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라인에 서 있던 유미의 시선이 아미에게 향했다. 둘 사이에 시그널이 오갔고, 아미 의도를 눈치챈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에 유미가 공을 뒤로 흘려보냈고, 기다리고 있던 아미가 상대편 골대를 향해 강하게 공을 찼다. 아미의 발끝을 떠난 축구공이 상대편 골대 모서리를 향해 먼 거리를 날아갔으나, 골키퍼의 선방에 가로막혀 골대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아쉬움과 잘했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파란펭귄이 얻게 된 첫 번째 코너킥.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아미와 유미가 입을 가리며 속삭였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이 두 사람을 서포터 하기 위해 상대방 진영으로 넘어왔다. 공을 앞에 둔 유미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레퍼리의 휘슬 소리에 유미가 옆에 있던 아미에게 가볍게 패스를 했고, 공을 소유한 아미가 골대로 향하는가 싶었는데, 뒤에 있는 유미에게 힐패스를 시도했다. 순간, 아미를 쫒던 상대 선수들이 주춤했고, 유미는 수비가 빠진 빈 공간을 향해 빠르게 토킥을 날렸다.
공이 지면을 스치며 골대 구석을 향해 들어가는 듯 보였는데, 골키퍼의 발이 순간 반응하며 공을 막아냈다.
"뭐지? 저 골키퍼."
유미는 믿기지 않았는지, 커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동료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FC파란펭퀸의 데뷔 첫 상대팀은 축구 전통 강호 FC앵그리걸이었다. 앵그리걸은 다수의 시즌 우승 기록과 두 번의 슈퍼리그 우승을 기록한 바 있는 여자축구 강팀이었다.
앵그리걸은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고삐 풀려 사방으로 날뛰고 있는 망아지가 지치길 기다리 듯, 신생 팀 플레이를 조용히 지켜보았고, 그 후로도 파란펭귄의 날카로운 공격이 몇 차례 있었지만, 탄탄한 수비력과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여유롭게 대처했는데, 그 중심에는 골키퍼 미자가 있었다.
보통 골키퍼라고 하면 키 크고, 팔다리가 긴 체형을 꼽을 수가 있는데, 미자는 키가 작고, 경기 경험까지 적은 골키퍼였다. 그나마 팔이 긴 편이긴 했지만, 다른 골키퍼들에 비해 피지컬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기에,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승부사적 기질이 있었다. 이를 알아본 앵그리걸 감독의 권유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타고난 순발력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끈질기게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갔고 결국, 여자축구 세미프로 리그 TOP3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그녀는 골키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고 있었다.
"미자선수가 빠르게 공을 던졌습니다. 전방에 있던 사라선수가 공을 받았습니다. 속공! 앵그리걸의 속공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미의 슛이 불발되어 모두가 아쉬워하는 사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앵그리걸 기습에 파란 펭귄 수비수 경서와 소라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허겁지겁 달려온 소라가 사라선수의 앞을 막는가 싶었는데, 사라는 지그재그 헛다리를 짚으며 손쉽게 소라를 따돌렸고, 골대를 향해 강력한 오른발 슛을 날렸다.
데뷔전 첫 상대 선수의 슈팅을 맞닥뜨리게 된 민지는 눈이 빠져나올 것처럼 커졌고,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으나, 야속한 공은 민지의 손끝을 스치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운동장을 흔들어 놓았고, 대형 LED멀티비전에서도 '골'이라는 글자가 어깨춤을 추었다. 골 장면이 다시 보기 되는 동안, 사라선수는 열광하는 팬들을 향해 손하트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달려오는 앵그리걸 선수들과 부둥켜안았다.
1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