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1995년 1월 초에 부모님과 함께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때는 김포공항으로 출입국을 하던 시절. 비행기가 텅 비어있어서 누워서 다닐 수 있었던 그 옛날. 비행기 안에서 흡연할 수 있었던 시절이니 얼마나 옛날이야기인가. 어린 나이에 항상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 결정이 나고 너무나 행복했던 거 같다. 신나는 마음으로 짐을 싸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까?
누구를 만나며 어떤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꼭 성공해서 돌아올 거야 하고 다짐을 했던 어린 나. 독일이 어떤 나라인지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생각 없이 유학길을 올랐다. 기대와 설레는 마음과 함께. 독어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서 속성으로 독일어 과외를 했다. 다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던 한국에서의 독일어 과외. “안녕“이라는 독일어 하나도 못하고 떠난 나의 유학길.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그 무식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바보 같은 결정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 뭔지 몰랐다.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혹독히 치른 인생 공부. 얻은 것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잃은 게 더 많았던 유학 생활.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무식한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런 용기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여기에 없을 테니까.
그 무지함과 함께 오른 독일행. 언제 집에 돌아올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해맑게 좋아했던 내가 참 철없이 느껴진다. 어려서 그랬는지 비행기 안에서 잠도 자고 불안한 마음 없이 독일에 도착했다. 저녁 늦게 도착했지만 겨울이라 어두컴컴한 밖. 모든 게 어둡고 우울했던 것 같다.
한국의 추위와는 또 다른 으스스한 추위. 어두운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발밑에서 나를 감싸면서 올라오는 것같이 소름 돋는 추위. 옷을 입어도 히터 온도를 높이 올려도 으슬으슬한 기분은 사라지질 않았다.
차를 타고 어두운 도로를 몇 시간 달린 거 같다. 어디지 모르는 어두운 조용한 동네의 한 모텔에 도착. 작은 동네라 호텔이 없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온몸이 두들겨 많은 거 같은 피로감에 어서 누워서 자고 싶었지만 내가 엄마랑 묶은 방에는 히터를 틀어도 방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독일 사람들은 히터도 그 추운 겨울에 틀어주는 시간을 정해서 그때만 히터가 틀어진다고 한다. 히터 하나도 돈을 지불하고 내 마음대로 사용을 못 한다니. 생각해 보면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참 독일답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정이 있었기에 어서 잠을 자야 했었다. 너무 피곤하고 자고 싶으면 잠이 더 안 오듯이 갑자기 잠이 깨서 그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피곤함과 추위가 함께 나를 괴롭혀서인지 잠을 잘 엄두가 나질 않았다. 추위에 약하신 엄마도 잠을 못 이루시는 거 같았다.
“엄마? “
“응. “
“안 주무세요? “
“응. 잠이 안 오네. 피곤한데 어서 자라. “
“엄마…“
엄마를 부르고 한참 말을 잊지 못했다.
“엄마, 여기 너무 추워요. 집에 갈래요. “
내 말을 듣고 엄마가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어두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 침묵이 무슨 의미인지 30년인 지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도 나를 데리고 다시 한국에 가고 싶으셨을 거다.
그때는 몰랐다.
내 인생에 아주 싸늘한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