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대 전봇대

초청26

by 다날


가로등과 전봇대가 나란히 서 있으니, 그 이유는 단지 키가 같아서, 눈높이가 맞아서 인가.



하루는 창밖에서 번쩍번쩍 싸움이 났는데 번개는 아닌 듯하여, 또 치지직 중얼거리는데 천둥만큼 위엄은 없는 듯하여 새벽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남이 싸우는 걸 우리는 좋아하지 않던가. 평소엔 나랑 상관없는 일엔 눈길조차 사치로 여기면서, 누군가가 티격태격하고 있으면 가던 길도 멈추고 바라보지 않던가. 나만 모르는 이유로 싸우는 게 흥미로운 건지, 나만 그 이유를 모르는 게 억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유난이다.

심지어 이럴 때도 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걸음을 놓기는커녕 그곳이 어느 바다 사이에 서 있는 육지인지도 모르면서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잡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죽음을 걸고 싸우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상대에게 주고 달려가는 자들보다 더 분노하고 걱정한다. 아마도 내 돈이 걸려 있는 문제니까.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일을 기를 쓰고 상관있게 만들고, 내가 내 싸움을 멈추려 하니 이제 그만들 하지 식으로 역정을 낸다. 평소엔 전혀 관심도 없었으면서.



싸움은 무슨 매력을 타고났길래 이토록 이기적인 인간들을 이타적으로 만들까. 나만 아니면 돼, 나와는 상관없어가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해결해 줄 방법은 없을까로 바뀔까. 또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의 경계를 허무는 비결은 무엇인가. 무엇이 나쁜 것이고 좋은 것일까.



하물며, 가로등과 전봇대도 싸우고 있더라.

가로등은 미친 듯이 눈을 깜박거리며 전봇대에게 어둠으로 겁박한다. 전봇대도 보통 놈은 아니다. 치졸한 번개로 맞대응하며 빛으로 위협한다. 그 아래 있는 나는 그들보다 한없이 키가 작아 말릴 수도 없을뿐더러, 내가 있다는 것조차 전달하기 쉽지 않다. 지금 초단위로 낮과 밤이 반복되며 가장 짜증 나는 건 나인데.


전봇대 : 넌 좋겠다.

가로등 : 또 뭐가.

대충 들어보니, 서로 좋겠다 떠드는 듯하다. 부러움은 아니었다. 또 한 두 번 싸운 건 아닌 듯했다.

전봇대 : 나는 이렇게 많은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 하는데, 넌 안 그러니까? 나한테 초 단위로 들어오는 민원 수 좀 생각해 봐. 여기 이 건물부터 저어기 건물까지 또 호수 별로 나한테 계속 달라고 난리잖아.

가로등의 눈이 커졌다.

가로등 : 나는 선택권이 없어, 너와는 다르게. 너는 네가 주기 싫으면 안 줄 수 있잖아. 나는 그냥 계속 강제로 눈을 뜨고 있어야 되는데. 이유가 없어. 그냥 밤만 되면 초 단위로 신호를 보내, 눈을 뜨라고.

전봇대 : 뭐래. 지금도 깜박이면서.

가로등 : 그건 네가 일을 제대로 안 하니까 눈이 떨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나에 비하면 백 배는 좋은 거지. 넌 농땡이도 피울 수 있으니까.

전봇대가 꽤나 열받았는지, 가로등의 눈이 더 자주 깜박인다.

전봇대 : 야. 상식적으로 주는 놈이 편하겠냐 받는 놈이 편하겠냐. 난 다 퍼 주고, 야, 심지어 그것도 안 주면 안 준다 난리, 주면 준다 난리거든? 근데 가만히 서서 받기만 하는 주제에 말이 많냐. 눈이나 똑바로 뜨고나 말해.


계속 이런 식이더라. 달라지는 건 내 눈만 더 피곤해졌다는 사실뿐이다. 키 좀 크고, 눈높이 좀 높다고 밑에는 신경 안 써도 되나. 안 보이면 없다 생각하면 되나. 아니면 말리고 싶은 놈이 사다리라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게 맞나.


아니지, 밑동을 잘라서 쟤네가 내려오게끔 하면 되지!



그러나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나에겐 치명적이다. 분명 나는 저들의 싸움에 상관이 있는 사람인데, 싸움에 관여하면 모든 손해는 내게 온다. 아래를 잘라 저들의 키를 낮추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왜 상관도 없는 싸움에 끼어들어서 우리한테 피해를 주냐, 배상해라 하겠지. 문제는 하겠지에서 끝나지 않고 나는 해야 할 테로 끝난다는 것이다. 저들에겐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녀석은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게 상식일 테니까.

그리고, 둘은 한 편이 되어 나를 공격하겠지. 나는 전보다 그들의 키를 더 높여 줘야만 하겠지.



이게 싸움이 재밌는 이유인가 보다. 전혀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거. 서로의 상식이 다른 데도 불과하고.



그래도 아래에서 바라볼 때의 특권은 있다.

키 큰 둘도 각자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건 누구보다 잘 보인다. 둘은 처음부터 싸운 건 아니란 뜻이겠지. 서로 바라보다 보니 마음 한편에 얼룩이 생긴 거겠지. 그래, 전봇대도 가로등도 각자 힘든 건 안고 살아가겠지, 믿어야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특권이겠지. 나는 다양한 뿌리를 거닐며 바라볼 수 있으니.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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