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짝빤짝했던 나의 10대를 우울한 독일에서
기숙사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내 내면의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넓은 푸른색의 들판과 밝은 빛의 하늘색. 이런 시골스러운 풍경과 주변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학교. 희망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의 미래는 회색빛이 나는 어두운 먹구름 같았다.
나 자신을 스스로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이 좋은 환경을 거부하는 내 모습이 때로는 미웠다. 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캠퍼스. 선택받은 자만이 밞을 수 있는 이 길이 나에게는 숨 막히는 좁은 통로였다. 내 미래가 마치 막다른 골목같이 느껴졌다. 내 인생의 길이 벽에 부딪혀서 벽만 바라보고 있는 이 느낌. 내 앞에 서 있는 벽은 너무나 높고 차가웠다. 돌아갈 곳도 없고 내 뒤도 막혀서 움직일 수가 없는 답답함. 앞도 뒤도 막힌 내 인생의 길. 탈출구가 필요했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탈출구만 찾아 헤매느라 항상 기가 빠졌다.
탈출구를 찾는 내 인생의 시계는 멈춘 듯했다. 분침은 흔들리지 않고, 초침은 내 심장박동처럼 무겁게 움직였다.
인생의 실패를 겪고 싶지 않았다. 실패의 낙인이 두려웠다. 포기했다는 말이 새겨질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남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가 싫었다. 독일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에서 학교로 돌아갈 용기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나.
하염없이 부모님께 전화해서 하소연만 했다. 여기 싫다고, 다니기 싫다고. 왜 날 여기로 보냈냐고. 독일어 못 하겠다고.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철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던 나. 부모님 가슴에 전화로 대못질하고 죄송한 마음도 안 들고 무작정 여기가 싫다고 생떼만 부렸던 나. 너무 어렸고 현실감도 없었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에는 한없이 미숙했던 나. 돌아갈 곳이 없음을 어렸지만, 알고 있었다.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으며 조금만 참으면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선택한 것은 버티기였다. 숨 막히는 이 공간에서 그저 견디며, 졸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졸업을 못 하면 일 년을 더 이 공간에 갇히거나,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검정고시를 봐야 할 운명.
그 어느 쪽도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선택권은 없었다. 오직 버티는 것만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