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바라기
저기, 거북이가 왜 두 마리죠. 그럼 확인할 수 없단 말입니다. 거북이 카페라 해서 기대했는데 아쉽습니다. 저 둘도 모래사장에서 알을 깨고 바다로 달렸겠죠. 어제 본 다큐입니다. 알을 깬 새끼 거북이가 바로 마주한 세상은 드넓은 바다였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바다거북인지 육지거북인지 어떻게 아는지 빛을 보자마자 파도를 향해 달립니다. 수백 마리 중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만큼만 바다로 배를 띄었습니다. 바다가 헤엄을 치는지 거북이가 치는지 모르겠는 그 상황이 상상됩니까? 바다로 가지 못한 녀석들은 아직 가벼운지 바람에 뒤집히고 갈매기의 공격에 배를 보이며 항복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뒤집힌 녀석들을 다시 뒤집어주는 녀석이었습니다. 바다로 가는 길목에 장애물이라 생각하고 머리로 친 힘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는 끊어져가는 숨통들을 다시 이었습니다. 거북이는 씩씩댔을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강한 악마가 배에 숨어 있길래, 볼 수도 없는 저 배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물에 들어간 순간 배를 숨기며 살아야지 하고 말입니다.
거북이는 자기 배가 너무 어두운 줄 알죠. 언제나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부끄러워 밍기적 밍기적 헤엄치죠. 하지만 거북이는 모르죠. 느리기에 농도가 짙고 그렇기에 그 아래가 밝다는 것을. 물론 나도 알아요. 그의 폐는 등껍질 바로 아래 있어서 뒤집어지면 숨을 쉬기 어렵죠. 목이 짧아서가 아니라 그깟 배를 보기 위한 대가가 죽음이란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그러나 나는 내 배가 궁금합니다. 아 당신은 전혀 당신의 배가 궁금하지 않다고요? 그럼 당신은 대단히 위선적인 사람입니다. 당신은 저기 테라스에 앉은 여자의 배를 보며 카페에 들어왔고, 바 테이블에 걸친 바리스타의 배를 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저들도 당신의 배를 봤을 겁니다. 어떻던가요? 부드럽다거나 따뜻하거나 그랬나요? 아니었죠. 저기 포르쉐 열쇠를 벨트 고리에 건 남자의 배를 보면 당신의 배는 아프고 차가울 겁니다. 괜찮습니다. 장염이나 감기만큼 오래 지속되진 않습니다. 곧장 당신은 저기 쓰레기를 비우는 알바를 볼 테고 그럼 다시 따뜻해질 겁니다. 당신은 구태여 배를 뒤집지 않아도 당신의 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온도, 모양, 무게, 그리고 고통과 쾌락까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 상상해야만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요 당신 말처럼 죽음을 담보로 위험을 감당하지 않고 서로 편하게 배를 보면 불필요한 희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배는 당신이 당신의 배를 아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의 배를 보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방금 당신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지 당신을 보는 내 느낌이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여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테니 비단 당신이 잘못 말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모두가 그렇다면 우리의 배는 누가 봐 줍니까? 그리고 애초에 당신이 상상한 당신의 배가 진실이었던 적은 있습니까?
저기, 당신 말을 중간에 끊어서 미안하지만 잠깐 저 둘 좀 보시겠습니까. 머리가 좀 더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뒤집어 주고 있습니다. 잠시만요, 곧 뒤집힐 거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너무 집중했네요. 거북이가 왜 두 마리냐는 내 질문에 답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저기 주인은 카페 문을 닫고 퇴근하겠죠. 그때 저들 중 하나가 뒤집히면 누가 뒤집어 줍니까. 혼자서는 저 육중한 무게를 뒤집기도 힘들겠지만, 다시 뒤집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북이는 자기 배를 보며 죽음을 느끼는 동시에 환희를 느낄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다음입니다. 이제 머리가 큰 녀석이 뒤집어졌을 때 머리가 작은놈은 그를 뒤집어 줄 것입니다.
너무 화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상상한 당신의 배가 가짜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배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뒤집기가 생각나진 않겠지만 당신은 해냈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각오하거나 그 문턱까지 숨이 차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의 뒤집힌 배를 보고 당신의 부모는 기뻐했을 겁니다. 세상이 칭찬의 노래를 불러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당신에게 수많은 뒤집기를 요구하고 또 요구했습니다. 그럴수록 당신도 뒤집지 않고 당신의 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을 것입니다.
당신은 내 말을 또 오해한 듯합니다. 주변을 탓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당신에게 배를 요구했긴 하지만 결국 세상은 당신의 배를 지켜 봐 줬습니다. 죽음만을 요구했다면 당신이 배를 뒤집게 하되 지켜보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세상의 배가 뒤집힐 때 지켜보란 말입니다.
내가 뭐라도 되냐는 당신의 말에 나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당신 말대로 나는 이 카페에 오기 전에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궁금한 내 배를 보기 위해 목을 비틀고 허리를 치켜세워도 봤습니다. 하지만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당신보다 더 무엇도 가진 것 없는 놈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의 배를 보며 내 배를 상상하고 만들진 않았습니다. 단지 당신의 배를 지켜봤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배가 아프지도 건강하지도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당신의 화가 나는 기쁩니다. 당신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습니까. 커피도 다 마셨으니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다큐에서 본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려 합니다. 두 마리가 아니라 혼자 있는 거북이를 봐야겠습니다. 그 녀석은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배를 보는 방법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배 아래가 그림자인지 빛인지는 모를 것입니다. 그 거북이는 사거리 백화점 지하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있습니다. 어제는 오전에 갔더니 아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거북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족관이 아이들 머리 위에 있어 거북이의 배를 보고 있었습니다. 거북이는 아이들이 다가올수록 수면으로 더 올라갔지만 아이들은 더 크게 웃고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나는 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