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정체성 혼란

빤짝빤짝했던 10대를 독일에서

by 돈시맘

독일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내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지막 한국 방문에 부모님과 나눈 순간들은 항상 언쟁으로 끝났고, 나는 무언가를 잃은 기분으로 다시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시 돌아가는 한국.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한국도, 독일도 아닌 그 어딘가. 나는 언제나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었다.


독일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내 정체성도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와 독일 문화사이에 끼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존재가 된 느낌.


독일에서의 생활은 자유로웠다. 나의 모든 행동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었고 그렇게 따라오는 책임도 내 몫이었다. 언제나 혼자였기에 독립적인 삶은 나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방학마다 방문했던 한국의 생활은 즐거움보다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즐기기보다 사사건건 부모님의 잔소리를 방어해야 했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부모님은 내가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멀어져 간다고 걱정하셨고, 나는 그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며 성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예의범절이었다. 처음에는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던 나는, 독일에서 가벼운 목례나 손인사를 하며 지내다가 한국에 올 때마다 문화적 충격을 겪었다. 허리가 더 이상 굽혀지지가 않았다. 부모님은 고개만 까딱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못마땅했을까. 더구나 독일에서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데, 한국에서는 항상 나이와 서열을 의식해야 했다. 존댓말과 반말.


내가 독일에서 배운 직설적인 의사표현은 부모님 눈에는 불손함으로 비쳤다. 식사 자리에서 어르신들의 질문에 "네"와 "아니요"로 단답형 대답을 하는 나의 모습에 부모님은 한숨을 쉬셨다. 한국에서는 그저 "그렇죠..."라고 애매하게 답하는 것이 예의인데, 나는 그런 우회적인 표현이 점점 낯설어졌다.


사소한 모든 것들이 부모님과 부딪쳤다.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느껴보시지 않은 부모님에게는 나의 설명은 언제나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항상 돌아오는 말은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처럼,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처럼 행동해야지."


부모님의 이 말씀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하나의 인격체인데, 어떻게 두 개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독일에서 익힌 직설적이고 솔직한 태도는 이미 내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것을 한국에 올 때마다 억누르고 숨기는 것은, 마치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갈등은 매 방문마다 반복되었다. 공항에서의 작별 인사는 언제나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 서로를 이해하려 했지만, 그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두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통스러웠다.


이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것 같은 이 정체성. 독일에서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더 복잡한 존재가 되어갔다.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독일로 돌아온 나는,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내가 정말 무엇인지. 두 문화의 갈등 속에서 나는 누구였던 걸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는 이 두 세계를 모두 품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두 문화 사이의 틈새는 나의 결핍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이었다. 나는 이 두 세계의 경계에서만이 아닌, 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두 문화를 모두 품은 채, 그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더라도, 이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인 것 같다.


나는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니다.

나는 나 일뿐.
국적으로 문화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다운 온전함이 완성될 때 내 정제성이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