. 민기는 입학 전 기본훈련 점수에서 전체 1등으로 신입생 대표였다.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처음 본 낯선 제복은 내 눈을 자꾸 매스껍게 흔들었다. 눈이 무거웠다. 많은 생도들 중 그는 그날의 주인공이었기에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로마 시대의 강인한 장군이 왕에게 출정을 선포하듯 선두에서 홀로 식을 이끌었다. 이상하게 애국가를 들으면서도 미간은 찡했다.
생도들은 가족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민기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다시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의 웃음을 바라봤다.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더 이상 차오르는 물의 압력을 버티기 힘들었다. 화장실을 핑계로 잠시 자리를 벗어났다.

블랙이글스의 공연이 시작될 예정이니 착석하라는 방송에 이제는 다시 자리로 가야만 했다. 순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냥 잘 도착했나 해서, 그리고 진심으로 친구를 축하해 주라는 엄마의 전화였다.

축하 공연으로 날던 전투기의 굉음 속에서 나는 결국 눈물을 목구멍 안으로 쏟아냈다. 그날 눈물이 찼던 이유를 알았다. 누구는 세상이 자랑하는 아들인데, 누구는 세상에 발조차 디디지 못한 볼품없는 아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했다.

고3 초가을 엄마는 자궁암으로 많이 아팠다. 수술이 끝난 날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아들의 수능 공부를 방해하기 싫었나 보다. 급하게 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슬픈 여자로 누워있었고 의사는 나를 불렀다.

“이제부터 엄마가 많이 힘들 거야. 엄마가 40대지만 지금부터는 70대라고 생각하면 돼. 잘해드리렴.”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불 꺼진 외래진료 대기석에서 한없이 울었다.

재수는 끝났고 모든 원서는 불합격이었다. 분명 성적은 나의 노력을 말해줬다. 엄마만이 알아줄 뿐이었다. 그때도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뒤가 터진 나의 운동화였다. 근처 아웃렛으로 향했다. 세 곳 정도 들렸을 무렵 엄마의 걸음은 힘들어 보였다.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돌아가자 했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옆 동으로 넘어가는 통로에서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화가 났다. 내 얼굴에 짜증이 드러났는지 엄마는 왜 짜증을 내냐며 화를 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운동화를 사줘!”
나도 모르게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울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며 펑펑 울었다.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힘들어 엄마도… 엄마가 운동도 더 열심히 할게. 미안해.”
엄마의 눈물을 볼 수 없어 혼자 옆 동의 서점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때 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냥 작년 이맘때쯤에 와줬던 게 기억난다며 고맙다고.




지금도 엄마는 약하다.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걷는 시간은 늘었다. 비행을 꿈꾸던 한 생도는 이제 전투기를 조종한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함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됐다.

이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해봤어 라며. 그리고 그가 비행기를 처음으로 몰았다며 처음 그를 자랑했다.

"별일 없어. 그냥 해 봤어. 민기한테 좀 전에 전화 왔었는데,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혼자 전투기 몰았다더라. 멋지긴 해 그지?"

“잘됐네. 진심으로 축하해 주렴.”

둘에 대한 무거움을 씻고, 이제 나는 세상에 발을 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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