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온 흙수저이다.

반짝반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by 돈시맘

고달픈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은 계속되었다. 학교 성적이 안 좋은 이유는 내 독일어 실력이 그만큼 따라오지 못한 책임도 있었고, 아마 내가 더 큰 노력을 했었으면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일어 말고도 나에 대한 선입견은 나 자신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여있는 자격지심. 이 벗어날 수 없는 열등감.

이름도 모르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나,

가난한 나라,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나라에서 온 나,

너무 가난해서 독일에 와서 빌붙어 살고 싶어서 온 나,

신문물을 습득하기 위해서 온 나,

선진국에서 배움을 하기 위해서 온 나.


나를 짓누르는 이 선입견들.


자꾸 독일 학생들과 비교되는 나. 움츠러드는 내 어깨, 점점 작아지는 내 자존감, 잃어버린 내 자존심, 무작정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동정을 받아야 하는 못난 사람이 어느새 되어버렸다. 그냥 돈 없고 인맥도 없는 나. 가난한 외국인 학생이 어느 순간 되어버렸다.


사실 확인도 안 된 이 사실들을 난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었기에 불쌍한 나라에서 배우러 온 동양인을 가엽게 여긴 받고 싶지도 않은 동정심을 이해해야 했다. 선진국 사람들은 모두가 잘살고, 후진국 사람들은 다 못 산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순진하고 바보 같은 나.


항상 주눅이 들어서 축 늘어진 어깨를 힘들게 끌고 다녔다.

나는 흙수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독일과 우리나라의 경제적 차이도 모르고 독일인들이 그런 취급을 한다고 바보같이 한 번도 대들 생각도 못 하고, 사실 확인도 안 된 말들을 믿었다.


난 흙수저라고.


돈 많은 금수저와 은수저들 사이에 낀 동양인 흙수저라고.


아무도 나에게 불쌍한 흙수저가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기에 난 내가 오랫동안 작은 동양 나라에서 온 흙수저라고 굳게 믿고 살았다.


외국인에 대한 열등감이었을까. 보모님들도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을 믿으셨는지 단 한 번도 내가 흙수저가 아님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불쌍한 외국인이라는 타이틀을 이마에 붙이고 5년 동안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고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할 때도 괜히 못 사는 내가 싫고 비교당하는 것 같았다. 마음 편안하게 생활을 못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렸기에 아무런 의심도 안 하고 나에게 퍼붓는 말들을 좋든 싫든 필터 없이 받아들인 거 같다. 나도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언어 수준도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흙수저라는 선입견까지 더해져서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마음의 짐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교 졸업 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내가 흙수저가 아니었고, 흙수저였다면 절대 입학할 수 없는 사립 기숙사학교를 5년간 다녔으며, 부모님은 나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싶으셔서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단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내 외국 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창피함에 난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나는 한국에서 온 흙수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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