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독일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독일어 수업을 하고 난 뒤 난 학교 밖을 나가서 산책하거나 슈퍼를 다녀왔다.
그때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기분 나쁜 시선.
외국인을 상대로 독일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마을에 있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알아도 그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볼 수가 없던 외계인. 외국인도 자주 볼 수 없는 환경인데 작고 어린 동양인 학생이 작고도 작은 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기 때문이다. 동네를 돌아다니면 꼭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꼭 신기한 동물을 쳐다보는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학연수원이 있었던 작은 마을의 시선들은 견딜 만했다. 다들 아시아인을 처음 보고 신기하게 여겼을 뿐.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악의가 없는 눈빛이었기에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가면 거기에서 받는 시선은 참을 수가 없었다. 미성년자이고 독어를 못 했기 때문에 혼자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갈 수가 없었고 학교에서 오후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함께 선생님과 이동이 가능했다. 무리를 짓고 동네를 돌아다닐 때도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 홀로 동양인이었기에 난 언제나 눈에 확 띄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이동하니 당연히 시끌벅적이고 동네 어른들이 한 번은 고개를 돌아서 우리를 쳐다보고는 했다.
내가 다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이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나를 보면서 손가락질하면서 수군거리고 이상하다는 듯이 대놓고 비웃는 몰상식한 행동들.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내 독일어가 아무리 초급밖에는 안 된다고 해도 대충 내 흉을 보거나 욕을 하면 기가 막히게 눈치로 알아들었다. 동양인을 처음 봤기 때문에 신기해서 날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길을 걸으면서 또 나를 돌아다보는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가 있었다.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은 날 앞에다 두고 킥킥 웃으면서 욕을 하는 것이었다. 손으로 눈을 찢어 보이면서 동양인이라고 모욕을 주고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고, 선진국 독일에서 빌붙어서 살지 말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하는 사람들까지.
별 희한한 독일 어른들은 길에서 참 많이 만났다. 어른들이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는데 아이들은 그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당연지사.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매너도 예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부모, 가족, 친구 그리고 내 삶의 터전을 놔두고 돈 쓰면서 하는 인생 공부 수업비는 너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