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굴가위바위보_3(식용유침대)

맞은바라기

by 다날

휴식기에 명애는 태풍이 지나가고란 영화를 봤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명애는 백수의 특권을 누리고자 조조영화를 예매했다. 재벌이 아닌 이상 영화관을 통째로 빌릴 방법은 이게 유일했다. 하루에 한 번만 상영하는 재개봉 영화나 예술영화를 아침부터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명애는 태풍에 꽂혔다. 아침에 어떤 아빠가 아이와 아내를 기차에 태우고 급하게 내리는 영상을 봤다. 한 가정의 남자가 한 국가의 남자로 환복 하는 시간이었다. 러시아 군의 폭격으로부터 국경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러 가는 남자였다. 남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군복을 입거나 총을 닦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와 아내를 그곳으로부터 최대한 먼 곳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명애는 저 정도 태풍은 불어야 집이 없어도 가족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엄마와 오빠의 결혼은 그깟 미풍에 불과했구나 생각했다.

영화 속 태풍은 명애의 예상보다 길었다. 진짜 태풍 때문에 이혼한 부부가 아이와 함께 어쩔 수 없이 친가에서 하루 머무른 이야기였다. 그곳의 아빠는 양육비는 둘째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아들이 갖고 싶어 하는 야구화 하나 선물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도박도 일삼아 친구들에게 돈이나 꾸러 다녔다. 그런데도 아빠 흉내라도 내며 가족이려고 노력했다.

‘이제 가족이랑 만난다는 건 그만둬.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는 거다.’그런 남자에게 남자의 엄마가 한 말이다. 명애는 궁금했다. 누군가의 과거에 살고자 하는 의지, 누군가의 과거에 사과하고자 하는 반성, 누군가의 과거로부터 떠나고자 하는 마음 중 무엇일까 고민했다. 영화 속 아빠들은 과연 누군가의 과거가 됐을까. 용기가 그런 걸까. 그려봤다.

옛날에 집을 나간 아빠는 어떤 용기였을까. 짐작할 순 없지만 명애에게 태풍은 꼭 농구경기 같았다. 잠시 휘몰아치고 빠르게 사라지는 고통이었다. 다만 그 고통이 너무 약해서 영화가 되진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명애는 빨리 농구장에 가고 싶어졌다. 종경의 태풍은 어느 정도의 고통일지 궁금했다.

종경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뉴스를 봤다. 부상당한 러시아 병사 한 명을 우크라이나 드론이 쫓아 폭격하는 장면이었다. 죽기 전 러시아 병사는 담배만 하나 태우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담배를 하나 태우자마자 곧장 담뱃갑에서 연초 하나를 더 꺼내려다 폭탄에 맞았다. 종경은 붙어 있단 이유로 친구였다가 그 이유로 적이 되는 상황에 침투했다.

명애가 말한 ‘적’ 때문이었다. 이기고 지는 개념이 존재하는 승부에서 농구와 전쟁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명애는 적과 있으려 할까. 명애는 저 러시아 병사에게도 적과 있으니까 그곳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적에 대해 알려면 적의 반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큰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물론 할아버지의 수첩에 쓰여 있던 내용이었다. 국가유공자의 말이라면 적어도 적에 있어서는 신뢰가 갔다.

종경은 넷플릭스에 가족을 검색했다.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적이라면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건 가족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 앞에서 절을 할 때 빌던 소원들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다 잘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거면 근거로 충분했다. 어느 가족이란 영화를 눌렀다. 태풍이 지나가고와 같은 감독의 작품이었다.

첫 장면부터 아빠는 아들과 딸에게 도둑질을 가르쳤다. 부자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칠 때 엄마는 세탁 공장에서 빨랫감의 소지품을 훔쳤다. 할머니는 전남편의 아들 집에 가서 돈을 뜯었다. 저녁이면 판자촌에 모여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가족이었다. 종경은 혼란스러웠다. 이들이 피로 공유된 가족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항상 저녁을 먹으며 서로에게 과감 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서로에게 한숨을 뱉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가족도 순식간에 서로의 적으로 변했다. 할머니가 죽었다. 구급차를 부를 수 없었다. 친부모로부터 아동학대를 받아 데려 온 딸이 실종신고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딸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유괴가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를 집에 묻었다. 얼마 후 딸이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다 직원에게 걸렸다. 오빠인 아들은 일부러 티 나게 물건을 훔쳐 달아나며 여동생을 지켰다. 아들이 경찰에 잡히며 모든 비밀이 TV 위로 떠올랐다. 모든 게 법이 정한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갔다.

종경은 대체 누가 적이고 가족인지 피하식별이 어려웠다. 분명 원래의 가족으로 회복됐는데 저들은 모두 아파했다. 서로 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적이 됐다. 경찰조사에서도 누구 하나 배신하지 않았다. 종경은 명애가 원정석에서 느끼는 적과 배신이 이런 건지 궁금했다. 2라운드 첫 경기를 예매했다.



“이제 아주 쌍으로 지랄이네!”

뒤쪽 원정팬이 종경과 명애를 향해 일어섰다. 종경은 여전히 허벅지만 두드렸고 명애는 홈팀의 응원가에 맞추어 뛰었다.

“키스하더니 그새 둘이 살림이라도 차렸냐”

종경과 명애는 어느새 세트가 되어 있었다. 파도타기처럼 원정팬들은 욕을 퍼부었다. 1라운드와 다르게 두 명의 개구리는 이들에게 구면이었다. 한 번 붙었던지라 원정석의 사람들은 종경과 명애를 기억했다. 마치 올챙이도 못 낳게 한 번에 싸잡아 제거하려고 기다린 듯했다. 종경은 명애가 받았던 키스의 대가를 짐작했다.

종경은 애초에 주변 눈치 따위는 살피지 않는 명애가 도망가지 않을 줄 알았다. 종경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더욱 조용해진 홈석이 보였다. 단순한 분노와 달리 홈석의 팬들은 멸시의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너네 같은 머저리들 때문에 우리가 우리 선수들이 욕먹는다고 묵음으로 경멸했다. 종경은 적이니까 배신당할 일은 없단 말로 들렸다. 그리고 처음 명애가 싫었던 건 내가 아니라 우리를 서로 적으로 생각하게끔 만든 저들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종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 자리 사람들을 하나씩 밀쳐 가며 통로로 걸어갔다. 점점 원정석도 고요해졌다. 계단 통로에 도착한 종경은 그 자리에 서서 홈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외쳤다.

“이 배신자 새끼들아!”

명애는 경호원들의 부탁에 종경을 데리고 나갔다. 종경은 분했다. 평소의 명애라면 내가 허벅지를 치던 원정팬들이 욕을 하던 코트만 보고 응원했을 테다. 꺼져라 꺼져라에 죽도록 붙어 있는 게 이기는 거였다. 입 다물고 따지진 않아도 경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 이긴 거였다. 개굴 가위바위보도 그러지 못했던 명애가 답답했다.

“그렇게 욕먹을 때도 가만히 있더니! 왜……왜! 우리가 도망치냐고요!”

명애는 검지 손가락으로 체육관을 가리켰다. 그 끝엔 팬들의 응원소리가 경기장 외벽을 뚫고 새어 나왔다. 홈팀인지 원정팀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어딘가는 골을 넣고 있었다.

“봐요. 우리만 나오면 다 정상적으로 돌아가요. 물론 저긴 태풍이지만. 계속 저기 있었으면 우리 날아갔을 수도 있어요. 그니까 우리는 져서 이긴 거예요.”

명애는 태풍이 무서웠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가 없었다. 기다리지 않고 포기하면 태풍은 지나갔다. 종경의 태풍이 얼마나 강력한 줄은 몰랐지만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안다고 해서 종경을 도망갈 자신도 없었다. 혼자 욕을 먹으며 안 들리는 척 참고 싶지 않았다. 종경도 알았다. 명애는 항상 개굴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단 사실을. 어디든 최대한 버텼다. 그러다 떨어지면 추락하면서 또 어디를 잡고 버텼다.

“우리 이제 뭐 하죠?”

종경과 명애가 동시에 물었다. 이미 둘의 목표는 깨졌다. 이번 시즌 동안 경기장 출입이 금지됐다. 순간 명애는 종경의 유니폼 중간에 그려진 개구리를 봤다. 키스의 대가! 농구와 원정석 말고 유일하게 종경도 함께 아는 그것이 떠올랐다.

“가위바위보! 졌다!”

종경은 아무것도 내지 못했다. 명애는 종경의 이마를 한 대 때렸다. 종경은 꿀밤의 충격에 태풍을 빠르게 보냈다. 한동안 경기장 앞에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웃었다.



내지 않는 건 규칙에 없으니까 이땐 뭐라고 외칠까요. 꼭 뭐라고 외쳐야 할까요 그냥 다시 가위바위보 하면 되지 않을까요. 종경과 명애는 홈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이 보이는 카페에서 개굴 가위바위보를 연습한다. 아무 대가도 내기도 없이 지나가다 보이면 무작정 가위바위보를 했던 날들. 때리면 웃고 맞으면 울면서 돌아온 집. 그리고 그 분위기. 종경과 명애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다.

나머지 시간은 휴식기다. 명애는 어차피 개구리는 겨울엔 잠을 잔다며 저기 시끄럽게 떠드는 개구리들이 비정상적이라고 말한다. 종경과 명애는 연습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 집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간다.



에필로그_식용유 침대

시내 모퉁이의 작은 오뎅바의 주방은 더욱이 작다. 그래서 싱크대와 식기세척기 사이 식용유 통은 유난스럽게 크다. 통 위에 누워 본다. 육수통 뚜껑 사이로 삐질삐질 올라오는 김을 이불로 덮는다. 이상하게 포근해진다. 그래도 음식물 쓰레기봉투 냄새 때문에 잠이 오진 않는다. 이게 진짜 침대가 맞나?

“잔다고 시위하냐?”

침대 주인이 나타났다.

“에이, 잠깐만 있어 볼게요.”

“신기했냐? 요즘 피곤해서 그래.”

같이 주말을 책임지는 알바 누나가 침대에서 밀어낸다.

“부러워서요. 여기에서도 잘 수 있는 게.”

“너도 집 가서 자면 되지.”

“내일 할 것도 없는데 빨리 자서 뭐해요. 암튼 부러워요. 자야 한다는 게.”


두 번의 결혼으로 집이 사라진다.

엄마가 재혼하고, 오빠가 결혼한다.

TV에서나 보던 재혼과 결혼은 슬프기도 아프기도 하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떠오른 건 하나였다. 월세냐 전세냐. 전세는 청년대출을 받아도 부담이지만, 매달 꼬박이 2시간만 있는 방에 돈을 내는 것도 바보 같았다.

하루에 일식당, 퓨전술집, 이자카야까지 세 탕을 뛸 수밖에 없다. 월세보단 전세가 맞다. 오뎅바가 끝나면 첫 차가 다닌다. 옆 동네의 일식당 문을 열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공식적인 숙직 제공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가게 오픈을 준비하면서 식당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 한 사이클이 지나면 문득 아니 매번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그러나 그 끝은 똑같다. 굳이 답을 찾아 누굴 증오하고, 답을 찾아 달라 누구에게 호소하는 시간에 잠시 눈이라도 감는 편이 현명하다.

그래도 하루 두 번 식장 앞에서 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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