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나눈 나의 인생 동지들이여

빤짝빤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by 돈시맘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힘들었던 처음 2년의 기숙사 생활. 매일매일 집에다 전화해서 나 데리러 가라고 부모님께 하소연하고 울고불고. 부모님은 무슨 죄를 지으셨단 말인가.


2년이 지났음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니, 적응이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내가 이곳에 오고 싶어서 부모님께 떼를 쓰면서 결정한 유학 생활이지만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어둡고 우울한 유학 생활이란 터널에서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숙사 생활 3년째. 많은 새로운 학생들이 편입되었다. 2년 동안 나와 비슷한 결을 갖은 친구들,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다. 나의 독일어 실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사람을 만나면서 언어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난 믿는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 아무 대화 없이도 그 사람 존재 하나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같이만 있어도 긍정적인 에너지와 즐거움이 가득한 사람. 첫인상부터 밝았고 안녕이라는 첫인사 한마디에 너와 나는 이제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감이 오는 이들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되었다. 같이 먹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놀고, 24시간을 동고동락하면서 마음의 이야기를 믿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내 친구들

나 혼자 캠퍼스를 돌아다니다가 이제 여러 명이 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학교 다니고, 밥을 먹으러 가고, 같이 놀러 다닌다. 영화에서 보는 한 장면 같이 금발친구들 무리 사이에 딴 검은 머리 내가 포함되었다. 내가 슬플 때, 힘들 때, 독일어가 이해가 안 될 때, 모든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내 아픔을 어루만져준 친구들.


가족이 그립고, 집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울 때마다 서로를 위로해 주고 특히, 날 더 이해해 주고 세심하게 내 마음의 상처를 보살펴 준 내 친구들.


그 친구들 덕분에 나의 3년의 벙어리 시절을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벙어리였던 나와 작별했다. 나는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지금도 25년 넘게 내 곁에 있다. 아직도 나를 제일 잘 아는 친구들, 내 마음의 안식처이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언제나 나를 위해 있어 줄 친구들. 내가 어둡고 힘들었던 유학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


유학 생활은 내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를 치유한 것도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모든 게 달랐던 나를 인정해 주고 한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대해준 그 아름다운 어린 소녀들이 있었기에 그 어둡고 힘든 유학 생활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유학 생활이 단지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닌 내 인생을 바꾼 선물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들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는다.
친구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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