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시맘 Nov 14. 2024

(고약한) 바비인형들

반짝반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독일어 어학코스를 우여곡절로 끝내고 치른 학교 입학시험. 한국에서 배웠던 수학, 영어 그리고 물리로 인해 독어가 안 되었지만 15년 눈칫밥으로 무사히 입학시험에 합격하였다.


좋아하고 기뻐할 틈도 없이 기숙사 학교에서 삶의 5년 간이 시작되었다. 기숙사 방 배정이 되고 그 방에서 앞으로 1년간 모르는 두 여자아이와 24시간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나에게는 모든 게 처음이고 신기한 일들뿐. 신기해서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내가 외계인 같았고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곳저곳을 혼자 둘러보고 다시 돌아온 기숙사. 여자 기숙사는 긴 통로 사이를 두고 방들이 오른쪽 그리고 왼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내 방은 긴 통로에서 정 중앙에 있었기에 화장실이나 밖으로 나가려면 그 긴 통로를 꼭 지나가야만 했다. 그 긴 통로 중앙에 양옆으로 놓아진 소파. 그 소파에는 항상 앉아 있는 무리가 있었다.

자고로 잘 나가는 이쁜 언니들. 내 말로 표현하면 학교에서 날라리? 짱 먹은 언니들?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내가 봐도 너무 이쁜 아이들.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바비인형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금발에 푸른 눈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멋진 언니들. 한마디로 아무나 앉아서 놀 수 있는 소파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3년 내내 참으로 불편했던 소파. 그 이유는 기숙사 생활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고약한 바비들

저녁을 먹고 취침 시간까지 자유시간이 있었다.

그 자유시간에 난 내 방에서 나와서 화장실을 가려고 했었다.

당연히 통로에 있는 소파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 언니들이 소파에 앉아서 수다를 열심히 떨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조용히 존재감 없이 그 소파 사이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내 앞을 한 여자아이가 다리로 막는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또 다른 여자아이의 다리가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뒤편을 막아버린다. 난 두 다리 사이에 끼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


내가 황당해하는 모습이 웃겼는지 나를 보고 하는 말

“여기 지나가고 싶지? 그러면 내 다리 밑으로 기어서 가“.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내가 잘못 이해를 했겠지 생각했다.

대답이 바로 없자 그 여자아이가 또 한마디 한다.


“내 말 못 알아들었어? 기어서 지나가라고 “ 

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싹수없는 여자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야! 밑으로 기라고! “ 


하면서 나에게 시비를 거는 아이. 난 대꾸도 안 하고 노려만 보았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대치 상황이 되니 옆에 있었던 아이들도 대화를 멈추고 나와 나를 못 가게 다리로 가두어 둔 여자아이들을 쳐다본다.

그 싹수없는 아이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날 쳐다보고 거기에 같이 있었던 다른 이들도 이 상황이 재미기만 하다. 그렇게 또다시 5분이 흘렀을까.


계속 나보고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라고 명령하는 한 아이. 


보다 못해 옆에 있었던 학년이 높은 여자아이가

“다 재미있었으니 인제 그만하자 “라고 한다. 그제야 내 앞과 뒤에 놓여둔 다리 장애물이 사라진다. 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고 소파에 남겨진 아이들은 다른 대화를 하면서 웃고 떠든다.


내 존재, 방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관심도 없다.


그날, 그 일은 나에게 마음의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로 아직도 어딘가에 남겨져 있다.


한없이 바보 같았던 내가 너무나 싫었고,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지금까지도 한심하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큰 마음의 상처와 함께 독일에서의 학교생활은 불안하게 시작되었다.
이전 03화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