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안 될 때가 있다. 어떻게 용을 써봐도 주변 환경으로 인해 내가 나아갈 길이 막혀버릴 땐 그저 주저앉아 울고 싶다. 시원하게 울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뻑뻑한 스콘이라도 먹은 듯 답답하다. 그럴 땐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막힌 마음을 뚫어 줄 수 있을 텐데…. 내 마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떤 것일까? 지금 뭘 어떻게 해야 마음의 무거운 짐이 사라질까? 잠깐 쉼표라도 찍고 싶었다. 도시를 떠나 깊은 산속에 숨어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가방을 챙겼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가려고 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 가득 챙기고 말았다. 가방은 마음의 무거움을 대신하듯 어깨를 짓눌렀다.
집에서 용문역까지 전철을 타고 갔다. 마음을 내려놓고 다 잊어야지 하면서 떠난 길이지만 전철 타는 짧은 시간마저 엉덩이가 배길 만큼 힘이 들었다. 전철은 구리역을 지나면서 먼저 가는 기차를 보내고 가느라 느릿느릿 갔다. 전철 안에는 점점 나이 든 사람들만 남고 젊은 사람들은 중간중간 내리고 있었다. 전철이 느리게 가는 게 늙음을 향해 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늙기 전에 내려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봉역에서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전철을 탔다. 보기 좋았다. 두 분이 손만 꼭 잡은 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할머니의 가방을 꼭 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휘적휘적 꼬부라진 등에 손을 올리고 원덕역에서 내리자, 그 뒤를 따라 바삐 허청거리며 걸음을 옮기지만 마음처럼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신다. 나이 들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한번 인연을 맺었으면 끝까지 가는 것이 맞는 걸까? 끊임없이 물음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용문역에서 내렸다. 용문역에서 택시를 불렀다. 삼십여 분 택시는 쉼 없이 달렸고, 용문산 입구에 내려 주었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가 없으니 걸어가라고 한다. 용문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입구에 커다란 기념비가 보였다. 용문산은 광활한 산성이며 전산이 암괴이다. 계곡이 깊고 험난하고, 고목이 울창하여 자연의 신비함을 이루고 있다. 일본군에게 여러 차례 침략을 당해 불이 났었고 재건하였다고 한시수비기(漢詩竪碑記)에 쓰여있었다. 용문사까지의 길이 험하지는 않았지만 걸을수록 땀은 쉼 없이 흘러내렸다.
올라가는 길가로 좁은 수로의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작은 냇물이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줄이야. 올라가다가 군데군데 쓰여 있는 시를 읽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빠르게 가면 시간이 더 늦어지고 느리게 가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모>에서 시간 도둑들을 피해 달아날 때 거북이가 빠르게 가면 더 늦게 가게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침에 출발했지만, 오후 3시가 넘어서 용문사에 도착했다. 해탈교를 지나니 사천왕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사천왕문이 보였다. 템플스테이 표지판을 따라 사무실로 갔다. 직원이 갈아입을 옷과 고무신, 밀짚모자 있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고무신을 신고 계단 위로 올라가니 푸른 잔디가 펼쳐진 마당이 있고 거북이 조각으로 된 샘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가운데 계단 위로 가로로 길게 기와집이 있었다. 휴월당 (休月堂)이라고 쓰여 있었다. 휴월당 왼쪽에 있는 수월당 건물에 지혜 방이 있었다. 우리가 묵을 방이다.
문은 밖에서부터 유리문, 다음에 방충망 그리고 격자무늬 창호지 문이 있어 유리문만 닫고 밖을 내다보는 것도 좋았다. 방은 매트리스와 이불, 요가 청결하게 놓여 있었다. 청소도구도 있었고 수건과 비누, 변기와 샤워기, 세면기가 다였지만 깔끔했다. 살생하지 말고 벌레를 잡아 내보내라고 매미채가 있었다. 이틀 밤 지내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휴식하라고 마당 곳곳에 놓여 있는 의자와 테이블, 화덕도 있었다. 휴월당 안에는 빈백과 반 의자가 있어 누워서 책 읽기도 좋아 보였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편안해서 느낌이 좋다.
오후 5시 30분 오리엔테이션과 도량 안내 시간이 되어 마당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열 명 정도 있었다. 템플스테이가 처음이지만 평일에도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용문산을 올라올 때 사찰 한쪽에 거대한 철탑이 서 있어서 눈에 많이 거슬렸었다. 전선용 철탑은 아닌 것 같았는데 왜 보기 흉하게 철탑을 세워 놨을까 의문스러웠다. 10여 년 전 용문사 은행나무가 벼락 맞아 윗부분이 불에 탄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불은 윗부분만 붙었다가 꺼졌지만, 잎이 다 떨어지고 난 겨울이 오면 위에 검게 탄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그 후에 은행나무보다 더 높게 피뢰침 탑을 설치했다고 한다. 절 곳곳을 돌며 석탑과 종루, 일본군들에 의해 불이 나고 재건하면서 새로 모신 관음보살님,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일러 주었다. 덕분에 용문산과 용문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진다. 조선 세종 때 당상관(정 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 동안 조상님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
어제는 새벽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가볼까 생각만 하다가 날이 새어버렸다. 4시에 눈을 떴다. 4시 20분부터 35분까지 새벽 예불 시간이다. 어두운 길을 따라 얕게 가로 등이 있었다. 탑 돌기 하는 사람, 관세음보살님에게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종소리가 새벽을 깨우듯 뎅~뎅~ 울려왔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대웅전 한 귀퉁이에 앉아 예불을 올렸다. 스님들이 하는 대로 절만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절을 하다 보니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래도 한 세상이고 저래도 한 세상인데 뭘 더 욕심을 부리나 싶었다. 그러면서 마음과 머리를 비워보려고 애써 보았다. 그래도 마음속에 깊이 가라앉아있는 근심은 없어지지 않고 작은 움직임에도 회오리처럼 일어나 흙탕물이 되곤 한다.
졸졸 샘물 소리 멀리 악 악악 까마귀 소리 끊이지 않고 들린다. 양평군 용문면 현재 34.4도 갑자기 폭염이 찾아왔지만, 그늘에 들어가 있으면 덜 더운 것 같다. 이곳에선 아침 공양이 5시 50분부터 6시 20분까지이다. 나물 반찬에 밥과 국, 먹는 것마다 달게 느껴졌다. 식탁 위에 쓰인 글귀가 눈길을 잡는다.
오관게(五觀偈)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나에게 전하는 글 같아 먹는 것도 숙연함이 느껴졌다. 한 알의 곡식도 남기지 않고 먹은 뒤 설거지하고 나왔다.
식사하고 천천히 절 구경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발끝을 조심해서 걸으라고 했었다. 걷는 곳마다 작은 생명체들이 그들의 삶을 그들 방식대로 살아내고 있었다. 개미들은 죽은 나비의 사체를 물고 옮기기도 하고 지붕을 타고 방문 앞으로 거미가 내려오기도 한다. 이른 아침 길 위에 나비들이 앉아 날개 짓하는 모습도 밟을지 저어 되어 조심하게 되었다. 나비들은 아침에 체온이 떨어지면 날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해가 떠오르면 날개를 펴서 따뜻한 햇살 쪽으로 각도를 맞춘다. 나비의 날개는 소형 태양전지판과 같은 역할을 하여 필요한 열을 흡수하고 나서야 날아오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6시쯤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앉아 있는 나비들이 있었다. 흑갈색에 하얀 점이 있는 은판나비, 나비처럼 생긴 예쁜 옥색의 나방도 밟을까 봐 발 닿는 곳을 살피면서 걸었다. 조심해도 신발 속에서 묻어 나오는 작은 곤충이 있다. 밤새 벗어 놓은 신발 안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한 모습을 본 이후로 신발 신을 때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딱다그르르 딱다그르르. 아마 부지런한 딱따구리의 아침 식사 소리인가 보다.
템플스테이 이틀째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쯤 절 입구에 있는 카페에 갔다. 팥빙수와 커피를 시켰다. 커피가 팥빙수가 왜 이리 맛있을까. 평소와 다르게 억제된 식욕이 과식을 부른다. 산사의 숲은 미동도 하지 않고 땡볕을 받고 있다. 우리에겐 땡볕이지만 그들에겐 열매를 익게 하는 소중한 햇볕이리라. 검은색의 우아한 제비나비가 분홍 낮 달맞이꽃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꿀을 빨고 있었다. 부지런히 도 움직인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일까? 꿀을 빨고 다른 꽃으로 바삐 날아다닌다.
기념품점에 가서 평소와 다르게 마음에 끌리는 팔찌가 있었다. 마음에 위안이 될 것 같아 구입했다.
절에 들어오기 전 꼭 필요한 것만 챙기면서 책은 두 권 들고 왔다. 고수리 교수님의 <선명한 사랑>,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의 회고록>을 가지고 왔다. 역시 교수님 책은 술술 물 마시듯 읽힌다, 그리고 나면 마음 그득그득 포만감이 느껴진다.
이틀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의무감과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의 소리가 다투고 있었다. 비구니가 되어 모든 인연을 끊고 사는 건 어떨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하니 어찌 속세의 인연을 끊어낼까. 비구니가 된 옛날 직장 후배가 있었다. 속세의 연을 끊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스님들을 뵈니 덧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던 후배 모습이 생각났다. 쌍둥이 자매였는데 부모님 허락을 받고 언니가 먼저 출가하고 동생도 뒤따라 출가했다는 말을 오래전에 들었다. 몸이 허약하여 부모님들도 늘 걱정하던 자식들이었는데 어디서라도 잘 지내고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 마음이 정리가 된 건 아니지만 다시 내 인생의 삶으로 돌아오는 길.
내 인생에 포기는 없다.
존재를 잃어버리면 가슴을 잃는 것이다.
가슴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잃는 것이다.
세상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잃는 것이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천양희의 시 <상실>에서
시비가 길에 있었다. 나를 위해 써놓은 글귀 같아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절과 큰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종교를 떠나 숲 속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 맞설 기운이 생긴 것 같아 용감하게 서울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템플스테이였다. 짧은 이틀이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