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바라기
한종경과 유명애는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한종경은 가위가 바위를 가를 수 있단 게 이해되지 않았다. 바위로 내리 쳤는데 부서지지 않는 가위가 어딨냐며 승부의 결과를 도통 인정할 수 없었다. 규칙이 그랬다. 처음부터 장내 아나운서는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설명했다.
“자 지금부터 저랑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이기면 졌다, 지면 이겼다라 외치고, 비기면 개굴이라 외치는 동시에 양손을 개구리 귀 모양으로 만드는 겁니다.”
한종경은 2 쿼터가 끝난 하프타임 이벤트 응모에 당첨됐다. 장내 아나운서는 본인 집인 마냥 특유의 안정적인 톤으로 한종경을 압박했다. 허락된 사람만 밟을 수 있는 농구 코트도 우리 집에서 빨리 나가라며 반짝거렸다. 한종경은 장내 아나운서가 낸 찌를 보며 습관적으로 반응했다. 묵을 내고 이겼다고 외친 순간 탈락자가 됐다. 한종경은 초콜릿은 애들이나 먹는 거라며 잘 져 준 거라 속으로 외쳤다.
유명애는 맨 마지막 순서였다. 한종경부터 연이어 탈락한 앞사람들을 보며 승리하는 법을 찾았다. 장내 아나운서의 패턴을 읽기는 어려웠다. 결국 평소보다 한 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전략을 세웠다. 참는 건 자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손을 보고 한 박자 생각하고 외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명애는 아무것도 내지 못했다.
“원래였으면 이긴 건데……그래도 가위바위보는 졌으니까 경기는 이기겠죠?”
명애가 코트를 벗어나는 종경에게 물었다.
“농구는 원래 규칙이 있어요. 바꿀 수도 없고. 이기면 이긴 거예요.”
종경은 명애보다 앞서 자리로 향했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우세한 원정팀이 크게 앞선 전반을 보고도 저런 소리나 하는 팬이 있으니 가위바위보도 개굴개굴 댄다고 생각했다.
3 쿼터가 시작되면서 경기장 열기의 흐름이 거꾸로 바뀌었다. 홈팀의 공격 방향이 원정석으로 향했다. 가위바위보와는 달랐다. 홈팀 선수들은 적이 많아졌지만 이겨야 하는 수가 늘어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를 뚫기 위한 공격의 의지가 커졌다. 물론 의지를 쏘아대도 골대 안쪽으로 들어가는 공의 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종경은 원정석을 좋아했다. 종경은 응원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기면 본인의 응원이 특별했기 때문이고, 지면 의지가 골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라 생각했다.
명애는 새로운 개구리였다. 홈팀 구단은 팬을 개구리라 불렀다. 진학 녹색의 유니폼에 맞게 팀 로고와 마스코트도 개구리였다. 명애는 첫 직관 경기부터 이벤트에 당첨됐다. 원정 응원단 사이에서 팔짝팔짝 뛰는 개구리를 카메라가 잡았다. 홈팀의 득점에도 손바닥으로 허벅지만 두드리며 응원하던 종경은 그런 명애가 거슬렸다.
다음 직관 경기의 원정석에도 개구리 둘이 있었다. 종경은 명애가 다시 경기장을 찾을 줄 몰랐다. 명애는 첫 직관부터 원정팬들에게 욕을 때려 먹었다. 4 쿼터가 의외로 박빙의 승부가 됐다. 명애는 더 과하게 팔짝팔짝거리지 않았다. 다만 원정팬들이 변했다. 명애에게 미친년아 홈석으로 꺼져라부터 시작해서 개구리 눈깔이라니 온갖 조롱과 증오를 뱉어냈다. 명애는 귀가 없는 개구리 같았다. 못 듣는 척 시늉 조차 하지 않았다.
종경은 명애 때문에 원정석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저번과 달리 명애의 자리가 종경의 옆자리였다. 점수판을 보는 척하며 원정팬들의 눈초리를 계속 훑었다. 홈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종경은 명애를 앉히고 싶었다. 종경은 팔을 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하프타임까지만 참기로 했다.
“분명 졌다고 외치려 했는데, 생각보다 이기기가 어렵지 않아요?”
말을 먼저 건 쪽은 명애였다. 개굴 가위바위보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그럴 거면 홈석에 앉지 그래요? 거기가 상품도 더 많이 주는데.”
종경은 제발 명애가 홈석으로 가길 바랐다. 타임아웃마다 주는 선물의 주인은 카메라 감독이 결정했다. 카메라에 잡힌 얼굴이 전광판에 비치면 당첨이었다. 종경은 명애가 상품이나 받으려고 일부러 원정석에서 뛴다고 생각했다. 원정석에서는 유난히 녹색의 유니폼이 잘 보였다.
3 쿼터 종료까지 명애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4 쿼터가 시작되기 전 단체응원에는 키스타임이 있었다. 종경은 전광판에 명애와 나란히 잡힌 자신을 봤다. 홈석 관중들은 빨간 유니폼들 속에서 청개구리 둘의 키스를 열광하며 부추겼다. 종경은 커플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명애는 팔짝 뛰어 얼굴을 들이밀었다.
외식상품권은 종경이 가져갔다. 명애는 상품 수령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명애가 상품에 미쳤다고 생각한 종경의 예상과 달랐다. 정말 다시는 안 마주쳤으면 하는데 왜 그랬냐고 따지려 종경은 입을 닫고 경기를 끝까지 봤다. 종경은 상품권을 챙길 마음은 없었지만 도둑으로 몰릴까 봐 주머니에 넣었다. 종경은 명애가 상품수령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괜히 다음에 달라했을 때 없으면 상품에 미친 사람이 나를 이용해 한 번 더 카메라에 잡히려 뛰어다닐 거라 상상했다. 무엇보다 명애가 다음 경기에는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명애는 또 원정석에 앉아 있었다. 명애는 게이트로 입장하는 종경에게 다가갔다.
“저번에는 죄송했어요. 궁금했어요 키스가 어떤 건지.”
명애는 종경에게 입을 맞출 때 어떠한 이성적 설렘도 없었다. 이게 그렇게 행복할까 하는 의문만 있었다. 명애는 키스가 무엇을 주길래 인간이 이것에 이렇게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조용히 좀 해요.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명애의 예상대로 종경은 짜증을 냈다. 명애는 종경이 곧장 외식상품권을 주고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도 알았다. 개굴 가위바위보 때처럼 알면서도 준비된 방법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종경이 던지다시피 건넨 외식상품권을 받았다. 명애는 관중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종경을 눈으로만 쫓을 수밖에 없었다.
집이 사라진다. 주택 공급이 불안해질 전망이다. 서울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주택시장도 공급절벽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매년 감소하는 출산율로 인한 인구절감을 걱정한다.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은 매일 더 짓고, 사람은 줄어드는데 대체 왜 주택 수는 부족하단 말인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가족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가족문제는 가족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사라지는 게 문제다. 사람 수와 주택 수는 반비례함에도 주택경쟁이 치열해진 이유는 사람이 쪼개졌기 때문이다. 가족이 흩어지면 구성원 각자는 집이 필요하다. 주택청약은 이제 십만 원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매달 이십 오만 원은 꼬박꼬박 통장에 묵혀야 한다. 청년들은 버겁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족으로 묶이기를 점점 거부한다. 주택문제는 주택이 아니라 가족 문제이다.
명애는 경제잡지에서 칼럼을 찢었다. 가족이 흩어져 주택이 더 필요한 게 아니라 집이 사라져 가족이 사라진 거라고 따지고 싶었다. 칼럼기자의 이메일로 항의를 하려다 참았다. 대신 명애는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프로모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직원의 말을 자르고 구독 취소를 요청했다. 그래도 명애네는 오랜 구독자로서 소정의 선물로 다음 달 잡지는 받을 수 있었다. 기존의 구독 주소와 동일한 곳으로 보내면 되냐는 직원의 물음에 명애는 이사 간다고 답했다. 명애는 계속해서 도시가스, 한전, 통신사에 전화했다. 하나씩 다 끊어냈다.
구독취소가 확정됐다는 문자 위로 부동산에서 좋은 방이 하나 나왔다는 문자가 왔다. 명애가 원했던 대로 체육관 근처였다. 월세는커녕 반전세도 없던 마당에 월세방은 희소식이었다. 명애도 왜 웨딩촬영이 끝난 그날 두 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프로농구 경기를 보러 간 지는 몰랐다. 원래 살던 동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인프라여서 그랬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 되어 부대끼고 싶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도망가 주는 건 아니란 보장을 받아야 했다.
축의금을 챙겨 결혼식에서 나온 후 부동산으로 향했다. 축의금은 보증금으로 명애의 통장에서 흩어졌다. 엄마와 오빠가 같은 날 나란히 결혼했다. 엄마는 재혼을 하며 신랑의 집으로 들어갔고, 오빠는 신혼집으로 나갔다. 셋이 살 던 집은 그렇게 사라졌다. 명애는 쫓겨나고 싶진 않았다. 또 축의금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돈으로 산 집에는 언제든 엄마와 오빠가 올 수 있는 명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의금으로는 보증금의 반만 충당했다. 적어도 나에게 허락은 맡아야 올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고 명애는 곱씹었다.
명애가 허락할 일은 없었다. 명애는 두 번째 직관 경기를 보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였다. 방은 잘 계약했냐는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축의금을 왜 다시 보냈냐고 물었지만 이벤트에 당첨됐다며 화제를 돌렸다. 정말 이 돈 필요 없냐는 엄마의 계속되는 확인에 오빠 몫이 반이니까 반은 오빠에게 돌려주라 말했다. 명애는 엄마는 그 아저씨 집에서 살지만 오빠는 새로 사는 거라며 선을 그었다.
전화를 끊고 난 명애는 목표가 생겼다. 이번 시즌 모든 홈경기를 직관하기로 결심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분위기가 묘하게 좋았다. 내 편 네 편 하다가도 두 시간 후엔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집에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필요했다. 우선 명애는 다음 경기를 직관할 이유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