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바라기
[맞은바라기]_앞으로 마주 바라보이는 곳.
[곳]_공간적인 또는 추상적인 일정한 자리나 지역.
[일정한]_어떤 것의 크기, 모양, 범위, 시간 따위가 하나로 정하여져 있다. 어떤 것의 양, 성질, 상태, 계획 따위가 달라지지 아니하고 한결같다. 전체적으로 흐름이나 절차가 규칙적이다.
지금 이곳 저곳 그곳 하면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에 그 일상도 다르다. 하지만 곳은 이미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일정하다는 경계는 어디일까. 있다면 누가 그어 놓은 걸까. 심지어 공간만 그럴까.
강아지를 키운다. 우리 집 강아지는 강아지이다. 그래 강아지는 강아지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혼자 목줄도 인식표도 없이 동네나 거리를 돌아다니면 그때도 강아지라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유기견이라 말할 것이다. 이제 우리 집 강아지는 유기견이 되었다. 유기견은 보호센터로 간다. 일정한 시간 동안 아무도 유기견을 데려가지 않으면 안락사를 피할 수 없다. 결국 강아지가 강아지이려면 사람이란 주인이 있어야 한다. 야산에서 살아가는 개는 주인이 없다. 그 개는 이제 개가 아니라 위험 요소가 된다. 그리고 사라져야 할 존재가 된다. 강아지나 개는 그렇게 일정한 곳을 지닌다. 강아지(개)거나 죽을 존재거나 둘 중 하나에서.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자신이 무엇이며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정했을까. 그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까.
비단 강아지만 그럴까. 인간은 우리 사람은 우리의 곳을 알고 있을까. 저 아파트 건너편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을 때, 누구는 학교가 있다고 또 누구는 악마가 있다고 할 수 없을까. 강 건너편의 곳을 도로로 정의하는 사람도 있고, 바다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경계를 잘 그어 놓고 산다. 누가 만든 경계인지도 모르면서 그 얇은 선에서 벗어나면 틀렸다 질책하고 나무란다. 때로는 경계를 긋기만 바쁘다.
그러나 경계는 정말 존재할까. 아니, 경계는 반드시 하나일까. 하나로만 정해져야 모두가 편해질까. 저마다의 맞은바라기가 있지 않을까. 맞음 바라기 대신 맞은바라기를 찾는 여유가 길어지면 우리는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보게 될까. 그 수많은 새로운 가치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