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기숙사 생활과 파릇파릇한 20대 시작

낯선 땅에서 찾은 나만의 길

by 돈시맘

학교에서의 마지막 행사, 졸업식. 드디어, 5년간 갇혀 있던 학교 울타리를 드디어 벗어났다. 다른 졸업생들과 달리 내 마음속엔 이상한 해방감이 가득했다. 좌절, 실패 그리고 억센 독일어로 가득했던 교실, 밤마다 그리움이 스며들던 기숙사 방을 뒤로하고 나는 떠난다. 누군가에겐 아쉬움 가득한 이별의 순간이겠지만, 내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쁨이었다.


"여기가 진짜 내가 있어야 할 곳일까?"


14살, 낯선 독일 땅을 밟는 순간 마음 한편에서 울린 질문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서울에서의 따뜻했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처음 2년은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독일어는 내 혀를 무겁게 짓눌렀고, 낯선 문화는 나를 철저히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Guten Tag"라는 인사말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수없이 웃음거리가 되던 순간들, 교실에서는 종종 선생님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독일어 실력, 모든 것들이 어색해서 갈팡질팡한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하지만, 그런 나도 변했다. 긴 적응기를 지나고 마지막 2년쯤 되니 내 안의 방황은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바닥을 친 후엔 올라갈 일만 남는다고 했던가. 3년이 지나니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독일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 입에서도 서툴지만, 용감한 독일어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삶의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학교 공부는 여전히 내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내 성격은 예전의 밝음을 되찾았다. 부모님은 분명히 “공부하라”며 날 이곳에 보냈지만, 나는 “노는 게 공부”라는 신념 아래 학교에서 마음껏 내 젊음을 불태웠다. 때의 일탈은 단순한 반항이 아닌,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이 든다.


5년 동안의 복잡다단했던 감정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좌절감, 당혹스러움, 향수병, 정체성의 혼란. 그 모든 것을 겪으며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혼란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어섰고, 상처받았던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었으며, 나는 결국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았다.


20대 안녕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내게 학교는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였다. 지긋지긋했지만, 내게 가장 치열한 고민과 성장이 있었던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새로운 장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이 5년간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


5년 전,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처음 독일 땅을 밟았던 그 소녀는 이제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한 사람이 서 있다. 학교를 떠나는 이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가야 할 길이,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될 새로운 모험들이.


이제 진정한 여정이 시작된다. 더 이상 울타리 속에 갇힌 듯한 답답함도,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불안함도 없다. 오직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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