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내 거주지는 어학연수원 기숙사. 독일어로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도 못 한 나의 독일어 실력. 독일어를 하나도 못 했기에 바로 학교 입학이 불가능했다. 독일에서 도착하자마자 묶었던 그 작은 시골 마을에 기숙사형 독일어 학교. 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6개월간 내가 독일어 공부를 하고 혼자 생활해야 하는 곳이었다.
첫날, 부모님과 동네 한 바퀴를 구경했다. 집과 들판. 그게 다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상점이라고는 달랑 슈퍼 하나. 사람도 차도 거의 볼 수 없고 높은 건물들은 당연히 없다. 정말 독일 사람도 이 마을은 지도를 봐야지 위치를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다음 마을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가야 다음 마을이 있었다. 큰 마을이라고 해봐도 상점이 몇 개 더 있고 중국음식점이 있다는 것 말고는 시골이었다.
내가 이런 데서 뭘 더 공부하고 뭘 더 배울 수 있을지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진국이라면서 우리나라 시골보다 환경에 더 열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공부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라고 부모님은 생각하신 거 같다.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밖에 돌아다니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방해 요소가 하나도 없는 환경에서 공부가 몇 배로 집중되지 않을까 하면서 좋아하신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다가 온 나에게 충격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내가 6개월 동안 거주할 시골 마을은 그림책에서 보는 푸른 들판에 주택 집들과 이 마을 중간에 있는 작은 성이 내가 다닐 독일어 학교였다.
사람들은 영화에서나 보았던 금발에 파란 눈을 한 거인들 같았고 나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난쟁이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다고는 하나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독일은 내 상상과 너무나 달랐기에 겁이 났다. 과연,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마주친 한 마을 분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궁금증을 못 참고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당신들 어디서 왔어요. 내가 맞춰 볼게요 “.
중국,
일본,
타이완,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 기타 등등.
나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 결국 북한까지 나온다. 북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황당하고 이 상황이 어이없고 너무나 슬펐다.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인지도가 없다니.
난 너무 화가 나서 씩씩대면서 „대한민국이요 “라고 대답을 했다. 내가 너무 크게 대한민국이요라고 해서 그런지 아시아 국가를 하나하나 서술하던 마을 사람은 나를 이상하게 보면서 „그런 나라가 있었어요. 대한민국이 어디 위치했어요 “. 또다시 질문을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은 독일 마을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지의 나라다. 처음 만나서 대화한 마을 사람 말고도 수많은 독일 사람을 만났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참 드물었다. 만약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한국이 독일에서 인지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누가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설명을 하기란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독어로.
한국의 인지도와 평판이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던 90년대.
앞으로 한국에서 온 난,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나기란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