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굴가위바위보_2

맞은바라기

by 다날

종경도 주택청약의 인정 금액이 상승한다는 뉴스를 친할머니 제사에서 들었다. 요즘 애들은 서울에만 살고 싶어 해서 주택공급이 부족한 거라고 큰아버지가 말했다. 작은아버지는 형 그게 아니라 애들이 뻑하면 부모랑 떨어져서 살고 싶어 해서 그렇다며 이유를 더했다. 첫째 사촌형은 차례만 지내고 형수와 조카를 데리고 큰집을 떠났다. 식사 시간도 빨라졌다. 종경이 학생일 때만 하더라도 사촌형, 누나들이 한 자리씩 차지해서 며느리들은 상을 한 번 치우고 식사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큰집에 살고 있는 둘째 형과 종경만이 뉴스에서 말하던 청년이었다.

조카가 태어난 후 종경도 이제는 막내가 아닌 어른이 됐다. 종경은 더 이상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좋아하는 걸 해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아빠 피를 공유한다는 의무감에 제사에 왔지만 피비린내 말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뉴스거리가 없으면 크게 대화가 없고, 뉴스거리가 있으면 쉽게 대화의 볼륨이 커졌다. 누구 하나 기분이 상하면 이참에 잘 됐다 싶어 모두가 집으로 가기 바빴다. 어느 순간부터 절을 하면서 할아버지께 오늘은 조금 빨리 드셔 주세요. 잠 좀 덜 올 때 가야 사고도 안 나요. 빌었다.

마지막 절을 할 때 인사는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로 고정이었다. 하지만 종경은 이날은 다르게 인사했다. ‘할아버지가 보기엔 우리가 가족이 맞나요.’라 물었다. 어차피 오늘은 빨리 가기는 글렀음을 알았다. 큰아버지가 중대 발표가 있다며 제사를 서두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로 지정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의 사진과 훈장이 기록과 일치하면서 등록 요건을 갖추게 됐다. 한 씨 집안의 영광이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이라며 대화가 오고 갔다. 작은아버지와 아빠는 애들한테 국가유공자 혜택이 될 만한 건 없는지 찾아봤다. 종경은 제사를 지내는 내내 아버지들의 모습이 새로웠다. 이게 내 아빠야 라고 자랑하는 아이가 되어 서로 웃으며 각자만 알고 있는 아빠의 자랑거리를 읊었다.

종경이 조카만 할 때 다 같이 거실에서 차례 전 날 특선영화를 보며 깔깔대며 잠들었던 이후 처음으로 모두가 웃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종경이는 요즘 뭐 하고 있니?”

종경은 답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꽤 오래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형이 작년에 은행에 취직하면서 사라진 질문인 줄 알았다.

“올 겨울에 졸업하고 면접 준비하고 있어요.”

“무슨 면접?”

종경은 뭐 이거 저거 해 보고 있다며 둘러대고 아빠를 바라봤다. 종경과 눈이 마주친 아빠는 형 아버지 국가유공자 증서는 언제 나오냐며 큰아버지의 시선을 돌렸다. 종경은 조심스레 일어나 설거지 소리로 시끌벅적한 부엌으로 갔다.

“종경아 그럼 자취는 계속 서울에서 하고?”

종경은 당황해서 입에 있던 고구마튀김이 목에 걸렸다.

“네, 계속 거기 있어요.”

“졸업도 했는데 계속 거기 있는 이유가 있는 거야?”

오래간만에 종경은 본가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엄마의 질문에 계속 브레이크를 잡았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종경은 대학도 삼수 끝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로스쿨도 회사 면접도 이미 떨어진 인생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학교를 다닐 땐 통학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가 있었고, 졸업 후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는 일이 없었다.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돈은 있고?”

뒷좌석에 있던 아빠가 한숨으로 말을 마쳤다. 룸미러로 보이는 아빠의 처진 자세가 이유를 알려줬다. 종경은 본가에 가기 싫었다.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종경에게서 그 집은 사라졌다. 종경은 느꼈다. 뭘 해도 하지 않아도 쌓인 죄로 무너지는 집이 보였다. 종경은 증오할 대상이 없는 증오가 되고 있음에 돌아갈 집을 잃었다. 자신이 없을 때의 집은 꽤나 행복한 형태로 상상됐다. 종경은 운전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 운전대를 꽉 잡았다.

그래서 종경은 본가엔 없고 자취하는 곳엔 있는 유일한 것을 찾았다. 실내체육관이었다. 종경은 이번 시즌 모든 홈경기 직관이란 목표가 생겼다.



경기장 건너편엔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다. 종경은 경기 전 늘 거기에 들러 햄버거 단품을 포장했다. 좁은 경기장 자리에서 감자튀김까지 펼칠 공간은 없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종경은 바빴다. 가방에서 홈팀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부터 얇은 긴팔까지 벗었다. 하얀 무지 반팔에 유니폼을 입고 다시 윗옷으로 잠갔다. 집에서부터 입기엔 부끄럽거니와 목적지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주말 경기라 주문이 많이 밀렸다. 개구리로 환복 한 종경은 키오스크 앞에 서 있는 명애를 봤다. 주문을 마친 명애는 자리에 앉아 두꺼운 니트를 벗었다. 핸드백에서 홈팀 유니폼을 꺼내 입더니 다시 니트로 가렸다.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머리를 만지더니 후후 하며 긴장을 푸는 듯했다. 종경은 명애가 가증스러웠다. 원정석에서 뛰던 모습이 연출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니까 그럴 거면 홈팀에 앉으면 되잖아요.”

“홈팀에 앉으면 다 똑같잖아요.”

종경의 의심은 확신이 됐다. 어떻게든 카메라에 잡혀 상품을 타려는 관종이라고. 외식상품권을 집에 놓고 나온 걸 후회했다.

“다음에 외식상품권 줄게요. 그니까 오늘은 좀 얌전히 있어요.”

명애는 키스의 대가가 외식상품권인 줄 눈치챘다. 키스의 가치가 그깟 밥 한 끼였다니 웃겼다. 명애는 크게 웃었다. 웃음이 끝나면 화를 내려던 종경은 주도권을 잃었다.

“가족이 키스하는 거 본 적 있어요? 되게 웃긴데.”

“네?”

“엄마는 왼쪽 홀에서 오빠는 오른쪽 홀에서 동시에 키스를 해요. 그럼 누구의 키스를 볼래요?”

종경은 계속되는 키스란 단어에 당황했다. 순간 개굴 가위바위보 같았다. 맞춰도 틀린 것 같고 틀려도 맞춘 것 같은 문제라 생각했다. 화가 오르면서도 내려갔다. 생각해 보니 어려운 문제였다. 엄마가 결혼한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도 오빠가 낫지 않겠어요? 엄마보단”

“틀렸어요. 축의금 받아야죠. 키스는 귀로 듣고 눈은 돈을 봐야죠. 혀는 잠시만 섞지만 돈은 피만큼 분리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렇다고 엄마랑 오빠랑 키스하게 둘 순 없잖아요.”

“개굴 같은 거네요.”

“맞아요. 가위바위보 중에서 아무것도 내지 않아도 되니까.”

종경은 이벤트 게임에서 아무것도 내지 않았던 명애의 손이 기억났다. 명애는 그래서 키스타임에 뽀뽀를 했다고 그래도 그때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키스하면 집이 생기는 줄 알았다느니 집이 생긴다는 생각에 행복해한다느니 종경은 명애의 변명에 웃음이 났다. 갑자기 아빠가 엄마와 집에서 키스하는 모습이 상상됐다. 집을 생각하는데 왜 웃음이 나는지 의문이었다.

명애와 종경은 경기 전 몸을 푸는 선수들을 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종경은 궁금했다. 왜 이 여자 집안의 키스를 듣는데 기분이 붕 뜨는지에 대해. 동시에 오늘도 원정석에서 미친 개구리처럼 뛸 건지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명애가 빨랐다.

“저번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저 숫자는 뭐예요?

당연히 저번부터 궁금한 건 너는 왜 원정석에 앉냐가 맞지라며 종경은 황당했다. 그렇게 원정석에 앉지 말라는 남자에게 네가 뭔데 너도 거기 앉아 있으면서 지랄을 하는 게 보통이라 생각했다. 명애가 가리킨 건 팀파울이었다. 선수들의 개인 파울이 쌓여 한 팀이 한 쿼터에 파울이 다섯 개 이상이 되면 페널티로 상대팀에게 자유투를 준다. 매 쿼터가 끝나면 팀파울은 리셋된다. 명애는 연대책임이라 생각하면 되겠네요 하며 공평해서 별로라 했다. 그래도 네 개가 되면 초록색의 숫자가 빨간색으로 바뀌어 경고해 주는 건 좋다며 한참 바라봤다.

“매번 제가 원정석에 앉는 이유는 안 궁금해요?”

“움……적어도 배신당할 일은 없으니까? 저는 그래요.”



프로리그는 총 열 팀이 한 번씩 경기를 했다. 모든 팀이 아홉 경기를 끝내면 라운드 하나가 끝났다. 선수들은 한 라운드가 끝나면 일주일 간 휴식기에 들어갔다. 종경은 명애가 필요했다. 친할머니 제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자 상장도 같이 볼 겸 큰아버지는 되도록 모든 식구에게 오라고 당부했다. 고인보다 쓸모없는 인간이라 확정되기 싫었다. 무엇보다 본가에 가기 싫었다.

종경은 외식권을 썼다. 서로 사는 곳을 묻기엔 가깝지 않다고 생각해 경기장 근처 지점으로 정했다. 돈만 낸다면 패밀리가 아니어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가능하단 걸 알았다. 종경과 명애의 옷차림은 그 어떤 가족보다도 편해 보였다.

“다들 갖춰 입고 왔네요.”

“그러게요. 불편하지도 않나 봐요.”

옷과 다르게 직원과 손님처럼 불편함으로 어색함을 풀었다. 메뉴는 스테이크는 양부터 굽기까지 서브메뉴는 감자튀김부터 볶음밥까지 복잡했다. 종경은 커플세트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명애는 키스를 한 사이로 오해할까 걱정했지만 종경의 눈빛에서 보인 강한 낯섦에 안심했다.

“근데 정말 제사 안 가도 돼요?”

그래도 명애는 종경이 외식권을 쓴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 종경은 끄덕였고 명애는 웃으며 자기는 제사에서 영원히 해방됐다고 자랑했다. 두 번의 결혼식을 치른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미안한 마음에 종경은 화제를 돌렸다.

“원래 농구 좋아했어요?”

“글쎄요. 농구보단 농구하던 남자애들을 좋아했었죠.”

명애는 고등학생 때 농구부 남자애를 좋아했었다. 부끄러워 체육관 맨 위층에 숨어도 골을 넣고 명애를 먼저 찾는 남자가 따뜻했다. 운동이 늦게 끝난 날엔 명애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상하게 명애네의 식탁은 외부인이 있을 때만 시끌벅적했다. 명애는 그게 좋았다. 종경도 농구부 때 친구들이 떠올랐다. 특히 운동이 없던 날 피시방에서 같이 컵라면을 먹던 게 아른거렸다. 모일 이유가 없을 때 모인 적이 그 이후로는 생각나지 않았다. 음식을 세팅하는 소리에 묻고 싶었던 질문이 종경을 스쳤다.

“근데 정말 제가 왜 원정석에 앉는지 안 궁금해요?”

“글쎄요. 질문이 이상해요. 뭐랄까……왜 원정석에 앉아요? 가 더 낫지 않아요?”

명애는 종경이 원정석에 앉는 이유를 찾아줘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았다. 또 그 이유가 자신과 달라도 같아도 불편할 거 같았다. 종경은 문득 왜 내가 원정석에 앉는지 고민했다. 사실 명애가 이유를 말했다고 한들 그게 맞고 틀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명애가 원정석에 앉는 이유가 힌트가 될 것 같았다.

“그럼 왜 원정석에 앉아요?”

“원정석에 있으면 욕은 먹어도 배신당 할 일은 없잖아요. 어차피 적이었으니까.”

식사가 끝나고 서로 가는 방향도 묻지 않고 헤어졌다. 서먹한 사이에서 보통 물어보는 질문 빼고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종경은 제사를 안 갈 수 있었고 명애는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밥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종경은 명애가 원정팬들의 욕을 듣고 있었단 걸 알았다. 명애는 종경이 자기처럼 혼자 산다는 걸 알았다. 키스의 대가가 하나 더 늘었다.

keyword
이전 03화개굴가위바위보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