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미스터리

by 진혁

꿈자리가 사나웠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지, 꿈속에서도 시달리다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창밖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아내는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미끄러지듯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하루에도 몇 번을 사용하는 스위치인데, 어둠이 익숙함을 사라지게 한 걸까? 갈 곳 잃는 손이 허공과 벽을 더듬거리다가 겨우 전등 스위치를 찾아냈다. 밝은 빛이 욕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잠자는 아내에게 방해될까 싶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는데, 실눈으로 바라본 욕실 좌변기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짙은 갈색 물체가 있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좌변기 위에 회괴한 것이 있었기 때문인데,

너무 충격적이고

더러워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누가 똥을...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욕실을 나오며 순간, 도둑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액운을 막기 위해 현장에 똥을 싸고 가는 도둑들의 미신이 기억났던 것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서둘러 아이들 방부터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테이블 아래, 보일러실, 팬트리, 현관문,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온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아니면, 뭉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그랬다고 하기엔 좌변기 위치가 높았고, 올라갔다 하더라도 미끄러워서 물에 빠졌을 것이다. 더구나, 형태가 길고 굵어서 작은 강아지 몸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웠다.

결국, 가족 중에 누군가 이 회괴한 짓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첫 번째 용의자는 아내였다.

우리 방 욕실이었고, 나는 아니니까 당연히 유력한 사람은 아내였다.

혹시 몽유병 같은 게 있었나? 의심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고 있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아내는 잠잘 때 누가 건드리는걸 아주 싫어한다. 신혼시절 이런 문제로 여러 번 싸운 적도 있었는데, 그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라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아주 짜증이 났다.

한참을 투덜거리던 아내가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왜 그러냐고 물었고.


"욕실에 가봐."

"왜?"


아내 손을 이끌고 욕실로 향한 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저게 뭐야?,

꺄아악!

미쳤어? 똥을 저기에 싸면 어떡해? 조준도 못해!"


범인의 반응이 아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범인일리 없었다. 아내를 용의자 선상에서 뺐다.

나는 사건 경위를 주저리 이야기했고, 아내도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아니면 누굴까?

중학생 딸아이가 안방 욕실을 가끔 사용했었기 때문에 아내 다음으로 유력한 용의자는 딸이었다. 세상모르고 곤하게 자고 있는 딸아이를 지금 깨울 수는 없었다. 예민한 시기이고, 공부 스트레스도 많을 텐데, 아침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건만, 이런저런 걱정들로 잠이 오지 않았다.


[딸아이가 그런 게 맞다면, 어쩌지?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하나?]


앞으로 마주하게 될 진실이 두려웠던 것 같다.

어김없이 태양이 떴다. 딸아이 일어날 시간이라서 방에 가서 아이를 깨웠고,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혼내려는 게 아니며, 아빠와 엄마는 널 사랑하고 있어서, 고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말해달라는 취지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으나, 잠이 덜 깨서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사건 현장을 보여주기로 했다.


"욕실에 저거 뭐야?, 네가 쌌어?"


손으로 눈을 비비던 딸아이는 갑자기 배시시 웃기 시작하더니,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쓰러졌다.

뭐지? 이 반응은...

딸아이는 바닥을 구르며 정신없이 깔깔거렸고, 아내와 나는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아이가 스르르 일어서더니, 욕실로 들어가 변기 위에 있던 똥을 손으로 잡고, 내 얼굴에 디밀었다. 순간 놀라서 뒷걸음질하는 내게,


"냄새 안 나지? 가짜야! 내가 만들었어."


아내와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욕실에서 전혀 구린 내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천재적인 손재주에 감탄했다고 해야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 돌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많은 걱정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건데, 우리 부부는 허탈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딸아이와 함께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화목한 분위기가 연출돼서 좋았지만,

나는 가끔,

딸아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악몽을 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