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사랑 냄새가 배기도록 해요.
15개월 러브의 영유아 건강검진이 있던 날이었다. 검진을 받으려면 미리 건강보험앱에 들어가 발달 선별 검사지를 작성해야 했다. 개월 수에 따라 아이의 발달 사항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검사지는 한 손을 잡아주면 몇 걸음 걸을 수 있는지, 혼자서 열 발자국 정도 걷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딸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체크해야 그에 맞는 조언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똑똑'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러브의 검진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진료실에 들어가자, 병원장님으로부터 충격적인 한마디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 15개월 아기에게 점수를 왜 이리 짜게 주셨나요, 15개월 아기에게 어떤 정도를 기대하시는 건가요?"
마음이 뜨끔하고 아차 싶었다. 나는 아이의 발달 정도에 '할 수 있는 편이다'에 주로 체크했다. 하지만 원장님은 러브를 관찰하시더니 이 정도면 '아주 잘한다'에 체크해야 한다고 질문지의 점수를 상향조정 하겠다고 하셨다. 난 러브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평소 러브에게 "아이 잘한다.", "너무 예쁘다"를 남발할 정도로 아이를 많이 칭찬하고 사랑을 듬뿍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정작 검진표 하나에 엄마의 콩깍지를 씌우지 못했던가. 난 그런 엄마가 정말로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병원을 나온 후 발달 선별 검사지의 질문을 다시 떠올리며 딸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러브는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 이상으로 해내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웃음을 주려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교를 부리고 있었고, 길가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정말 무해하고 일방적인 사랑을 아낌 없이 주는 아기의 대단한 능력을 발견하지 못한 건 엄마의 무지였을 뿐. 나는 엉뚱하게도 러브와 도무지 맞지 않는 점수를 손가락으로 선택해 버린 것이다.
때때로 러브가 어떤 행동을 따라오지 못할 때 내심 아이를 향해 걱정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영유아 검진 날이 떠올라 얼른 정신을 차리게 된다. 최근에 읽은 엄마 심리 육아서에서도 그 날의 나는 러브에게 너무 엄격했음을 일깨워 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예쁨받는 아이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예쁨받은 냄새가 몸에 배서 사람들도 그 아이를 예뻐하게 된다'고 한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냄새는 엄마의 '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엄마가 걱정 냄새를 아이 몸에 배게 한다면 사람들도 내 아이를 걱정하게 만드는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러브는 내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잘 뛰어다니고 말을 잘해 나를 놀라게 한다.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는 잘 자랐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친정엄마가 나를 칭찬하시면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것처럼 그 날 하루의 자존감이 올라간다. 엄마, 누구보다 내편인 사람.
엄마로서 성장하는 것은 아이를 평가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이의 있는 그대로에게 다정한 백점을 주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야만 한다. 엄마가 사랑을 안주면 누가 주겠나. 기준과 점수에 엄격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오직 나만이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아이에게 칭찬 한번 시원하게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