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연출 김원석 / 극본 박해영
드라마가 끝나고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아저씨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어두운 밤거리 어딘가에서 트렌치코트에 가방을 길게 늘어뜨린, 동훈의 쓸쓸한 뒷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고, 정희네 주점에 가면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상훈과 기훈을 만날 것만 같다. 대중매체에서 아이유를 보기라도 하면, 이지안과 오버랩되는 착각 때문에 그녀가 유명한 아티스트라는 게 새삼스럽다.
나의 아저씨는 유독 거친 인생을 살아가는 스물한 살 이지안과 어른다움을 잃지 않은 아저씨 박동훈을 중심으로,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나는 작품 속에 나오는 커피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지안에게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여섯 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유일한 가족이며, 자신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 애틋함이 각별하다. 의료비가 밀린 요양원에서 할머니를 몰래 빼내는 에피소드는 소소한 재미를 담고 있었지만, 지안이 감당하게 될 삶의 무게가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자신이 돌봐야 할 처지이고 보니, 더 독하게 세상을 버텨보려 마음먹지만, 사채업자 광일과의 질긴 악연으로 인해 절망적인 날들이 더해만 가고, 지안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쩌면 깜깜한 어둠 속일 텐데,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파견직 사환 일을 마치고 퇴근한 지안은 식당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퇴식구에 들어온 식기를 정리하다 보면, 손님이 남긴 잔반이 보이는데, 간혹 깨끗한 음식은 비닐봉지에 몰래 담아 둔다.
식당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할머니의 늦은 저녁식사를 챙기고 나면, 익숙한 모습으로 전기포트에 물을 담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물이 뜨거워지길 기다리지만, 그 짧은 시간마저도 지안에게는 지친 일상의 연속처럼 보인다.
지안은 꽃무늬 컵에 노란 믹스커피 두 봉지를 털어 넣고, 뜨거워진 물을 부어 짤막한 스푼으로 달그락 소리를 내며 젓고 있다. 스탠드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서 고단했던 하루를 꺼내 보이지만, 호호 입김을 불어 마시는 커피 한 모금에 지안은 비로소 편안함에 이른 듯 보인다.
하루 일상이 위태롭기만 한 지안에게, 커피는 절망 같은 삶 속에서 위안이며, 배고픔과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는 휴식 같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현실이 지옥이야 라는 동훈의 말처럼,
나의 모습이,
우리들의 삶이,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자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