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짝빤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친구가 생기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한 학교생활. 마음에 맞는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웃음도 되찾았고 즐거운 학교생활만 무사히 끝내면 될 줄 알았던 나의 유학 생활. 동화책처럼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을 맺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잔인했다.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나와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단순히 마음이 맞지 않아 거리를 두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의 다름은 그들에게 선입견이 되었고, 그 선입견은 마치 벽처럼 나를 둘러쌌다.
그 선입견이 증명되는 사건이 어느 날 일어났다.
그날은 친구들과 시내로 나간 날이었다. 학교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들떠 있었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맛집을 찾아 나선 끝에 도착한 곳은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거기서 우연히 마주친 같은 학교 학생들과 가벼운 대화가 오가던 순간이었다.
„여기 레스토랑 가봤어. “라는 질문에 내가 답하기도 전,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자기 친구에게 귓속말로 말한다.
"쟤는 돈 없어서 여기서 밥 못 먹어."
가볍게 지나가는 듯했던 한마디. 누군가의 작은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 나를 향한 말이었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나의 존재를 정의하고, 그들의 기준에 따라 나를 단정 짓는 것 같았다. 어떤 의미였을까? 그냥 재미로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다름을 조롱하려던 의도였을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겐 그저 치욕스러웠다.
쟤는 돈이 없어.
쟤는 다르게 생겼어.
쟤는 우리랑 달라.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속할 수 없는 세상.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아무리 애써도 이곳에서는 어울릴 수 없을 거라는 말. 난 영원한 이방인.
아무리 노력해도 난 이 무리에 낄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 익숙하지 않은 언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아등바등하면서 힘든 시간을 견뎌내려고 했던 나에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마침표를 찍어주다니. 다른 생김새부터 창피해하고 낯선 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소개조차 못 했던 불안했던 시절에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한계를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남이 정의해 준 틀 안에서 나는 `못난이` 임을 인정하고 살아오다니. 그들의 말 한마디를 나를 정의하게 내버려 두다니.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없는 이유를 그들 탓으로 돌리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말은 머릿속을 스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말은 더 이상 내 자존심을 흔들지 못한다. 나는 내 삶의 중심을 그들 아닌 나로 채우기로 했다.
그 말이 내게 준 상처는 분명 깊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더 이상 내 삶을 좌지우지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만들어낸 틀 속에 갇히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쟤는 돈 없어서 여기서 밥 못 먹어."
그건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