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선약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일어선다. 날이 저물어서야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한다. 인파가 발길을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은 압도적인 10대와 20대 물결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절망 끄트머리에서 벼락같이 솟아오른 희망 아닌가. 한강이 한 말을 문득 떠올린다. “희망이 있으리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 아닐까요.”
밤이 깊어 가는데 시민은 등돌리지 않고 있다. 애통한 오늘을 여전히 부둥켜안고 구호를 외친다. 시민이 짓는 표정은 싱그럽고 내는 목소리는 탱탱하다. 한 가족과 마주친다. 엄마, 아빠, 여고생 딸.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여고생에게 묻는다: 실망하지 않았어요? 그는 활짝 웃으며 우렁차게 대답한다: 아뇨! 한강이 한 말을 문득 떠올린다: “소년이 온다.”
이미 잠들었어야 할 시각도 넘어서야 나는 집으로 향한다. 여의도에 있던 시민 발소리를 지하철 두 번 갈아탄 뒤에도 듣는다. 민주주의와 국민과 역사에 등돌려 퇴장하면서 히히거리던 국짐 패거리 모습을 한참 되새긴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겠다. 독한 증류주를 병째 들고 입안 가득 흘려 넣는다. 결코 이 애통을 잊지 못하리라. 한강이 한 말을 문득 떠올린다: “이별하지 않는다.”