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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관묘

항아리를 무덤으로 사용하다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박소정 (석사과정, 참여대학원생) 



  여러분은 장례를 치를 때 시신을 네모난 관에 넣는 광경이 익숙할 겁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나무로 된 상자형 관 외에도 항아리를 이용한 '옹관묘(甕棺墓)'를 만들었습니다.

영남지방 옹관묘 유적분포도 (李春先, 2011에서 발췌)



  옹관묘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뼈를 세골(洗骨)하여 묻거나, 소아용으로 이용된 항아리 무덤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도 확인되는 동아시아의 무덤형식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옹관묘가 확인되고, 청동기시대와 삼한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도 조영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옹관묘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더 알아봅시다.


  청동기시대에는 토기를 세우거나(직치) 기울여서(사치), 삼한시대에 들어서면 눕혀서(횡치) 묻습니다. 토기 하나만을 묻고 입구를 돌이나 나무로 막는 단옹식(單甕式)도 있지만, 삼한시대 이후에는 두 개 이상의 토기 입구를 맞대거나 한쪽에 다른 하나를 삽입하는 합구식(合口式)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천 늑도유적 합구식 옹관묘 (필자촬영)

  옹관으로 사용되는 토기는 주로 실생활에 사용하던 토기입니다. 삼한시대 후기에 들어서서 장란형토기(포탄형토기)가 제작되면서 옹관 전용 토기가 만들어졌고, 삼국시대에 장동옹이 옹관 전용 토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삼국시대 후기부터 매납형 소형토기가 활용되어, 옹관 전용 토기를 사용하는 기간은 짧으며 일상용 토기를 매장에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종은 옹뿐 아니라 호(壺), 발(鉢) 등 다양하게 사용했습니다.


  옹관의 크기를 보면 대체로 신생아와 어린이가 들어갈 법한 크기이기 때문에 유아용으로 이용되었다고 추정합니다. 김해 예안리 유적과 사천 늑도 유적의 사례를 보면 피장자가 신생아에서 3세 이전의 유아로 한정됩니다. 그러나 모든 옹관묘가 유아 전용인 것은 아니고 성인도 일부 묻혔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출토되는 인골이 적어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부장품은 다른 무덤에 비해 수량이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장품으로 소형 토제품, 착장용 목걸이나 옥, 구슬, 청동검, 철검 등을 무덤에 매납합니다. 특히 소형 토제품은 미니어쳐 크기의 축소모형토기, 토제 방울 등이 해당되어 아이들의 장난감용 토기로도 해석되는데, 옹관묘를 유아묘로 보는 근거 중 하나가 됩니다.


  옹관묘 묘역은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조성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이 분리되어 다른 집단무덤과 함께 섞여 있거나 주 무덤의 근처에 부수적인 무덤으로 조성됩니다. 주 무덤 곁에 묻히는 옹관묘는 친연관계인 사람이나 순장된 사람의 무덤이라고 해석하지만, 의례적인 성격을 띤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무덤을 쓰는 데 가장 선호되는 장소는 낮은 구릉지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구릉(50m 이상)에도 옹관묘 유적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넓은 분포권을 가진 옹관묘는 지역마다 조영 양상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옹관묘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사용된 무덤 형식이며 유구의 수도 적지 않지만, 아직도 여러 비밀을 안고 있습니다.



☐ 참고문헌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0, 『한국의 옹관묘—경상남북도편』, 학연

문화사

김은경, 2019, 「영남지역 옹관묘 장송의례 연구」, 제43회 한국고고학

전국대회 발표문

이춘선, 2011, 「영남지방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옹관묘의 변천과정」, 

『韓國上古史學報』 第72號, 한국상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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