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소설(최진영 외 8인)’을 읽고
감히 사랑을 정의하려고 덤벼들었던 시절부터 그 다채로운 모습에 침묵하며 방황하던 시절까지.
내 손에 쥔 듯했지만 쏟아지는 눈물에 모래알처럼 내 손을 빠져나간 이야기들.
사랑이라는 감정의 원형부터 파편화된 각자의 사랑, 사실은 조금 떨어진 시점에 바라본 사랑의 뒷모습에 대한 이야기.
나지막이 소곤거리는 낙엽 소리. 덜 여문 샐비어에 안겨 불어오는 첫사랑의 향기. 아이들 떠난 놀이터에 흔들리는 그네 따라 일렁이던 마음. 졸업 앨범 안에서만 숨쉴 수 있는, 엄습해 온 현실의 그늘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랑의 원형. 각진 사진 안의 나는 누군가의 미소였을까. 보랏빛 향기로 미소 짓는 너는 어떤 사진이었을까.
잠시 문제집을 덮어두고, 책상 위에 그려나간 우리의 별들로 밤늦게까지 교실 창가는 환하였다. 그 아래 드리워진 운동장은 막연했던 스무 살처럼 어둡기만 하였다. 친구들을 교실에 남겨두고 운동장 그 한가운데 서있었다. 어두운 운동장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존재가 너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철문 밖 골목으로 첫사랑은 걸어가버렸다.
어둠은 언제나 내 몫이 되었다.
- 첫사랑, 최진영
어느덧 좁은 방을 채우는 하루의 들숨과 날숨. 습기 가득한 공간 안에 어느새 비집어 들어온 상대의 무게, 그로 인해 더욱 무겁게 짓눌려가는 사랑. 이를 견뎌내기에 비좁았던 너와 나의 침대. 그리고 그 당시엔 모두를 담아낼 수 없었던 좁은 방, 우리의 무대.
때론 청승맞고 한없이 서투를지 모르나 밤하늘의 별처럼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 모두가 거쳐온 무대. 전공 서적을 곁에 두고 무대에서 올려다본 객석에는 푸른빛이 감돌았고,
푸른빛을 보려면 푸른빛을 볼 수 있는 눈부터 지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햄릿 어떠세요?, 박상영
내 몸의 콤플렉스 따위는 괜찮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어느샌가 번져가는 너를 향한 무의식의 콤플렉스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겠지. 서투르게 꿈꾸기 시작한 공상적인 사랑과 관념적인 사랑에서 부풀려진 영화 같은 사랑으로 번져가는 너를 향한 무의식.
이별할 즈음 다시 흔하디 흔한 주변의 사랑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헤어지는 여느 연인처럼 현실적인 이별과
이별하면 그저 그뿐인 결말.
- “괜찮아, 니 털쯤은”, 최민석
고단한 몸을 유혹하는 나의 방과 침대를 잠시 제쳐 두고, 누군가를 바래다준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골목 위에서만 존재하는 나만의 기쁨이라, 집 가는 길을 뒤로하고 너의 집을 향했던 발걸음과 돌아오는 걸음 하나하나도 나의 기쁨의 일부였을까. 그때 너에게도 기쁨이 자리 잡았을까. 혹은 기쁨 외에 무엇이었을까. 혹여 누군가 나를 바래다준다면 그것이 지니는 의미의 크기는 어떠할까. 고단하고도 기쁜 그 역설적인 걸음 하나하나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내일 봬요.”
라는 하루를 마감하는 말이 오가기 전까지, 더 걸어가 본다. 계속해서 정지 신호를 보내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아슬아슬 빛나는 가로등을 조금 더 지날 수 있을 때까지. 그러다 나의 그림자가 너의 그림자에 조금 더 닿을 때쯤 다시 우리 사이는 멀어진다. “좋은 밤 보내세요. 내일 봬요.” 언제나처럼 하루를 마감하는 인사를 나눈다.
-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이지민
33 또는 44부터 55, 77까지의 결혼. 그것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단상. 단상들이 모여 군상을 이루고 군상이 모여 우리의 무의식을 이룬다.
그 무의식의 흐름 저 멀리 차오르는 결혼에 대한 나의 단상은 어디에 적을 수 있을까. 봄과 함께 피고 흩날리다가
웨딩드레스가 폭포수처럼 눈앞에 흐드러지는 순간,
무엇이라도 끄적여 볼 수 있길.
- 웨딩드레스44, 정세랑
끝없이 이어지는 칠흑의 터널 같은 삶에서 저 멀리 선명해지는 불빛과도 같았던 것.
스치기만 해도 잔상이 되고 한이 되고 꿈으로 남아 있었던 것.
‘애(愛)’. 부, 명예, 젊음 등 그 외의 것들은 침묵 속에서 어둠의 도로를 함께 달릴 뿐이다. 시선을 달리 둘 여지도 없는 지배적인 것.
언젠가 터널을 지나서 하얀 폭설에 눈이 멀 때까지, 그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길. 또한 칠흑 속을 달리며 죄 없는 짐승을 치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 폭설, 백수린
늘 무언가에 취해있어도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그 사람의 이름.
나라는 개인에 너무 깊이 천착할 때 드는 그 사람의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감.
죽음과 알코올 앞에서도 늘 뒤따르는 그 사람이라는 존재.
봄이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밤처럼, 피할 수 없는 생의 끝자락.
너와 나 이외엔 없는 먹먹하지만 황홀한 공간.
황혼을 넘어 밤의 끝으로 나아가는 휠체어를 잡아주던 너의 두 손.
봄을 수놓는 까만 밤에도 이 모든 것들이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그런 행복한 것일까.
- 봄밤, 권여선
동경의 모습으로 잉태된 사랑. 우리가 앓고 있는 사랑의 형태는 정의 내릴 수 없이 다채롭다.
때늦은 비도 가물어가는 흙길을 적셔줄 테니,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부정하고 의심할 수 없는 사랑. 언제 어디서 잉태하여도 늘 순수하여 부끄럽지 않길.
- 앓던 모든 것, 홍희정
혼이 되어서까지 너의 곁에 머문다면 죽어서도 쓸쓸함을 느끼는 가혹한 상황일 것이다. ‘같이 있어 외롭다’는 아이러니까지 덤으로 떠안으면서.
그래서 늘 작별의 순간에는 ‘대니 드비토’와 같은 아쉬움이 항상 남도록 사랑해야 한다. 되뇌려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릴 수 없어 골골 앓던 그 말을 떠올리려 애쓰던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는 그 순수함으로,
평생을 함께해도 완성할 수 없는, 손쉽게 채울 수 없어 늘 갈망하는 사랑을 할 것.
- 대니 드비토, 황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