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에 숨겨둔 비밀
참을 수 없는 단 맛
무더위가 한풀 꺾여 선선해진 어느 날, 주간 근무를 서고 있는 내게, 어 일병이 미소를 머금고 찾아왔다.
좋은 일 있냐고 물었지만, 선임이었던 어 일병은 싱글벙글할 뿐 시원하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먹고 싶은 거 없니?"
과자, 치킨, 생각나는 대로 먹고 싶었던 것들을 이야기했고, 왜 묻는지, 기분 좋은 일 있었는지, 재차 어 일병에게 물었다.
"아니, 그냥 그런 일이 있어"
어 일병은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지만, 뭔가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어 일병이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너, 맛동산 좋아하니?"
너무 좋아하고, 없어서 못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졸병 신세이고 보니 PX에 마음 놓고 갈 수 없는 처지여서, 과자 구경이 쉽지 않았다. 입대하기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게 과자였는데, 정신을 뺏길 정도로 좋아하게 된 것이 새삼 놀라웠다. 지금 생각하면, 훈련이 힘들었고, 이등병이다 보니 이것저것 몸 쓰는 일이 많은 데다,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단 맛이 강렬하게 당겼던 것 같다.
"밤 근무 때 먹으려고, 내가 몰래 PX에서 사 왔거든"
조금만 달라고 했지만, 어 일병은 안된다고 손바닥을 보였다. 이미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겼기 때문에 꺼낼 수 없다고 했다. 궁금한 마음에 어디 숨기셨냐고 슬쩍 물었고, 어 일병은 팔을 들어 휘저으며, 두리뭉실하게 야간 근무지 주변을 가리켰다.
어 일병은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부러운 게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부러웠다.
자다 중간에 깨는 것은 도대체 적응이 안 되었다. 남은 잠을 밀어내고, 탄약고 야간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문득 낮에 어 일병 말이 떠올랐다. 야간 근무시간이 나보다 2 순번 뒤라서, 어 일병은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마침, 달빛도 밝아서, 탄약고 주변을 뒤져볼 만했고, 무엇보다도 과자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찾았고, 숨길만한 곳은 다 뒤졌던 것 같은데, 당최 찾을 수가 없었다. 한계를 느낄 때쯤, 오기가 발동한 나는,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어 일병이라면, 설마...
탄약고 앞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여기에 숨긴다고? 이미 나는 짐승처럼 네발로 풀숲을 헤치고 있었다. 사냥꾼이 봤다면 멧돼지인 줄 오인할 상황이었다.
'바스락'
손에 풀이 아닌 이질적인 물체가 닿았고, 특유의 과자 비닐봉지 소리가 들렸다. 풀을 헤치고, 바스락 거리는 물체를 들어 올렸다. 달빛이 알려주는 선명한 포장 이미지... 맛동산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이제 근무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러야 한다. 소리 나지 않게 포장을 뜯고, 과자 하나를 입안에 넣자.
아... 달콤한 이 맛!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손으로 한 움큼 과자를 잡아 입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굶기라도 한 것처럼 집중해서 먹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과자가 바닥을 드러냈다.
봉지에 부스러기까지 입안에 털어 넣고 나니, 제정신이란 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지...
어둠 저편에서 다음 근무자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일단, 빈과자 봉지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근무교대를 한 후, 종종걸음으로 내무반에 돌아온 나는, 생각을 애써 비우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내 주간 근무지에 양 미간이 좁아져 근심 가득한 얼굴로 어 일병이 오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똥 밟은듯한 표정이 그랬을 것 같다.
생각은 딴 데 있었지만, 우리는 흔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혹시, 어제..."
어 일병이 어제 일을 꺼내기 시작했고, 나는 심장 박동 수가 상승했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맛동산 있잖아..."
"네"
어 일병은 이야기를 꺼내다 말고,
"아, 아니다. 수고해" 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탄약고 주간 근무를 서던 어 일병이 나를 불렀다.
"혹시... 내가 숨겨둔 맛동산 못 봤니?"
어 일병이 조심스럽게 나를 떠보며 내 눈 빛을 응시했다. 숨겨두신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어디에 숨기셨냐고, 오히려 나는 반문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분명히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잘 숨겼는데..."
어 일병은 미간이 좁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기우뚱거렸고,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제라도 고백해야 하나 갈등했지만, 어 일병 표정이 아주 심각했기에, 모른다고 잡아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가끔 어 일병은 미간이 좁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 이유를 나만 알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소각장에서 동기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주머니에 뭔가 있어서 꺼내보게 되었다. 꼬깃꼬깃 접어둔 것을 펼쳐보니, 맛동산 봉지였다.
"야! 나 몰래 맛동산 먹었어?"
순간, 여러 가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전에 먹었던 거야라고 말하며, 서둘러 봉지를 불 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서는데, 어 일병이 서 있었다.
미간이 좁지도,
고개를 기우뚱거리지도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