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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May 31. 2022

무림의 고수는 능력의 3할을 숨기는 법

어쩌다 공무원이 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무협 소설을 읽다 보면 강호의 격언으로 자주 소개되는 말이 있다. 바로 “무림의 고수는 능력의 3할을 숨겨야 한다”라는 것. 소설 속 주인공은 알려진 능력과는 별도로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숨겨둔 힘을 이용해 위기를 타파해나간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만과 방심에 빠져서 여유를 보이던 적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크게 놀라곤 한다. “아니!? 어디서 이런 힘이!?”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위 격언은 어공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다만 약간의 차이점은 숨긴 3할은 어지간하면 계속 숨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임기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당신이, 당신의 전문분야와는 별개로, 대학시절 이런저런 공모전에 참여하며 파워포인트를 아주 기똥차게 잘 만드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치자. 물론 당신이 가진 그 능력을 드러낸다면 사람들의 경탄과 존경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공무원 생활이 피곤해질 수 있다. “저 친구가 PPT를 그렇게 잘한다며?”하며, 어지간한 PPT 작업이 있을 때 당연하다는 듯이 당신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한, 두 번 정도는 도와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한번 정도야 뭐... ”라고 생각하고 도와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그것이 마치 당신의 업무처럼 되고, “누가 부탁하면 해주고, 내가 부탁하면 안 해주냐”며 실망하거나, 시기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결국 능력을 보여주지 않은 것만 못한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그런 일들을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또한 공무원 사회의 특징상 그 보상은 거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냥 잡무 +1 이 될 뿐이다.


  사실 행정에서는 디자인, 영상편집, 발표나 교육을 위한 PPT 작업 등 소소하게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 많이 있다. 물론 제대로 하려거든 정식으로 예산을 세우고, 민간 전문기업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공공기관의 특성상 예산을 편성하고, 계약을 하고, 업체를 선정하며 지난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윗사람들은 당장 빨리 만들어 쓰기 위하여 누군가의 재능기부를 기대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정답은 그냥저냥 적당히 하는 것이다. 괜히 너무 잘하면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다른 팀의 불필요한 부탁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못하면 또 무시당할 가능성도 있기에, 적당히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만, 무난한 정도로만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늘공의 특성상 열심히 일하는 8급이나, 일은 안 하고 뺀질거리는 8급이나 그 보상(월급)이 같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공들은 다들 쉽고 편한 업무를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업무분장을 할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부여받아도 자신이 맡은 일이 많다며 엄살을 부리는 모습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그중에서도 승진이나 인정을 원하는 늘공들이 능력을 드러내곤 하지만... 우리는 승진이 없는 임기제 공무원일 뿐이다. 그런 조직에서 다른 능력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당초 임용 약정서에 명시되어 있는 당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당신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그 성과를 챙길 수 있는 일에 숨겨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다른 자잘한 것들은 굳이 먼저 나서서 보여 줄 필요가 없다. 차라리 남을 도와줄 그 시간에 스스로에게 투자하자. 본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 키워 “점프”를 노리거나, 이직을 준비하자. 기억하자. “고수는 능력의 3할을 숨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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