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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응세개 Dec 28. 2023

서민이 시를 먹는 방법

시를 그냥 먹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냐. 지금껏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거라 난 더더욱 거북했지. 값비싼 이런저런 맛들을 버무려 나 같은 서민이 맛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 그동안 그 귀한 것의 맛에 대해선 풍문으로만 들어왔어. 그런데 하는 말이 어떻게 하나같이 다를 수 있는지, 부자들은 전부다 거짓말쟁이인지, 거짓말쟁이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지 난 몹시 헷갈렸지. 바로 먹자니 겁부터 집어먹은 나는 그것을 코에 먼저 양보했지. 그래 맞아. 사실 양보했다기보다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그 고약한,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그것의 냄새가 나의 코로 침입한 거야. 너도 맛보았다면 다 알 거 아냐?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거북했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도전했어. 맞아! 이건 도전정신이 필요한 일이야. 정말 아무나 부자가 되는 건 아닌가 봐. 부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매일 같이 먹어댈 수 있는지, 난 벌써 부자가 되는 조건을 두 가지나 알아챘다고! 하지만 서민의 도전 뒤에 뒤따르는 건 불행히도 ‘실패’지. 그게 부자와 서민의 차이점인가? 그런데 부자들이 완전한 거짓말쟁이는 아닌가 봐. 판매업자 존스 씨가 거드름을 피우며 하는 말을 우리가 모두 들었잖아? 자기가 파는 시를 먹으면 똑똑해진다고 어찌나 잘난 척을 해댔는지,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어. 오, 존스 씨. 그동안 당신을 오해해서 미안해요. 난 시를, 단지 그것의 고약한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도 벌써 어제의 나보다 두 배는 똑똑해진 것 같단 말이지! 그래그래, 너의 말이 맞아. 다섯 배로 정정할게. 언제 이런 걸 먹을 기회가 또 주어질지 모르는데, 사실 이번이 내 평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그 비싼 시를 나 같은 사람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제인 말고 또 있겠어? 너도 알다시피 그 착하고 돈 많은 제인은 오늘 보는 하늘이 마지막일지, 내일 보는 하늘이 마지막일지 우리 모두 알 수가 없지.

이번이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비싼 걸 뻔히 알면서 멀쩡한 걸 버리기엔 몹시 아까웠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애써 준 사람을 생각하니, -오 제인. 제인만 생각하면 난 가슴이 부들부들해져.- 제인을 봐서라도 난 그것을 그냥 버릴 순 없었어. 고심 끝에 난 갈아 마시기로 결심했어. 대형상점에서 89,900원짜리 믹서기를, 심지어 모델명에 ‘파워’라고 당당히 적혀있는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갈아버릴 것 같은, 웅장한 느낌마저 감도는 은빛의 믹서기를 큰마음먹고 하나 장만한 거야. 오, 맞아. 나도 이제 시를 먹을 수 있는 사람씩이나 된 거처럼 거들먹거리며, 어디 나가서 나도 시를 먹는다고, 거참 맛나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이젠 너무 먹어대니 솔직히 물릴 지경이라고 엄살을 떨면서 말이지. 자식들한테도 시가 얼마나 맛있는지, 너희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직장을 꿰찬다면, 물론 손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돈을 벌어야 가능하겠지만, 어린 너희들이 그대로 먹기에 거북할 수도 있다는 건 시를 먹어본 자로서 이 엄마도 충분히 이해하니깐, 그러면 너희들은 누구처럼, -여기서 ‘누구’가 나라는 건 굳이 밝히지 않기로 마음먹은 채- 갈아먹는 건 어떤지, 태어나서 시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는 건 가슴 찢어질 듯한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죽는 거랑 다름없음을, 아,  보다시피 내 가슴은 매우 멀쩡하다 못해 새것 같지만, 나의 사랑스러운 자식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지.

원래 시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딱딱한 건지, 부자들이 쓰는 믹서기의 모델명에는 ‘울트라’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는 건지 도저히 나는 알아낼 수 없겠지만, 나의 ‘파워’ 믹서기로 갈아낸 시는,  코를 빨래집게로 틀어막은 채, 눈 딱 감고 들이마신 그 시는, 나의 이빨 사이를 통과하지 못한 채 이빨에 그대로 턱턱 부딪히며, 한동안 그렇게 입속 어두운 곳에 자리 잡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를테면 이것을 다시 뱉어내야 하는 것인지, 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삼켜 내 몸속으로 버려야 하는지 순간 판단이 서질 않았어. 분명 먹었는데, 물론 위장을 타고 대장을 건너 아직 화장실에서 재회하진 않았지만, 분명 입 속에 넣은 건 사실이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코까지 막아버리는 바람에 맛을 모르겠다고 하면, -코를 막은 게 핑곗거리가 될 수는 있을지 하루 이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내가 먹은 건 거짓말이 되는 걸까? 다들 먹어봤다는 나의 말을 믿지 않으면 어쩌지? 아까 말했다시피 제인은 당장, 오늘 밤하늘에 뜬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뭐가 그리 급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봐, 아직 밤하늘 한가운데 있잖아? 저 달이 옆으로 기울 때까지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다고. 농담이야, 농담. 물론 이 몸을, 사실 제값도 쳐주지 않는 노동력이지만, 어쨌든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있으니 나도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야겠어. 계속 그 상태로 있을 순 없었어. 이빨에 가로막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그 시를 언제까지나 그대로 둘 순 없는 일 아니겠어? 난 1000원짜리 칫솔에 100원어치 치약을 쭈욱 짠 후 양치질을 해버렸지, 뭐. 3분 후 나는 그것을 물리쳤어.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뭐 이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가 있냐고? 모든 이야기엔 교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너도 시를 먹어봤다더니, 영 거짓말은 아닌가 보군. 그렇다면 벌써 눈치챘을게 아냐? 어떤 사람 이름 석자를 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진정,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난 분명 시를 먹었어, 그건 하늘이 알고 땅도 알고, 내 위장도 아는 명백한 사실이지. 하지만 시를 매일같이 즐겨 먹는, 혹은 시를 좋아하거나 동경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시를 알진 못하지. 너도 알다시피 난 그것을 제대로 먹지는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해지는 효과가 떨어지는지도 모르지. 난 간다~ 어서 가서 아이들을 재워야 한다고!

(끝. 23.12.27)


#의식의 흐름 #단편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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