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독일어 어학코스를 우여곡절로 끝내고 치른 학교 입학시험. 한국에서 배웠던 수학, 영어 그리고 물리로 인해 독어가 안 되었지만 15년 눈칫밥으로 무사히 입학시험에 합격하였다.
좋아하고 기뻐할 틈도 없이 기숙사 학교에서 삶의 5년 간이 시작되었다. 기숙사 방 배정이 되고 그 방에서 앞으로 1년간 모르는 두 여자아이와 24시간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나에게는 모든 게 처음이고 신기한 일들뿐. 신기해서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내가 외계인 같았고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곳저곳을 혼자 둘러보고 다시 돌아온 기숙사. 여자 기숙사는 긴 통로 사이를 두고 방들이 오른쪽 그리고 왼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내 방은 긴 통로에서 정 중앙에 있었기에 화장실이나 밖으로 나가려면 그 긴 통로를 꼭 지나가야만 했다. 그 긴 통로 중앙에 양옆으로 놓아진 소파. 그 소파에는 항상 앉아 있는 무리가 있었다.
자고로 잘 나가는 이쁜 언니들. 내 말로 표현하면 학교에서 날라리? 짱 먹은 언니들?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내가 봐도 너무 이쁜 아이들.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바비인형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금발에 푸른 눈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멋진 언니들. 한마디로 아무나 앉아서 놀 수 있는 소파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3년 내내 참으로 불편했던 소파. 그 이유는 기숙사 생활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 취침 시간까지 자유시간이 있었다.
그 자유시간에 난 내 방에서 나와서 화장실을 가려고 했었다.
당연히 통로에 있는 소파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 언니들이 소파에 앉아서 수다를 열심히 떨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조용히 존재감 없이 그 소파 사이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내 앞을 한 여자아이가 다리로 막는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또 다른 여자아이의 다리가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뒤편을 막아버린다. 난 두 다리 사이에 끼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
내가 황당해하는 모습이 웃겼는지 나를 보고 하는 말
“여기 지나가고 싶지? 그러면 내 다리 밑으로 기어서 가“.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내가 잘못 이해를 했겠지 생각했다.
대답이 바로 없자 그 여자아이가 또 한마디 한다.
“내 말 못 알아들었어? 기어서 지나가라고 “
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싹수없는 여자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야! 밑으로 기라고! “
하면서 나에게 시비를 거는 아이. 난 대꾸도 안 하고 노려만 보았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대치 상황이 되니 옆에 있었던 아이들도 대화를 멈추고 나와 나를 못 가게 다리로 가두어 둔 여자아이들을 쳐다본다.
그 싹수없는 아이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날 쳐다보고 거기에 같이 있었던 다른 이들도 이 상황이 재미기만 하다. 그렇게 또다시 5분이 흘렀을까.
계속 나보고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라고 명령하는 한 아이.
보다 못해 옆에 있었던 학년이 높은 여자아이가
“다 재미있었으니 인제 그만하자 “라고 한다. 그제야 내 앞과 뒤에 놓여둔 다리 장애물이 사라진다. 난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고 소파에 남겨진 아이들은 다른 대화를 하면서 웃고 떠든다.
내 존재, 방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관심도 없다.
그날, 그 일은 나에게 마음의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로 아직도 어딘가에 남겨져 있다.
한없이 바보 같았던 내가 너무나 싫었고,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지금까지도 한심하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큰 마음의 상처와 함께 독일에서의 학교생활은 불안하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