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카르고
옷소매가 스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도로 옆으로 즐비한 기념품 가게들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끌며,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언덕 위에 샤크레 퀘르 성당이 보인다. 이곳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던, 몽마르트르 언덕이다. 프랑스 투어를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하나다 보니, 영혼이 기대감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녹색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 리프팅하는 사람과 버스킹 하는 가수, 그들을 둘러싼 환호와 박수 소리, 시선을 잡는 거리의 화가들, 그들과 어우러진 여행자들. 사람들은 다른 언어, 다른 인종이었지만, 즐거운 표정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시내는 평온했다. 나무나 풀처럼 자연의 모습을 닮아 있는 도시. 멀리 지평선까지 막힘없이 탁 트여 있어서, 넓은 호수를 보는 듯했다.
파리 시내처럼, 높은 빌딩이 없는 도시계획은 장기적으로 사람들에게 유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었을 것이다. 개발이란 게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모두를 위한 친환경적 결정이 지금의 모습인 것 같았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에 가로등이 아이돌 군무처럼 일사불란하게 켜졌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파리 시내에서 좀 떨어진 식당 앞에 정차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맞닥뜨린 찬 공기에 기침이 나왔는데, 여행지에서 감기를 앓는 것은 촌스런 일이라, 패딩 지퍼를 목까지 올려본다. 빡빡한 여행 일정 탓으로 몸이 좀 무거웠지만,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깃털처럼 바람을 타고 있었다.
"역시, 여행은 맛집 탐방이지 후훗"
여행자들은 가이드를 따라 식당 안으로 나란히 들어갔다. 유럽의 건물들이 대부분 그렇듯, 여기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천정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조차도 올드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빈티지한 멋이 나름 괜찮았고, 너튜브에서 보던 고급 레스토랑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국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흰색 테이블보 위에 포크 2개와 나이프, 집게가 세팅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집게라서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사로잡는 웨이터가 있었다.
나이 많아 보이고, 안쓰러울 정도로 몸이 깡말라 있는 백발의 남자는 재킷 없는 정장 차림에 주방과 홀을 오가며 정신없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엉덩이로 주방문을 밀고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양팔 가득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슬아슬 아크로바트 묘기를 보는 듯, 아주 흥미로웠다.
직원이 저 정도 실력이면, 전통 있는 식당이 분명할 테니 요리 맛은 안 먹어봐도 알 것 같았다.
테이블에 올라오기 시작한 음식은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였다.
그래, 프랑스에 왔으면 에스카르고 정도는 먹어야지!
말로만 듣던 요리를 먹게 되다니, 정말 기대 가득, 군침도 가득이었다.
생각보다 양이 좀 적었지만, 배고픔보다는 맛에 대한 궁금증으로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둘러 집게와 포크를 들었다.
달팽이 껍데기를 집게로 잡고, 끝이 뾰족한 포크로 살을 쏙 빼내서 먹으면 되는 건데, 어렵지는 않았다.
"어라?"
허브 소스에 버무려진 살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잡내가 없었지만, 연체 생물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전부였다. 몇 개를 더 먹어봐도 그 이상의 감칠맛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에스카르고가 원래 이런 맛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건 좀 아쉬웠다. 골뱅이에 고소한 허브 소스를 버무려 먹는 게 더 맛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프랑스의 유명 요리를 먹어봤다는 '라테'가 생긴 것 같아서, 손해보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위안이 되어 주지는 못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식욕이라는 녀석이 나대기 시작한다. 뭘 먹어도 만족이란 게 없는 얘를 어쩌지...
"기다려 곧 도착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난민이 따로 없었다. 외모 관리하면서, 힙하게 여행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이런 거 아니겠어?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말끔하게 샤워를 마친 나는,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 속에서 캐리어를 찾아냈다.
출국 전 날, 분리 포장해 온 소중한 것이 여행 캐리어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컵. 라. 면.
에스카르고는 잊은 지 오래다.
"역시 라면이 최고지, 매콤한 이 맛! 호 옹"
배부르고,
따뜻하고,
뿌듯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